[사회] 대규모 웬치는 조직원만 2000명…도망 막으려 연좌제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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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프놈펜의 범죄단지에서 체포된 중국인들. 사진 캄보디아 공보부 홈페이지

캄보디아에서 고문사한 대학생은 대포통장 모집·자금 세탁책인 대학 선배가 수익금을 ‘먹튀’했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숨진 대학생 통장에 있던 조직 범죄 수익금 수천만 원이 인출된 정황도 드러나면서 경찰은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14일 경북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8일 캄보디아 캄폿주 보코산 인근 차에서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박모(22)씨가 고문·살해당한 배경에는 재학 중인 충남의 한 대학 선배였던 20대 홍모씨가 있었다. 국내에서 사람을 모집하고 캄보디아 조직의 자금 세탁 역할을 맡은 홍씨는 고수익 등을 미끼로 박씨를 현지로 보냈다. 이후 홍씨가 박씨 계좌에 있던 ‘작업 대출’ ‘보이스피싱’으로 얻은 범죄수익 약 5000만원을 빼돌리는 이른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 등은 캄보디아 국제범죄 조직이 홍씨가 배신한 책임을 박씨에게 물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직은 7월 25일께 박씨 가족에게 “5700만원을 보내라”고 협박 전화를 했지만 입금이 되지 않자 고문한 뒤 다른 조직에 팔아 넘겼다. 홍씨는 유럽으로 도주했지만 경찰의 공조 수사로 붙잡혔다. 경찰은 실제 박씨 계좌에서 1억원 이하의 자금이 인출된 정황도 포착하고 자금 흐름과 세탁책을 쫓고 있다. 경찰은 자금 인출에 연루된 관계자가 최소 3명 이상이고 점조직 형태로 움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단계 모집→점조직→감금·인질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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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다아 범죄조직이 이용한 건물 및 감시초소로 의심되는 곳들. 철조망 또는 예리한 금속 조각이 붙은 철선이 3중으로 쳐져 있는 사기 시설의 높은 벽 뒤로 쇠창살이 설치된 창문들이 보인다. 사진 국제 앰네스티 보고서

중앙일보가 경찰과 최근 캄보디아 관련 범죄 판결문을 토대로 캄보디아 범죄 단지(웬치·园區) 구조를 분석한 결과, 박씨 사건에서 나타난 다단계식 점조직 운영, 감금, 인질 협박, 인신 매매 등은 웬치의 전형적 특징이었다.

지난달 10일 부산지방법원 제5형사부는 캄보디아 바벳을 거점으로 한 로맨스 스캠 사기 조직 가담자 3명에게 범죄단체가입 등 혐의로 징역 3년~3년6개월을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해당 범죄 조직은 피라미드 점조직 형태였다. 범행 전체를 총괄하는 ‘총책’, 총책의 지시를 받아 조직원을 관리하는 ‘관리책’,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를 기망하는 ‘콜센터 유인책’, 조직원과 대포통장을 구하는 ‘모집책’, 수익을 은닉하는 ‘송금·세탁책’, ‘인출·전달책’ 등으로 잘게 쪼개진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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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조직 총책은 대부분 중국인에 ‘성명불상’이었다. 동남아 범죄 전문 텔레그램 채널 운영자는 “대규모 웬치는 2000명 이상, 중소기업 격에 해당하는 곳은 100명 이하 조직원이 있다”며 “중간 관리책 이하는 총책 얼굴도 못 본다”고 전했다.

말단 조직원은 주로 지인 소개 등 친밀한 관계나 온라인으로 모집했다. 가담자들은 여자 친구나 동네 선배에게서 “돈 많이 벌 수 있으니 코인 일 해보자“, “항공권과 숙소를 제공하겠다” 등 제안을 받고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현지에 도착하자 ‘교육’이 시작됐다. 사기 범행 매뉴얼을 제공하고 성공한 조직원 사례를 소개하며 가입을 꼬드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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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가 기록한 사기 범죄 단지(Scamming Compound) 53곳의 위치를 보여주는 지도. 차준홍 기자

실제 가족이 캄보디아 현지에서 실종됐다고 전북경찰청에 신고한 20대 여성은 지인을 웬치로 유인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서울경찰청이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한 상태다. ‘해외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중개해주는 온라인 카페 광고글을 보고 조직에 발을 들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귀국하려면 1만 달러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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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다아 범죄조직이 이용한 건물 및 감시초소로 의심되는 곳들(노란색 동그라미로 강조 표시). 감시초소들은 외벽 안쪽의 전략적인 위치에 자리했다 사진 국제 앰네스티 보고서

조직 생활은 엄격한 위계 질서 아래 이뤄졌다.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다. 지각이나 조퇴 시 벌금을 내야 했고, 실적이 부진할 경우 2시간의 야근을 강제했다. 건물 입구에는 현지인 경비원 5~6명이, 사무실 각 층에는 경비원 2~3명이 총을 들고 경계를 섰다. 각자 정한 가명을 사용해 서로의 본명을 알지 못하게 하고, 조직원의 모니터를 비추는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실시간 행적을 감시했다.

귀국을 원하면 친구인 조직원 한 명을 인질로 남기게 했다. 한 명이 복귀해야만 그 다음 사람이 귀국할 수 있었다. 한 명이 배신할 경우 다른 한 명의 안전이 위험해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또 탈퇴 의사를 밝히면 1만 달러(약 1432만원)를 내라고 하는 등 금품을 요구하기도 한다.

동남아 피싱 조직을 수사한 경찰관(경정)은 “강압적 분위기 속에서 조직의 룰을 어기거나 ‘사고’가 나면 감금·폭행이 시작되고 심하면 인신매매까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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