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년중앙] 아리수·한산하·경강·한가람…굽이굽이 한강 따라 시간여행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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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지→요충지→물류거점→문화공간
한강 흐름에 우리나라 반만년 담겼죠

한강은 한반도의 중심이자, 교통의 중심, 시민들의 휴식처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사의 중심에서 수천 년 세월을 말없이 흘러왔고, 그 만큼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죠. 한강을 바라보고, 놀러 가며 친숙하다고 생각하지만 그에 얽힌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이 적은데요. 걷기 좋은 계절, 한강 유역 및 인근 문화유산을 거닐며 한강 역사문화탐방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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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유역 및 인근 문화유산을 거닐며 한강역사탐방에 나선 최수혁·윤보영·황지유(왼쪽부터) 학생기자가 우리 역사의 중심에서 수천 년 세월을 말없이 흘러온 한강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강원도 태백시의 검룡소에서 발원해 경기도 김포시의 보구곶리까지 총 514km 길이를 자랑하는 한강은 세계 어느 도시의 강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아요. 검룡소에서 시작된 남한강은 충청북도를 지나 경기도 양평으로 흘러가고, 강원도 금강산 부근에서 시작된 북한강은 강원도 춘천시 의암호에서 소양강과 만난 뒤 경기도 가평 쪽으로 흘러가요. 이렇게 한강은 남한강과 북한강, 두 갈래로 흐르다가 서울과 가까운 양수리에서 합쳐져 서울을 관통해 경기도 보구곶리에서 서해로 흘러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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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한반도의 중심이자, 교통의 중심, 시민들의 휴식처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의 중심에서 수천 년 세월을 말없이 흘러왔고, 그 만큼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다.

한강의 이름은 시대에 따라 매우 다양했습니다. 고대 중국은 한강을 ‘대수’라 불렀으며 고구려 광개토왕릉비에는 크거나 신성하다는 의미인 ‘아리수’라고 표기되어 있죠. 삼국시대에는 ‘한산하’ ‘북독’ ‘욱리하’라 부르기도 했어요. 조선시대에는 서울의 강, ‘경강’이라 불렀죠. 현재의 이름인 한강은 한가람에서 유래되었으며 ‘한’은 크다, ‘가람’은 강의 옛말을 뜻합니다. 이 명칭이 처음 사용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한강은 백제가 중국과 문물을 교류하기 시작한 무렵부터 ‘한수(漢水)’ ‘한강(漢江)’ 등의 한자로 표기되어 왔죠. 이후 한강의 옛 이름들은 점차 사라졌으며 한수·한강·한강수 등 현재와 같거나 비슷한 이름이 널리 불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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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한반도의 중심이자, 교통의 중심, 시민들의 휴식처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의 중심에서 수천 년 세월을 말없이 흘러왔고, 그 만큼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다.

이 땅에 사람들이 살기 전부터 흐른 한강은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우리 역사와 함께했죠. 그래서 한강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우리 역사를 접할 수 있어요. 선사시대에는 사람들이 강가에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며 살았죠. 삼국시대에는 한강 유역을 뺏고 빼앗기면서 흥망성쇠를 거듭했고요. 조선시대에는 한양이 수도의 역할을 다하도록 도왔죠. 특히 전국에서 한강을 통해 배로 현물 조세인 농작물을 수송하며 조운이 발달함에 따라 한강변은 전국 각지의 물품과 재화의 집산지로 변했고, 한양은 정치·행정뿐 아니라 상·공업의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때는 가슴 아픈 역사를 겪었어요. 일본의 지배 아래에서 한강에 다리가 하나둘 놓이기 시작했고, 배와 뗏목이 사라지고 철도와 도로가 등장했죠. 한국전쟁 때는 북한 인민군이 쳐들어오는 길을 막기 위해 대한민국 국군이 한강철교와 인도교를 폭파하며 다리를 건너던 많은 피란민들이 목숨을 잃고 피난길이 끊겼어요. 전후,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빠른 경제 발전을 이루기까지, 이 모든 모습들이 한강과 함께 흐르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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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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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역사

