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구윤철-베센트, 김정관-러트닉 3500억달러 패키지 막판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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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윤철 부총리, 미국 재무장관과 의견 교환 (서울=연합뉴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계기로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과 만나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2025.10.17 [기획재정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xxxxxxxxxxxxxxx (끝)〈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한국 정부가 미국과 3500억 달러(약 50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를 둘러싸고 막판 협상에 돌입했다. 16일(현지시간)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을 만나 2시간가량 담판을 벌였다. 앞서 15일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등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과 회동했다.

한·미 협상은 3500억 달러의 투자 방식을 놓고 양국 이견을 보이며 교착 상태에 빠졌지만, 최근 미국이 한국 측 수정 대안에 ‘의미 있는’ 반응을 보였고, 새 제안을 한국에 전달하면서 기류가 달라졌다. 미국 측 협상의 ‘키맨’인 러트닉 장관을 만난 김용범 정책실장은 회동이 끝나고 “2시간 동안 충분히 얘기했다”고 짧게 언급한 뒤 자리를 떴다. 구체적인 협상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날 양국 협상단은 한국이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 달러의 ①투자 구조(현금 대 보증) ②투자 배분의 상업적 합리성 ③통화스와프(양국 통화 맞교환 협약) 범위 등 3대 쟁점을 놓고, 합의점을 모색했다.

미국은 한국이 투자금을 현금 중심, 선불(up front) 형태로 납입하길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구윤철 부총리는 베센트 장관을 만나 대미 투자 선불 요구가 한국 외환시장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 구 부총리는 “미국이 빠른 선불 집행을 요구하지만, 외환 사정상 한국이 그렇게 하긴 어렵다”며 “베센트 장관도 이를 이해했고, 내부적으로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미국의 선불·현금 투자 요구에 한국 정부는 외환시장 안정성과 재정 부담을 고려해 보증·대출 중심으로 투자 구조를 짜야 한다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은 캐피털콜(capital call)’ 방식, 연도별 분할 집행 등을 미국에 요청했고, 미국이 이에 일정 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캐피털콜은 출자금을 한꺼번에 납입하지 않고, 약정 한도 내에서 필요할 때마다 출자 요구에 응하는 방식이다. 이를 적용하면 3500억 달러를 한 번에 마련할 필요가 없어 재정 부담을 덜 수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이번 협상에서 선불 요구를 상당히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한국은 외환 사정을 고려해 기간을 길게 잡거나 분할 납입 방식으로 대응하려는 것으로 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선불을 강조하는 만큼, 실무 차원의 절충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구 부총리도 “실무 장관은 (전액 선불 투자가 어렵다는 한국 정부 입장을) 이해하고 있는데, 얼마나 대통령을 설득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수용할지는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그간 외환 ‘안전판’ 성격의 무제한 통화스와프가 한·미 투자 협상 타결의 ‘필요조건’이라고 강조해왔다. 외환보유액(4220억 달러)의 83%에 달하는 3500억 달러를 투자할 경우 단기간에 달러 유출이 발생해 원화가치 추락(환율 급등) 등 ‘외환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서다.

다만 통화스와프 문제는 이번 협상의 최우선 의제는 아니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투자 구조(스킴)가 확실히 정해진 뒤에 논의할 문제라는 얘기다. 구 부총리는 “투자 구조가 확정되면 그에 따라 외환 소요가 계산될 것”이라며 “선불은 외환 사정상 불가능하다고 했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나오면 그것에 맞게 스와프 규모와 필요성을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통상 전문가는 “투자 규모를 줄이긴 어렵기 때문에, 투자처와 손익 배분 구조를 명확히 하고 연도별 한도를 설정해 단계적으로 자금을 집행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3500억 달러 투자 시기를 최대 10년으로 분할하고, 원화로 투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양국이 논의 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 전직 고위 금융당국자는 “한국 외환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연간 150억~200억 달러 수준이 시장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한계치”라며 “총 투자 금액을 10여 년에 걸쳐 분할 집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구 부총리는 “처음 듣는 얘기”라며 선을 그었다.

투자처와 손익 배분 등도 중요한 쟁점이다. 미국은 투자 펀드의 운용권을 자신들이 가져가고, 수익 배분도 미국에 유리하게 구성하길 원한다. 일본은 앞서 미국과의 협상에서 투자금 회수 전에는 5대 5, 회수 이후엔 미국 90%·일본 10%로 수익 배분하는 것으로 구조를 짰다.

박성훈 고려대 명예교수는 “정부가 한국 기업이 강점을 가진 산업을 중심으로 투자처를 정하고, 그 기업들이 달러를 직접 조달해 투자하면 정부의 외환 소요를 줄일 수 있다”며 “3500억 달러 현금 지급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대신 장기적 플랜으로 미국 산업 재건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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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왼쪽)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6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을 방문하기 위해 워싱턴DC 백악관 아이젠하워 행정동을 방문했다. 연합뉴스

추가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협상단이 17~18일 미국에 머물며 장관급 회담을 이어갈 가능성도 있다. 2주 앞으로 다가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에 열릴 한·미 정상회담 전 협상 타결을 목표로 정한 한국 정부로서는 이번 방미 기간이 사실상 마지막 대면 협상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에는 반드시 조건과 방식, 기간을 명확하게 문서화해야 한다. 그래야 이후 단계에서 정책적·법적 논란을 피할 수 있다”고 짚었다.

한편 이날 김정관 장관과 김용범 정책실장은 방미 첫 일정으로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과 약 50분간 면담했다. 이번 회동에서는 양국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추진 방안이 주요 의제로 논의됐다. 김 장관은 면담 직후 “마스가 관련해 여러 건설적인 얘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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