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회사채를 회사채로 막는다, 기업들 올해 첫 100조원 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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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 부담 커지는 기업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달 25일 2500억원 규모 회사채(금리 연 2.79~2.99%)를 발행했다. 발행 전액을 채무 상환 자금으로 쓴다고 밝혔다. 과거 증권사에서 빌린 기업어음(CP)과 내년 1월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금리 1.55%)를 막는 용도에서다. 더 높은 금리로 빚을 내서 과거 빚을 갚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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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16일 금융투자협회(금투협)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올해 들어 3분기까지 발행한 회사채 규모가 107조2660억원으로 집계됐다. 회사채(會社債·corporate bond)는 주식회사가 빚을 갚거나, 신규 투자 등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이자(금리)를 붙여 발행하는 채권이다. 3분기 누적 회사채 발행액이 100조원을 넘긴 건 올해가 처음이다.

3분기 누적 회사채 발행액을 보면 2022년 66조8531억원→2023년 77조9613억원→2024년 89조8793억원→2025년 107조2660억원으로 꾸준히 증가세다. 대한전선은 지난달 당초 목표치의 두 배에 달하는 155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한다고 발표했다. 키움증권은 같은 달 진행한 15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 수요 예측에서 1조7400억원어치 주문을 받았다. 대한항공과 삼성중공업도 회사채 수요 예측에서 조 단위 주문을 확보했다. 현대건설은 8월 진행한 3100억원 규모 회사채 청약에서 완판에 성공했다.

통상 4분기는 회사채 발행 비수기다. 하지만 올해는 이달에만 SK인천석유화학, 한화시스템, HS효성첨단소재, 고려아연 등 기업이 회사채 발행을 예고하는 등 열기를 이어갈 전망이다.

핵심 산업에 신규 투자하거나 연구개발(R&D)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채를 발행한다면 긍정적인 신호다. 기업 입장에선 장기 자금을 일시 조달할 수 있는 데다, 상환일·금리를 확정한 만큼 자금 계획을 세우기도 좋은 장점이 있다. 배문성 라이프자산운용 이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돼 회사채 발행 비용이 줄었다. 풍부한 유동성이 회사채 수요를 뒷받침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양극화도 뚜렷했다. 국회 허영(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투협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발행한 회사채에서 신용등급 BBB 이하가 차지하는 비중은 2.8%에 불과했다. 기관투자자는 통상 신용등급이 A+ 이하일 경우 내부 규정상 투자를 제한하기도 한다.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가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김상만 하나증권 상무는 “4분기에도 예년보다 회사채 발행이 활기를 띨 것”이라면서도“신용등급이 떨어진 업종과 만기, 금리 수준에 따라 회사채 ‘옥석 가리기’가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엇보다 기업이 회사채 발행으로 확보한 자금 상당수를 미래에 투자하는 대신 고금리 차입금을 상환하거나 단기채를 장기채로 전환하는 데 쓰는 등 ‘그늘’이 두드러졌다. 올해 4분기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물량(약 11조8300억원), 내년 1분기 만기 물량(약 32조4000억원)을 막기 위해서다. 3분기에도 롯데칠성음료와 CJ ENM, 대신F&I 등이 CP와 상환을 위해 회사채를 발행했다. 대규모 회사채 발행을 두고 “기업의 돈줄이 말라붙었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이 ‘빚으로 빚을 갚는’ 악순환에 빠지면 중장기적으로 기업 이자 부담이 늘고 신규 투자 여력이 줄어 위기 대응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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