한강의 역사

삼국시대~고려  

BC 57 신라 건국
BC 37 고구려 건국
BC 18 한강 일대에 백제 건국
475 고구려 한강 차지
551 신라와 백제 한강 차지
553 신라 한강 차지
664 한강지역에 한산주 설치
668 신라 삼국통일
757 한산주를 한양군으로 개칭
918 고려 건국
935 후삼국통일
940 서울지역을 양주로 개칭
1067 양주목을 남경으로 승격
1068 남경에 궁궐 건립
1231 여몽전쟁
1308 남경을 한양부로 개칭
1356 남경 궁궐을 수리
1382 한양 천도
1383 개경 환도
1388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1390 한양 천도
1391 개경 환도

조선~현재 

1392 조선 건국
1394 한양을 도읍지로 지정
1456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
1592 임진왜란 발발
1636 병자호란 발발
1740 겸재 정선이 양천현령으로 발령
1897 대한제국 선포
1900 한강에 최초의 다리 한강철교 건설
1910 일제강점기
1917 한강에 최초의 인도교 한강인도교 건설
1922 최초 비행사 안창남의 여의도 비행
1925 을축년 대홍수
1945 광복
1950 6·25 전쟁 발발, 한강철교·인도교 폭파
1956 한강 이남 동작구에 현충원 조성
1968 여의도 개발 시작
1970 최초의 고급아파트 한강맨션 건설
1982 한강 종합개발계획사업 시작
1986 한강유람선 운항 시작
1988 88서울올림픽 개최
1994 성수대교 붕괴
2000 서울세계불꽃축제 개최
2008 반포대교 달빛무지개분수 설치

한강과 인근 문화유산 알아보는 도보 여행 

한강은 서울을 대표하는 상징이자 서울 시민의 생활과 문화의 중심 공간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이 찰나로 느껴질 만큼 한강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거대하죠. 그 물줄기에 우리의 삶이 녹아있기 때문이에요. 자전거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시민공원, 계절마다 펼쳐지는 다양한 축제들까지 한강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그중 한강의 옛이야기와 인근 문화유산을 알아보는 도보 여행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참여한 한강역사탐방 프로그램은 한강의 숨겨진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생생하게 듣는 한강의 대표 도보 탐방으로 역사 속 한강의 나루터와 명승지를 중심으로 역사·문화·인물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 있죠. 올해는 신규 코스인 서빙고길을 포함해 16개(한강 남쪽 8개·북쪽 8개) 역사·지리 코스로 운영되며, 더 재미있게 완주할 수 있도록 스탬프 인증제도를 도입해 15개 코스 이상을 인증하면 기념품도 제공하죠. 참여 방법은 한강이야기여행 누리집(visit-hangang.seoul.kr)을 참고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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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 학생기자단의 한강 역사문화탐방은 용산철도병원을 리노베이션하여 2022년 3월 개관한 용산의 역사와 문화적 다양성을 담은 지역사 전문 박물관인 용산역사박물관에서 시작됐다.

16개 코스 중 한강백년다리길을 탐방하기로 한 윤보영·최수혁·황지유 학생기자가 서울 용산구에 있는 용산역사박물관에 모였어요. 용산철도병원을 리노베이션하여 2022년 3월 개관한 용산의 역사와 문화적 다양성을 담은 지역사 전문 박물관인 이곳은 일제강점기 철도기지로 신시가지로 개발된 용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이죠. 원형 그대로의 외벽 벽돌과 내부 흔적은 근대문화유산의 가치가 인정되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어요. 김효 한강역사해설사가 “용산뿐만 아니라 한강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곳이라 이곳에서 한강에 대해 먼저 좀 이해하고, 오늘 비가 오는데 날씨가 허락하는 한에서 안전하게 현장을 걸어볼게요”라고 인사를 건넸죠.

