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더버터] "전 세계 100명의 아이를 후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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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부자들 남도형 성우

남도형 성우는 “기부를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며 “힘들 때나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기부를 이어오다 보니 어느새 삶의 좋은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남도형(42) 성우에게는 사진 앨범이 하나 있다. 지난 13년간 후원한 아이들 사진을 모아 둔 앨범이다. 전 세계 스물두 명 아이들의 성장 기록이 모두 담겨있다. 표지엔 ‘내 아이들’이라고 적어뒀다.
후원을 시작한 건 2012년이었다. 열악한 상황에 놓인 아프리카 차드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주는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을 맡았다. 녹음하면서 많이 울었다. 일을 마치고도 아이들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을 돕고 싶었다. 굿네이버스를 통해 차드의 다섯 살 소년 도우모움 안토이네와 연결됐다. 매달 3만원 후원을 시작했다. 2006년 KBS 공채 성우로 데뷔한 뒤 프리랜서로 막 독립한 시기였다. 만 원 한 장도 아껴 써야 했지만 매달 후원금을 부치고 1년에 한 번씩 선물금도 보냈다.
남 성우는 게임·애니메이션·예능 등 장르를 넘나들면서 점점 이름이 알려졌다. 게임 ‘리그오브레전드’ ‘쿠키런’과 애니메이션 ‘원피스’ ‘미라큘러스: 레이디버그와블랙캣’, 예능 ‘흑백요리사’ 등의 더빙과 내레이션을 맡아 누구든 알만한 성우가 됐다.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기부도 늘렸다. 지금은 아프리카·아시아·남미 등 전 세계 12개국 아동 14명을 후원하고 있다. 결연이 종료된 아동까지 합치면 누적 22명을 키웠다. 지난 21일 서울 잠실한강공원에서 열린 ‘굿네이버스 레이스 with 띵크어스’ 마라톤 현장에서 재능 기부 사회를 맡은 남 성우를 만났다.
후원으로 기른 22명의 아이
- 기부를 시작할 때 목표가 있었나요.
- “열다섯 명의 아이를 후원하는 게 목표였어요. 지금 14명이니 올해 안에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0명은 어딘가 아쉽고 20명은 버거울 것 같아서 15명으로 정했는데, 이제는 한 명이라도 더 돕고 싶은 마음이 커요. 내년에는 20명을 채우고 싶어요.”
-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나요.
-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아이가 없지만, 첫 결연 아동인 안토이네가 조금은 특별하죠. 네 살이던 아이가 벌써 열일곱 살이 됐어요. 작고 여린 아이였는데 이제 체격이 다부진 청년으로 컸어요. 최근에는 키르기스스탄에 사는 다섯 살 여자아이를 후원하기 시작했는데 13년 전 안토이네처럼 정말 작아요. 이 아이가 성인이 되는 과정도 꼭 지켜보고 싶어요.”
- 한 명 한 명 추억도 많을 것 같아요.
- “아이들 사진과 손편지를 모두 모아뒀어요. 사진은 앨범에 넣고 편지는 코팅해서 보관하는데 벌써 커다란 이삿짐 박스 하나를 다 채웠어요. 한번은 ‘저는 후원자님 덕분에 행복한데, 후원자님도 이 편지를 받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라고 쓴 손편지를 받은 적이 있어요. 한창 힘든 시기였는데 그 짧은 문장을 읽는 순간 울컥했어요. 제가 베풀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위로받은 건 저였어요.”
- 선물금도 꼭 보낸다고요.
- “매년 1월 1일마다 꼭 챙기는 작은 이벤트예요. 모든 아이에게 10만원씩 보내요. 처음엔 5만원을 보냈어요. 큰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나중에 굿네이버스에서 보내준 사진을 보니 그 돈으로 염소 한 마리에 시멘트 한 포대, 옷, 빵, 우유까지 푸짐하게 샀더라고요. 제가 조금만 아끼면 되는 5만원이 한 가정에는 한 달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빼먹지 않았어요.”
받은 마음을 다시 전하다
- 후원을 계속 늘리는 이유가 있나요.
- “어머니가 호텔 룸메이드로 20년 가까이 일하셨어요. 늘 힘든 일을 하셨죠.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는데 어머니는 비싼 도넛을 종종 사 오셨어요. 그 도넛을 제가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요. 나중에 알고 보니 투숙객들이 ‘감사하다’며 남기고 간 팁으로 사 오신 거였어요. 저는 그 나눔의 마음을 보면서 자랐어요. 그래서인지 후원 아동들에게 어릴 적 제 모습이 겹쳐 보여요. 제가 어릴 때 받았던 그 마음이 한 달에 한 번 아이들에게 전해지면 좋겠어요.”
- 결연이 끝난 아이들이 그리울 때도 있겠습니다.
- “결연 중간에 이사를 해서 후원이 중단된 아이도 있고, 만 18세가 지나서 종료된 아이도 있어요. 이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너무 궁금해요. 언젠가 다시 만날 기회가 꼭 있었으면 좋겠어요. 만 18세면 다 컸다고 하기엔 아직 어린아이들이잖아요.”
- 어떤 후원자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 “저를 꼭 기억하지 않아도 돼요. 굳이 기억한다면 제가 보낸 마음, 그리고 이 아이들을 위해 애쓴 굿네이버스라는 단체를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그 마음이 아이들에게 남아서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이 가진 걸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해요.”
- 앞으로 기부 계획은요.
- “제가 이제 20년 차 성우예요. 30년, 40년 차가 되면 또 어떤 아이들과 소중한 인연이 생길지 기대됩니다. 감사하게도 저를 따라 기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어요. 팬들도 있고, 어머니,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도요. 언젠가는 전 세계에 100명의 아동을 후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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