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韓 우라늄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관세+원자력협정도 개정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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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간 관세 협상이 타결될 경우 함께 발표될 안보 분야 합의문에는 "원자력 분야에서 한국의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확대할 필요성"을 정상급에서 확인하는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유효기간이 10년가량 남은 원자력 협정을 조기 개정하는 방향성이 명시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를 위한 후속 절차로 2018년 이후 중단됐던 한·미 원자력 고위급위원회(HLBC)도 재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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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과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결단의 책상'에 앉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악관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와 관련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꾸준히 언급해온 ‘일본식 모델’의 핵심은 ‘포괄적 사전 동의’ 방식이다. 일본은 원자력 시설의 운용 범위와 절차를 사전에 미국과 협의해 정해두고,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 건건이 승인받지 않고도 독자적으로 농축과 재처리를 수행할 수 있다.

반면 한·미 간 협정은 훨씬 제한적이다. 협정 제11조에는 “한·미 고위급위원회 협의에 따라 양측이 서면 약정을 체결하면 한국이 20% 미만의 우라늄 농축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기본적으로 사안 별로 미국이 개별 허가를 해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미국산이 아닌 물질과 장비를 사용할 경우 농축·재처리가 가능하지만, 미국 외 국가와 핵 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에 정부는 현행 협정을 개정해 한국이 주도권을 갖고 농축 혹은 재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정공법’을 추진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현행 협정상으로도 미국의 승인을 받으면 20% 미만의 농축 활동은 가능하지만, 지난 10년간 한국이 한 차례도 이를 요청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보여주듯 실질적 자율권은 없다”고 말했다. 또 “특히 농축 분야에서는 한국의 권한을 넓혀주는 방향으로 미국이 협정 개정까지 열어둘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외교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 트럼프 행정부가 비확산 문제에서 비교적 유연한 태도를 보여 전향적으로 농축 권한을 보장해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지금을 협상 개시의 적기로 보는 기류도 강하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차세대 원전으로 불리는 소형모듈원자로(SMR)는 순도 19% 수준의 우라늄을 원료로 사용한다”며 “SMR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평화적 이용 범위 내에서 농축 권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양국이 농축·재처리 권한 강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더라도 이번엔 큰 틀의 방향만 확인하고 세부 조항은 앞으로 협의해 나가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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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제1차 한·미 원자력 고위급 위원회. 조태열 당시 외교부 제2차관과 엘리자베스 셔우드 랜달 당시 미국 에너지부 부장관이 모두발언을 하는 모습. 중앙포토.

다만 필요성에 대한 공감과 실제 개정은 별개의 문제라는 관측이 상당하다. 글로벌 '핵 도미노'를 자극하거나 국내 핵무장론에 불을 지필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산업적 필요성과 원전 기술 협력 명분을 내세워 현행 협정이 허용하는 범위 내의 저농축 원활화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국내적으로 기술과 설비, 전문 인력 등 기반 강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본 수준의 권한을 확보한다고 해도 핵심 역량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선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식통은 "한국에는 농축을 할 시설도, 인력도 없다. 협정이 보장해도 실제 농축을 해본 경험 자체가 없는 현 상황을 반영해 출발점을 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재처리의 문턱은 훨씬 높다.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과정에서 추출되는 플루토늄은 핵무기 연료로 곧바로 전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국내 사용 후 핵연료 저장시설이 포화 상태라는 점을 재처리 권한 확보의 주요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진전된 반응은 "한국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수준이었다고 이날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외교부 보고를 근거로 중앙일보에 밝혔다.

결국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 등을 계기로 협정 개정의 큰 틀에 공감하더라도 실질적 성과는 후속 협의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에 20% 미만 농축 권한을 최초로 부여한 현행 협정 역시 2015년 타결까지 약 4년 6개월 동안 11차례의 마라톤협상을 거쳤다.

농축과 재처리 권한은 그 자체로 핵 잠재력으로 간주되는 만큼 정부가 앞세우는 산업적 가치와 별개로 안보적 여파도 상당하다. 기술적 기반을 강화하는 한편 국제 비확산 체제를 한국이 확고히 수호한다는 점을 국내외에 각인시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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