먼저 용산에 왔으니까 용산에 대해 알아봤어요. 조선시대 용산은 한양도성 서쪽의 무악산, 오늘날의 안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와 한강으로 둘러싸인 지역을 아울렀어요. 그 구불구불한 능선이 한강에 이르러 봉우리를 형성하는데 전체적인 형세가 용을 연상시킨다 하여 용산이라 이름 붙었죠. 조선 초 용산은 명확히 한양 땅은 아니었다고 해요. 당시 한양의 경계는 도성이었는데, 수도 한양을 관할했던 관청 한성부는 도성과 함께 도성으로부터 10리(약 4km)에 이르는 성저십리까지 관할했죠. 용산은 이 성저십리에 해당했습니다. 도성 밖 한적한 강변 마을이었던 용산에 물길 따라 포구가 발달하면서 삼남을 오가는 대로가 용산에서 갈라졌고, 각 지역의 세곡이 용산에서 집결되어 도성 안으로 운반됐죠. 자연히 많은 물자와 사람이 용산으로 모여들었고, 한양의 길목이라는 입지는 용산을 교통과 물류의 거점으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19세기 초반 도성의 지세와 주요 건축물, 도성 안팎을 연결하는 도로를 상세히 그려낸 지도 ‘조선성시도(1830)’에서 용산방·둔지방·한강방이라 표시된 일대가 오늘날 용산에 해당하죠. “지금의 ‘구’가 예전에는 ‘방’에 해당한다고 보면 돼요. 20세기에 일본인들이 둔지방 지역에 일본군 사령부를 두고 가까이에 용산역을 설치하면서 지금의 한강대로 일대에 일본인들이 자리를 잡게 되면서 그 지역을 신용산이라고 불렀어요. 신용산의 등장으로 본래 용산은 난데없이 구용산으로 전락했죠. 100년 전의 용산은 지금 원효로 일대의 용산이에요. 오늘날의 용산은 신용산을 중심으로 하고 원래 용산나루가 있었던 곳은 구용산이 돼 버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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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한양(서울)을 그린 목판본 고지도 ‘수선총도’. 도성 안쪽으로 하천과 도로, 궁궐과 종묘, 방·동 등이 정밀하게 표시되어 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나무판에 19세기 서울의 모습과 글자를 새겨 인쇄한 목판본 고지도에 한양도성의 서대문과 남대문 바깥 지역을 별도로 그려 넣어 보완한 서울지도 '수선총도'를 살펴봤어요. 필사된 부분 중 지도를 따라 상하로 길게 흐르는 하천은 무악재에서 시작되어 용산 지역을 거쳐 한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인 만초천이죠. 도성 안쪽으로 하천과 도로, 궁궐과 종묘, 방·동 등이 정밀하게 표시되어 당시 서울의 도시 공간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한강과 만초천이 만나는 곳에 용산나루가 있었고요. 이 용산방 지역은 조선시대에 모든 국가의 세금이 모이던 창고가 있었던 곳이었어요. 그만큼 한강이 물길의 기능, 지금의 고속도로의 기능을 했었던 시절에는 용산방이 굉장히 중요한 교통상의 요지였다 생각하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시간 여행을 할 거예요. 예전의 용산과 오늘의 용산을 함께 보는 것이 오늘 탐방의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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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세곡을 실어나르는 배 세곡선(쌍돛배)이 그려진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 유운홍의 풍속화. 국립중앙박물관

황지유 학생기자가 “옛날에 한강이 물길 교통의 중심이었는데, 실제로 어떤 물품들이 많이 오가고 사람들의 생활에 어떤 변화를 주었나요”라고 질문했어요. “마포나루 예를 들면 서울에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한강변의 나루터로, 여기서는 서해 바다로부터 들어오는 물자가 거래됐는데, 대표적인 게 소금이었죠. 냉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당시 이 소금을 가지고 오랫동안 보존해서 먹을 수 있는 젓갈을 담갔어요. 조선 말이 되면 저장했던 얼음을 배에 싣고 나가 바다에 가서 냉장으로 생조기를 들여올 수 있었는데요. 조기로 대표되는 생선이 바로 식탁에 오를 수 있게 된 것도 18세기 이후 일이죠. 서울 주변에는 나무를 벌채하지 못하도록 금지돼, 난방을 위한 땔감이나 집을 짓기 위한 재목 등도 다 이 물길을 통해서 운반해 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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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표지판, 예전 용산역의 모습과 철도 학교 등을 볼 수 있는 모형과 지도를 보며 철도 교통의 중심이 된 용산에 대해 살펴봤다.

