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가구란 무엇인가…물음표를 뒤집다

본문

bt02b54bb928d57947a689040729afcd61.jpg

가에타노페세의 ‘홀랜드 테이블(Holland’ table)’, 1996. 테이블 상판이 네덜란드 국토 모양이다. [사진 이함캠퍼스]

“진정한 창의성은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을 때 나온다.” “반복은 재앙이다.”

이탈리아 출신 ‘디자인계 이단아’ 가에타노 페세(Gaetano Pesce·1938~2024)의 말이다. 건축가이자 예술가,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페세는 평생 ‘평범한 것’을 거부하며 작업해왔다. 항상 ‘새로움’과 ‘자유로운 표현’을 내세운 만큼 그의 디자인은 독특한 것이 특징이다. 의자든, 테이블이든 그의 손을 거쳐 나온 것은 장난기가 넘치는 것을 넘어 ‘이게 진짜 가구가 맞나?’하고 묻게 되는 것들이 많다.

btcf9226816ef630316d3038c9803a4a09.jpg

‘아무도 완벽하지 않다(Nobody’s Perfect)’ 의자들. [사진 이함캠퍼스]

국내에서 좀체 접할 수 없던 페세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소개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경기도 양평 이함캠퍼스에서 열리는 페세의 가구전 ‘다른 것이 아름답다’이다. 페세가 디자인한 가구는 1970년대부터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 소장될 만큼 해외에서 주목받았지만, 국내에서 개인전을 통해 소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전시엔 ‘업 5&6(Up 5&6)’, ‘뉴욕의 석양(Sunset In Newyork)’, ‘펠트리 체어’ 등 페세의 대표작 등 60여 점이 한자리에 망라됐다.

bt5643c73c7b1044139e0d3cf2156b4be4.jpg

여성의 신체를 닮은 UP5 의자와 공 모양의 UP6 스툴. 의자와 스툴은 줄로 연결돼 여성이 속박된 현실을 드러낸다. [사진 두양문화재단]

이번 전시작 중 1969년 출시된 ‘업 5’ 체어는 20세기 이탈리아 디자인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다. 둥글둥글한 곡선에 풍성한 부피가 돋보이는 형태가 여성의 신체를 연상시켜 ‘엄마(La Mamma)’ 라고도 불린다. 독특한 것은 발을 올려놓는 원형의 스툴(업 6)이 의자 본체에 줄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공과 사슬(ball and chain)을 닮은 줄과 스툴을 통해 페세는 여성이 자유롭지 않은 현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페세는 “여성은 사회적 편견에 묶여 있다”며, ‘업 5&6’ 디자인에 가부장제의 현실과 여성의 권리에 대한 자신의 발언을 담았다. 그러나 여성계 일각에서는 여성을 피해자로만 드러냈다고 비판해 논란이 있었던 문제의 의자이기도 하다.

‘뉴욕의 석양’은 페세가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시각화한 3인용 소파다. 수많은 창문을 연상시키는 패턴과 빌딩을 연상시키는 모양에 붉은 태양을 닮은 등받이가 눈길을 끈다. ‘업 5&6’가 의자에 사회적 발언을 담은 것이었다면, ‘뉴욕의 석양’은 소파를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도시 풍경과 시간의 흐름을 담은 하나의 조형물로 재치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bt684dafdfb57678c4deadd7d78b1af5e9.jpg

펠트리 체어. [사진 두양문화재단]

언뜻 보면 두꺼운 천을 구부리고 접어 만든 것처럼 보이는 펠트리 암체어도 페세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대표작이다. 양모 펠트에 열경화성 수지를 결합해 단단해진 구조로 재료에 대한 고정관념을 파괴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레진 등의 소재로 제작한 테이블도 페세의 ‘악동’ 같은 면모를 잘 드러낸다. 알록달록한 색상은 물론이고, 의자 다리가 물음표 모양인 ‘홀랜드 테이블’ 등 작품 하나하나가 ‘단정함’과는 거리가 먼 형태다.

1930년 11월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페세는 1950년대 말 베니스 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산업디자인연구소 실험학교에서 근무했다. 1962년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색채와 재료를 창의적으로 사용하며 예술, 건축, 디자인을 넘나들며 현대 사회를 비판하고 발언해왔다. 특히 그는 기능을 가장 중시하고 직선과 각 등 기하학적 디자인으로 공간의 질서를 중시한 ‘모더니즘’ 디자인 흐름에 반기를 들었다. “천편일률적인 것들이 사람들을 무감각하게 만든다”고 강조한 그는 “진정한 창조는 예측불가능하고, 불완전한 것에 있다”고 주장했다.

bt180b68bd7ce4c587f0c01f3bafbcb672.jpg

의자와 암체어(메리탈리아 센사피네 푸프)가 놓인 전시장. [사진 이함캠퍼스]

이번 전시에 나온 페세의 작품은 모두 두양문화재단 오황택(76) 이사장의 컬렉션이다. 경기도 양평에 자리한 이함캠퍼스는 1만평 대지 위에 미술관·카페 등 노출 콘크리트 건물 8개 동과 정원이 펼쳐진 복합문화공간이다. 1978년 단추회사 ‘두양’을 설립한 오 이사장은 2013년 재산의 80%인 약 600억원을 기부해 재단을 설립한 후 2015년 서울 가회동에 청년 인문학교 건명원을, 2022년 이함캠퍼스를 열었다.

“유명한 것보다 선입견 없이 맨눈으로 봐서 좋은 작품이 내게 좋은 작품”이라는 지론으로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디자인 가구를 수집해왔으며 뉴욕타임스에 ‘한국의 컬렉터’로 보도되기도 했다. 최근 페세 전시장에서 만난 오 이사장은 “지난해 4월 네덜란드의 한 갤러리에 우연히 페세의 가구를 보고 반해 지난 1년 간 그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9월 27일까지. 성인 2만원.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2,221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