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3500억 달러 선불" 고집 트럼프…"희토류가 협상 키 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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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무역협상의 최대 이견인 3500억 달러(약 500조원)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 패키지 구성 방안을 놓고 16일(현지시간) 양국 고위 관계자들이 집중 협상을 벌였다.

이재명 대통령과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결단의 책상'에 앉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악관 제공
양측이 이달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에이펙, APEC) 정상회의 때 열릴 한·미 정상회담 전에 유의미한 결론을 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혔지만, 여전히 전액 ‘현금 선불’ 형태의 투자를 고집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느냐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10일 내 협상’ 공감대에도…진전 여부엔 ‘침묵’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날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함께 워싱턴 상무부 청사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2시간여 협상을 벌였다.

한미 관세 협상 후속 논의와 관련,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협상할 예정인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16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미국 워싱턴DC로 출국하기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연합뉴스
쟁점은 한국이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 달러를 어떤 방식으로 조달하는가였다. 미국은 일본과 맺은 방식처럼 ‘백지수표’ 투자를 요구하고 있지만, 한국은 “외환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협상을 마친 김 실장은 취재진에 “2시간 동안 충분한 이야기를 했다”면서도 구체적인 진전 사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는 러트닉 장관과 협상하기 전까지만 해도 “양국이 가장 진지하고 건설적 분위기에서 협상하는 시기”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15일 “이견이 해소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협상이 마무리 단계이고, (결론은)10일 내로 예상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경주에서 열리는 에이펙(APEC) 참석을 위해 출국하기 전에 한국과 무역협상을 결론 낼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참모들은 “韓 상황 이해”…트럼프 설득은 ‘미지수’
미국측의 솔직한 입장은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및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차 방미해 베센트 장관을 만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통해 전해졌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저녁(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계기로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을 만나 양자간의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뉴스1
구 부총리는 이날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실무 장관은 (전액 선불 투자가 어렵다는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느냐 하는 부분은 진짜 불확실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입장, 즉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 대해선 여전히 “3500억 달러 ‘업 프론트(up front·선불)’를 빨리 하라는 것이 미국의 이야기로 알고 있다”고 했다.
베센트 장관은 “(협상 담당자인) 러트닉 장관 등 행정부에 한국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겠다”는 취지의 긍정적 답변을 했다고 한다.
구 부총리는 다만 이에 대해서도 “미국에 (현금 선불이) 불가능하다고 얘기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라며 “(선불 입장을) 철회했다거나 안 했다고 얘기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입장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교착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불임치료 보험 적용에 관한 발표를 하는 행사에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초상화 앞에서 잠시 발언을 멈추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도 “일본과 한국 모두 (무역 합의에) 서명했다”며 “한국은 3500억달러를 선불로, 일본은 6500억 달러에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세는 미국의 경제와 안보에 필수적”이라며 “관세가 없다면 국가안보도 없다”고 하는 등 강경한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일본과 합의한 금액도 6500억 달러가 아니라 실제로는 5500억 달러다.
‘희토류 전쟁’ 변수…“조선업 협력 등 협상 카드”
정부 내에선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가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의외의 변수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동안 동맹국에 무차별적 관세 압박을 가해오던 미국이 희토류를 내세운 중국과의 전면전 가능성이 확대되자 전세계 동맹국들을 향해 대(對)중국 공동전선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박경민 기자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한국이 조선, 반도체, 2차 전지 등 대중 경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며 “이 때문에 본격적인 전면전이 시작되기 전에 동맹국과의 불필요한 갈등을 서둘러 최소화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장관과 김 실장은 이날 러트닉 장관과의 면담 전 방미의 첫 일정으로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을 따로 만나 조선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미 국무부도 이날 중국이 미국 조선업에 투자한 한화오션 등을 제재하기로 한 조치에 대해 “한·미 협력을 약화시키려는 무책임한 시도이고, 미국은 한국과 단호히 함께 하겠다”는 입장을 내며 호응했다.
멀어진 우방국을 규합하는 움직임도 구체화 됐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이날 워싱턴에서 마우루 비에이라 브라질 외교장관을 만나 조만간 정상회담을 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브라질은 중국이 주도하는 비(非)서방 연합체 브릭스(BRICS)의 핵심 국가다. 양국 관계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이유로 브라질에 50%의 관세를 일방적으로 부과하며 급격히 경색된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26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방명록 작성 후 박수치고 있다.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무역 문제로 갈등이 커진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확언했다”고 주장하며 인도와의 공동전선 구축 가능성도 시사했다. 다만 인도는 “두 사람간에 그런 대화는 없었다”며 이를 공식 부인했다.
“국익 관점의 협상 된다면 APEC이 좋은 계기”
구 부총리는 “국익 관점에서 협상의 내용만 잘 정리되면 에이펙 계기에 (무역 합의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에이펙을 계기로 한 한·미 정상회담 전에 양국이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현금 출자 등 미국의 일방적 요구를 전부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와 국제통화기금 및 세계은행(IMF/WB)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동행기자단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그는 일각에서 제기된 통화스와프 가능성에 대해선 “3500억 달러 투자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스킴(scheme·계획)에 따라 외환 안정성을 점검해야 한다”며 “한국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돼 외환에 대한 영향이 적어진다면 우리가 보완할 사항은 적어질 것”이라고 했다. 또 구체적 협상 조건에 대해선 함구하면서도 3500억 달러 투자 시기를 최대 10년으로 분할하고 원화로 투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양국이 논의 중이라는 일부 보도에 대해선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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