이어 기차 표지판, 예전 용산역의 모습과 철도 학교 등을 볼 수 있는 모형과 지도를 보며 철도 교통의 중심이 된 용산에 대해 좀 더 살펴본 후 밖으로 나오니 다행히 비가 많이 오지는 않아 탐방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저 앞 길이 한강대로인데 지금 자동차 통행량이 많죠. 한강대교에서 시청까지 서울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이에요. 1919년에 만들어졌는데 3·1운동이 일어난 해잖아요. 일본군이 서울 시내 시위를 신속하게 진압하기 위해서 이 길을 만든 거예요. 일본이 우리를 지배하는 중요한 길의 기능을 했었던 게 바로 이 용산이었고, 일본군 이후 미군으로 이어지면서 용산 일대는 결국 우리의 자주권이 침해되는 외세에 의해서 우리나라가 어떤 의미에서 지배되는 그런 공간이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용산이 우리에게 있어 자랑스러운 공간은 아니었는데, 요즘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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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을 사랑하는 외국 관광객들이 꼭 방문하는 BTS 소속사인 하이브 사옥도 지나쳐갔다.

조금 걷다 보니 세계적으로 K-뷰티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화장품 기업 아모레퍼시픽 사옥이 보였고, K-팝을 사랑하는 외국 관광객들이 꼭 방문하는 BTS 소속사인 하이브 사옥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전의 용산이 암울한 역사의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의 중심 공간이 된 게 인상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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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자리잡은 철도관사들이 1928년 구획 정리된 모습도 사진으로 남아있다.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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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관사단지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골목에서 현재 카페로 사용되는 옛 철도관사 건물을 볼 수 있다.

다음으로는 용산역 일대에 남은 철도관사를 볼 수 있었죠. 1908년경 120동에 불과했던 용산 철도관사는 1925년에는 774동으로 대폭 늘었다가 1980년대 이후 도시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되며 대부분 철거됐어요. 옛 관사단지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골목에서 현재 카페·음식점으로 사용되는 옛 철도 관사 건물들을 볼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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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철교 이후 최초로 한강을 가로지르는 인도교로 건설된 한강인도교의 1917년경 모습. 국립민속박물관

한강대교로 가는 길에 밑으로 기찻길이 보였습니다. “서울에서 원산으로 가던 경원선 기찻길이에요. 여기보다 굉장히 지대가 낮죠. 한강에 의해 기찻길이 침수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본인들이 제방을 쌓았고 그 제방 위에 도로가 난 거예요. 저기에 제방을 쌓아 지금 지대가 낮은 용산 쪽이 침수되지 않도록 만들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드디어 한강대교 앞에 도착했어요. 한강대교는 한강로3가와 동작구 노량진을 연결하는 인도교로, 1917년 10월에 준공된 한강 교량이죠. 한강대교는 1900년에 건설된 한강철교 이후 최초로 한강을 가로지르는 인도교로 건설되어 개통 초기에는 제1한강교라고 불렸습니다. 한강의 교량 중 최초로 건설된 한강철교는 경부선, 수도권 전철 1호선 노량진역과 용산역 사이를 잇는 철교입니다. 한강철교를 필두로 한강에 건설된 수많은 교량의 역할은 조선시대 교통로였던 나루의 역할과 동일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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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대교 밑으로 내려오면 과거 최고 홍수위라는 기준표를 볼 수 있다.

한강대교 밑으로 내려오면 과거 최고 홍수위라는 기준표를 볼 수 있습니다. 빨간줄로 선이 그어져 있는데 그곳까지 물이 찼다는 거죠. ‘20세기 한반도 최악의 홍수’라 불린 을축년 대홍수는 1925년 7~9월 동안 총 네 차례에 걸쳐 일어났고, 현재까지도 집중호우나 태풍으로 수해가 일어날 때마다 언급되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대홍수 때 이 다리도 침수됐었죠. 그래서 오늘날 한강에 있는 30개의 다리는 모두 이 수위보다 높게 건설했어요. 한강의 최대 수위의 기준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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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한강에서 수영하고 놀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1924년 서빙고 수영장의 모습. 서울역사박물관

한강대교 중심부에 자리한 노들섬을 살펴보며, 예전엔 노들섬이 있는 데까지 백사장이었다는 것도 알게 됐죠. “한강에 홍수가 나지 않도록 한강의 폭을 넓히기 위해 모래를 다 치우고 그걸 이용해 한강에 둑을 쌓은 거예요.” 한강철교쪽 아래로 이어지는 미루나무가 있는 이촌한강공원 산책로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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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대교 밑에서 한강철교쪽 아래로 이어지는 미루나무가 있는 이촌한강공원 산책로는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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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왼쪽) 한강역사해설사에게 과거 최고 홍수위라는 기준표와 을축년 대홍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소중 학생기자단.

