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화성-20형은 협상 신호" 정동영 거침없는 대북발언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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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 남북 군사합의 복원 전이라도 실기동 훈련 등은 중지해야 한다.”(정동영 통일부 장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국방부 당국자)

지난달 접경지역 내 군사훈련과 관련한 정 장관의 발언에 대한 국방부의 공식 입장이다. 특정 현안에 대해 부처 간 이견이 존재하는 일은 종종 있지만, 최근에는 특히 정 장관의 발언에 대해 담당 부처가 공개적으로 다른 의견을 표하는 사례가 잇따르는 분위기다. 정 장관의 행보를 두고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전략적 접근이란 해석과 홀로 지나치게 앞서 나간다는 우려가 엇갈린다.

‘두 국가’ 인정 발언 등 적절성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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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열린 '북한의 2국가론과 남북기본협정 추진 방향' 세미나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최근 정 장관의 공개 발언은 상당수가 논란을 불렀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사실상 평화적 두 국가론으로 전환하는 것이 대안”(9월 18일 국제 한반도 포럼 개회사)이라는 입장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제3조)로 규정한 헌법 정신에 어긋날 수 있다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후로도 정 장관은 “평화적 두 국가론은 정부의 입장으로 확정될 것”(14일 국정감사) 등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정 장관이 “북한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3대 국가”(9월 29일 독일 베를린 순방 간담회)라고 말한 건 북한의 핵 능력을 중국, 러시아와 같은 수준으로 인정하는 것이냐는 논란을 불렀다. 북한이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80주년 열병식에서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20형을 공개하자 정 장관은 “협상의 신호로 읽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말만 하면 타부처는 “신중 접근” “진전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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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통일부 복도. 연합뉴스

정 장관의 발언에 대해 담당 부처가 선을 긋는 이례적 상황도 반복적으로 연출됐다.

정 장관이 지난달 25일 “9·19 남북군사합의 복원 전이라도 군사분계선(MDL) 일대 사격훈련과 실기동훈련을 중지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을 때 국방부는 “사격을 포함한 군사훈련은 우리 군의 대비태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도 “9·19 합의의 복원은 필요하지만, 군사 훈련은 (북한의 호응 없이)우리만 중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9월 30일 기자간담회)

지난 14일 밝힌 개성공단 재가동 추진 방침에도 우려의 시선이 많다. 이는 북한과의 합작 사업 등을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에 위반될 소지가 있어서다. 외교부는 가정적 사안인 만큼 아예 공식 입장은 내지 않을 방침이라고 한다.

NSC서 군사합의 복원 두고 갈등 표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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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도서방위사령부 예하 포병부대가 K9 해상사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이에 대해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부 내에서)이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각 부처에서 나오는 발언 그대로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중순 개최된 대통령실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선 9·19 군사합의 복원 추진 속도를 두고 긴장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한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정 장관은 “MDL 5㎞ 이내의 포 사격 훈련의 즉각적인 중단” 등을 주장했지만, 일부 위원들이 이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정 장관의 거침 없는 대북 관련 발언이 해묵은 ‘자주파-동맹파’ 갈등을 반영한 것이란 해석까지 부르는 건 이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대북 유화 노선을 지지한 청와대 보좌진(자주파)과 한·미 동맹 강화에 무게를 둔 외교 라인(동맹파)이 용산 미군 기지 이전 협상을 두고 충돌했고, 이는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의 사임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말 더불어민주당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위원들과 통일부간 정책 협의에서는 정 장관이 “NSC 내에서 통일부 장관의 주도권이 예전 같지 않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고도 한다.

“대통령 철학, 내가 제일 잘 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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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신임 국무위원 및 국세청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정 장관이 가속 페달을 계속 밟는 배경을 두고선 엇갈린 해석이 나온다.

정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의 신념과 철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이 정동영”이라며 “저는 남북 관계와 관련해서 이재명 대통령의 대북정책 노선을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한다.(14일 국정감사) 실제 정 장관과 이 대통령의 인연은 이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깊다. 이 대통령이 직접 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큰 입장을 정 장관이 밝히는 식으로 전략적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반면 정 장관이 ‘단독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시선도 적지 않다. 북한 문제에 대한 개인적 애착이 반영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장관은 2004년 12월 개성공단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산파 역할을 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책으로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고 북한이 대남 단절 기조를 밀어붙이는 가운데 통일부 장관으로서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이 작용한 결과일 수도 있다. 이재명 정부 초기에 남북 관계 개선에 동력을 붙이기 위해 무리수라는 비판도 감수하는 것이란 해석이다.

배경이 뭐가 됐든 이런 상황은 정부 외교안보 라인이 강조해온 ‘원 팀’ 정신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 이어진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 소식통은 “원로급 장관의 단관(丹款)이 의도치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처 간 조율 되지 않은 메시지가 누적될 수록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미국과 일본은 물론 북한에도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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