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고리 2호기 ‘계속운전’ 미뤄…탈원전·친원전 결정 못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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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고리원자력발전소 2호기(왼쪽)의 사고관리계획서를 심의·승인했다. 오른쪽은 영구정지 8년 만인 지난 6월 해체가 결정된 고리원전 1호기. 송봉근 기자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가 부산시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 2호기를 계속 가동할지에 대한 결정을 또 미뤘다. 지난달 25일에 이어 두 번째다. 설계수명 만료로 2년7개월가량 가동이 중단된 고리 2호기의 재가동 시기는 더 늦춰지게 됐다.
원안위는 23일 제223회 회의를 열고 고리 2호기에 대한 사고관리 계획서 승인안(1호 안건)과 계속운전 허가안(2호 안건)을 심의·의결 안건으로 다뤘으나 1호 안건만 의결하고, 2호 안건에 대해서는 재상정을 결정했다. 2호 안건은 다음 달 13일 다시 논의될 예정이다. 이번 결정은 고리 2호기에 대한 사고관리 계획의 적합성은 확인했지만, 실질적 재가동 승인은 더 검토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원전 운전이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방사선환경영향평가’가 이날 회의에서 쟁점이 됐다. 이 평가는 고리 2호기 건설 당시 허가 서류가 아니었지만, 1982년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허가 서류가 됐다. 한수원은 새로운 평가를 진행해 평가서를 제출했지만, 진재용 원안위 위원은 “운영허가 당시와 변화 여부를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김기수 위원은 “이미 다 달라진 것을 전제로 최신 자료로 평가한 만큼 실익이 없다”며 고려사항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최원호 원안위원장은 관련 참고자료 제시 등을 이유로 재상정 결정을 내렸다. 진 위원은 논의 과정에서 “한수원이 계속운전 신청 기한을 1년 넘겨서 신청했는데, 심의해 주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며 사실상 유일하게 의결 반대 의사를 표했다. 한수원은 문재인 정부 당시 탈원전 정책 여파로 고리 2호기에 대한 계속승인 신청서를 법적 기한(설계 만료 5~2년 전)보다 1년 늦은 2022년 4월 제출했다. 이 때문에 한수원은 과태료 300만원을 물었다.
원전업계에선 고리 2호기 재가동 시점이 미뤄지면서 전력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안전성이 확보된 원전도 행정절차 지연으로 가동 중단되는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며 “그 기간에 전력을 생산하지 못해 발생하는 기회비용과 미가동 원전에 대한 유지관리비 등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리 2호기는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원전으로, 40년간 전력을 공급해 오다 2023년 4월 설계 수명이 만료되면서 가동을 멈췄다. 현재 영구폐쇄되지 않은 국내 원전 중 가장 오래된 원전이다. 설비 용량 685메가와트(㎿)급으로 수십~수백 개의 대형 태양광 단지급의 전력 충당이 가능한 발전소다. 정용훈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안전성 입증을 마친 원전에 대해서는 80년 운전이 가능하도록 승인해 주고 있다”며 “고리 2호기도 안전성 측면에서 미국 원전에 전혀 부족한 점이 없어 앞으로 설계 수명 80~100년까지도 무난히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AI 인프라 확충에 필요한 에너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안전성이 담보된 원전을 계속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원전업계에서 이번 원안위 결정에 주목한 것은 이번 결정이 ‘탈원전’과 ‘친원전’ 사이 이재명 정부의 원전 정책 방향의 가늠자가 될 수 있어서다. 고리 2호기는 한수원이 원안위에 계속운전을 신청한 10기 원전 중 첫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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