김 해설사가 서울의 한강은 여러분 집에 있는 욕조 같은 강이라고 얘기를 꺼내자 소중 학생기자단이 “진짜요?”라고 놀랐죠. “한강의 남쪽과 북쪽엔 제방이 쌓여있기 때문에 결국 하나의 큰 수조와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어요. 잠실대교 쪽에는 수중보도 있죠. 그래서 완전히 물이 넘치지 못하게 막은 거는 아니지만 사람이 욕조에 들어가면 찰랑 하고 넘치는 그런 정도만 넘치도록 돼 있어요. 우리나라 기후는 여름철에는 홍수가 나고 가을·겨울철에는 물이 부족한 현상이 벌어지는데 적정한 수량의 물이 안정적으로 사계절 흐르도록 하기 위해 한강을 고여 있는 하천처럼 관리하고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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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강과 인근 문화유산을 탐방하며 한강과 인근의 숨어있는 문화유산을 재발견한 윤보영·황지유·최수혁(왼쪽부터) 학생기자.

최수혁 학생기자가 ‘미래에 한강의 가치는 무엇일지’ 궁금해했어요. “그건 여러분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이제까지 한강이 서울의 동력이 되었던 거는 사실이에요. 물류의 거점이었죠. 물류는 사람과 물자와 돈의 흐름을 의미해요. 단순하게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에요. 여러분이 잘 아는 문화도 중요한 물류예요. 사람들이 문화를 즐기려고 이곳으로 모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서울의 한강은 단순한 물류를 넘어 문화의 거점이 되는 거거든요. 그렇게 되면 이제 오라고 안 해도 오고 싶은 한강이 되는 거고 오고 싶은 서울이 되는 거고 오고 싶은 대한민국이 되는 거죠.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게 된 것은 바로 이 한강으로부터 물결처럼 번져나간 것이기 때문에 미래 가치는 그런 의미에서 더욱 요동치고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나리라 이렇게 기대하고 예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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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국사범과 중죄인을 처형하던 장소였던 새남터 천주교 순교성지도 둘러봤다.

뚝길을 따라 올라가면 이촌동 아파트 단지가 나오고, 그 뒤로 새남터 천주교 순교성지가 자리하고 있죠. 이곳은 조선시대 국사범과 중죄인을 처형하던 장소였으며, 조선 세조 2년(1456)에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처형된 여섯 명의 충신 사육신이 목숨을 잃은 곳이에요. 또 1801년 신유박해에서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선교사와 수많은 신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했습니다. “이 자리가 건너편에 노량진으로 가던 나룻배를 타던 곳이었어요. 왜 이곳에서 처형을 했을까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이곳에서 범죄자를 처형해서 이런 죄를 지으면 너희들도 죽는다는 것을 보여준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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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백년다리길을 탐방한 황지유·윤보영·최수혁(왼쪽부터) 학생기자가 백빈 건널목 주변 땡땡 거리에서 지나가는 기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용산역으로 가는 길에 땡땡 거리를 지나갔어요. 유인 건널목 형태로 운영되는 백빈 건널목 주변은 최근 땡땡 거리로 불리며 인증샷 명소로 유명하죠. 경의중앙선 용산역 구내를 지나는 전동차와 무궁화 ITX 열차가 건널목을 지날 때마다 차단기 소리가 ‘땡땡’ 울려 붙여진 이름이에요. 소중 학생기자단도 마침 기차가 지나가서 기념사진을 촬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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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철도회관에서는 조선을 건립한 태조 이성계의 공덕으로 다시 세워진 연복사 오층불탑(목탑)의 건립내역을 담은 비석 연복사탑중창비도 볼 수 있다.

용산 철도회관에서는 조선을 건립한 태조 이성계의 공덕으로 다시 세워진 연복사 오층불탑(목탑)의 건립내역을 담은 비석 연복사탑중창비도 볼 수 있었죠. 개성에 있던 연복사탑중창비가 어떻게 용산 철도회관에 자리 잡게 되었을까요. 일제에 의한 국권침탈이 본격화하던 100여 년 전 무렵 일제가 개성을 지나는 경의선 철도 개설 과정에서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용산역으로 옮겨왔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용산이 철도 교통의 중심이 되면서 용산이 발전되고 우리나라가 근대화되는 계기가 된 건 맞지만 그 철도를 건설한 거는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이 대륙을 침략하기 위한 통로로 이용하기 위한 거죠. 기차가 우리에게 근대화만 가져온 게 아니라 수탈의 대상이 됐다는 것을 반증하는 예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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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역으로 가는 길에 땡땡 거리를 지나가게 된 소중 학생기자단. 유인 건널목 형태로 운영되는 백빈 건널목 주변은 인증샷 명소로 꼽힌다.

