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3500억 달러 완납 대신 연 150억 달러 분납?…한∙미 투자방식 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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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가 22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무역 합의를 최종 도출하기 위한 막바지 협상을 벌였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22일(현지시간)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함께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미 상무부 청사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만난 뒤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무역협상이 최종 합의를 앞두고 막판 조율 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전후로 협상 타결을 원하는 양국이 장관급 접촉을 이어가고 있지만, 3500억 달러(약 500조원) 대미 투자 패키지의 자금 구성(현금·대출·보증 비율)과 투자 집행 기간 등의 세부 이견 조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2시간 협상을 벌였다. 김 실장은 이날 협상 후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며 “일부 진전이 있었다”고 했지만, 잔여 쟁점에 대해 “논의를 더 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측은 지난 16일 회동에 이어 6일 만에 다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지만, 전면적인 합의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협상이 막바지라고 보면 되느냐’는 질문에 김 실장은 “협상이라는 게 늘 그렇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풀리지 않는 핵심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패키지의 현금(지분 투자) 비율, 집행 기간 등이다. 한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현금’ 중심의 선불 납입 방식은 외환 여력 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설명했고, 미국이 이를 일부 수용하면서 협상은 최근 속도를 냈다.

자금 구성과 투자 기간은 맞물려 있다. 현금 비중이 확정되면, 외환 조달 능력에 따라 투자 기간이 조정되는 구조다. 한국은 현금 투자 금액은 2000억 달러(약 290조원) 선으로 하고, 연간 150억 달러(약 22조 원) 안팎 분할 투자를 제시했다. 하지만 미국은 200억~250억 달러(약 36조 원) 이상을 요구하며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연 150억 달러를 요구하는 건 외환시장 안정 한도를 고려한 판단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외환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고 조달 가능한 외화 규모는 연 150억~200억 달러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의 외환 동원 능력상 투자 마무리까지 최소 10년 이상이 필요하지만, 미국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맞추려면 최대 8년 내 분할 납부가 불가피하다.

통화스와프(양국 통화 맞교환 협약)와 투자 배분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국이 요구하는 통화스와프 등은 투자 구조가 정해진 이후에 논의할 문제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공개된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한·미 협상은 통화스와프보다 투자 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직접투자, 대출, 보증이 혼합된 형태의 균형 잡힌 투자 패키지를 구성하는 데 협상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며 “통화스와프가 필요한지, 또 어느 정도 규모로 추진될지는 전적으로 협상 구조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박성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는 “미국이 ‘3500억 달러 전액 현금’ 요구에서 물러서며 협상에 현실적 유연성(flexibility)이 생겼다”며 “이제는 한국이 분할 투자 구조 안에서 국익을 최대한 반영할 협상력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단순 현금 납입보다 한국의 기술·산업 경쟁력이 드러나는 형태의 기여 구조를 설계해야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협상이 막판 조율 단계에 접어들면서,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정상이 양해각서(MOU) 체결을 발표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 아시아 순방을 떠나 말레이시아와 일본을 방문한 뒤 29일 APEC이 열리는 한국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역시 다자외교 무대에서 ‘트럼프 관세’의 외교적 성과를 부각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도 우위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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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CNN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다만 협상 타결 시점에 대해선 신중론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CNN 인터뷰에서 “조정과 교정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김용범 실장도 “APEC이 중요한 계기이긴 하지만, APEC 전까지 후속 대면 협상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장관급 논의는 이어지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결단이 나오지 않아 협상이 교착 상태에 있다”며 “미국은 거래론적 관점에서 한국이 더 양보할 여지를 탐색하는 국면으로, 현 단계에서 MOU 체결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는 “다만 양국 모두 협상 장기화가 부담인 만큼, ‘공동성명(Joint Statement)’ 형태의 형식적 진전 연출 가능성은 있다”고 전망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이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통상 협상 합의문이 채택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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