윤보영 학생기자가 “한강역사탐방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계기는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했죠. “예전의 한강은 물류의 거점이었다면 이제 새롭게 부여된 한강은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에요. 한강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으로 그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래서 예전에 한강의 나루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역사적 사실들을 현장 탐방을 통해서 알아보고 한강과 서울에 대한 역사적 자부심을 드높이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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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 한강역사해설사가 한강역사탐방은 한강의 역사뿐만 아니라 서울의 역사를 알아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 말했다.

김 해설사가 마지막으로 한강을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즐기며 한강역사탐방을 해보라고 추천해줬죠. “한강역사탐방은 한강의 역사뿐만 아니라 서울의 역사를 알아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겁니다. 탐방을 통해 그동안 잊혀 왔었던 서울의 뒷모습,  숨어 있었던 모습들을 재발견할 수 있을 테니 집 가까운 곳에서부터 코스들을 하나씩 찾아가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지금의 한강 모습은 1968년부터 정부 주도로 시작된 한강종합개발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 이전엔 자연스러운 하천이었다면 이후로는 한강이 관리되는 인공 하천으로 바뀌었는데,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오늘의 서울 오늘의 대한민국이 세계에 주목받는 동력이 됐다고 생각해요. 한강의 기적이라고 하죠. 50년 만에 서울의 모습이 이렇게 바뀌었어요. 옛 자료 사진에 등장하는 여의도의 모습은 아무도 살지 않는 모래밭이었는데 지금은 빌딩숲으로 완전히 바뀌었죠. 그런 극적인 대비를 보면서 한강역사탐방을 즐겨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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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윤보영(서울 가재울초 5)·최수혁(서울 위례초 5)·황지유(서울 봉은초 6) 학생기자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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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유역 및 인근 문화유산을 거닐며 한강역사탐방에 나선 최수혁·윤보영·황지유(왼쪽부터) 학생기자가 우리 역사의 중심에서 수천 년 세월을 말없이 흘러온 한강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번 취재를 통해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강을 활용해서 생활했는지, 다리를 놓고 철도도 생기고 어떻게 교통이 발달했는지 알게 됐습니다. 특히 홍수가 나지 않도록 한강의 폭을 더 넓힌 거라는 걸 알게 됐고, 노들섬까지 백사장이었다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다리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한강을 나룻배로 건넜다고 하던데, 힘들기도 하고 또 재밌었을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일제강점기 일본이 러·일전쟁을 위해 용산역 일대를 군용지로 썼다고 해요. 물건이 많이 모이고 지역은 발전했겠지만 우리의 조상들과 자원이 다른 나라의 전쟁을 위해 희생당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윤보영(서울 가재울초 5) 학생기자

용산역사박물관에서 출발하여 한강역사문화 탐험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취재는 걷는 것이 많아서 즐거움 반, 힘든 것 반이었어요. 비가 많이 쏟아져서 걱정이 되었지만, 한강 탐험 시간엔 비가 좀 잦아들어서 다행이었어요. 비 오는 날의 한강은 더욱 운치 있고 신비로웠습니다. 그동안 가족과 한강에 많이 가봤지만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니 새로웠어요. 지금은 없어진 한강 백사장의 모습도 궁금해졌죠. 여러분도 한강에 얽힌 역사 탐방을 직접 해보길 추천해요.
-최수혁(서울 위례초 5) 학생기자

한강 탐방을 하기 전 먼저 용산역사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현재의 용산의 위치가 (구)용산에서 (신)용산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신기했어요. 박물관 밖으로 나와 걸어 다니며 한강 탐방을 하며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소속사인 하이브 앞에도 가고, 한강대교도 보고, 새남터 성지성장도 다녀왔습니다. 기찻길과 도보가 만나는 길인 ‘땡땡 거리’는 너무 재밌고 신기한 광경이었습니다. 저희가 갔던 코스 그대로 한강 탐방을 시작해 한강과 철도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건 어떨까요.
-황지유(서울 봉은초 6)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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