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트럼프 “한국 준비됐다면 나도 준비돼”…관세협상 수용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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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3500억 달러(약 500조원) 투자 협상 타결을 압박하는 가운데, 한국은 어느 쪽을 택해도 부담이 따르는 정치·경제적 딜레마에 직면했다. 타결 시 재정 부담과 외환 불안을, 결렬 시 시장 불안과 외교 리스크를 동시에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지난 24일(현지시간) 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미 협상에 대해 “타결(being finalized)에 매우 가깝다”며 “그들이 준비됐다면, 나도 준비됐다”고 말했다. 29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 정부의 결단을 재촉하는 발언을 했다.

미국은 3500억 달러 가운데 2000억 달러를 현금으로 하되, 연 200억~250억 달러 이상 나눠서 투자하는 걸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연간 150억 달러 안팎의 분할 투자가 최대치란 입장이다. 국내 외환시장을 고려한 판단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3일 통화정책방향 회의 후 열린 회견에서 “외환시장에 큰 부담 없이 조달할 수 있는 금액이 150억∼200억 달러”라고 밝혔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24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유사한 논의가 있었다”며 “어느 수준이 적정한지를 두고 양국이 팽팽히 맞서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지, 협상을 더 끌고 갈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4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막 이전에 미국과의 추가 대면 협상은 어렵다”며 “APEC 계기 타결을 기대한다면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CNN 인터뷰에서 “조정·교정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속도 조절을 시사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부분 합의’ 가능성을 두고 정부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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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협상이 길어지면서 시장 불안은 커지고 있다. 반도체·자동차·철강 등 한국의 주력 수출품이 최혜국 대우(MFN) 적용에서 제외되거나, 관세 인하 혜택을 받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여 있어서다. 이미 대미(對美) 자동차 수출은 지난 3월 이후 7개월 연속 감소(전년 대비)했다.

원화값은 지난 7월 달러당 1390원대에서 이달 1440원대(장중)까지 밀렸다. 이에 따라 3500억 달러 규모 투자의 원화 환산 금액도 487조원에서 504조원으로 17조원가량 늘었다. 미국의 요구대로 하면 정부의 재정 부담도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경주 APEC과 이를 계기로 진행할 한·미, 한·중 정상회담은 ‘트럼프 관세’의 외교적 성과를 부각할 수 있는 무대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공언한  “좋은 협상 결과(fantastic deal)”가 미국 입장에서도 필요하단 의미다. 특히 30일 미·중 정상회담보다 하루 앞서 열리는 한·미 회담에서 실질적 진전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도 한·미 관세협상을 측면 지원하는 차원에서 29일 한국 기업 총수들과 만찬을 가질 예정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장기화는 양국 모두에 부정적이므로, 양측이 실익을 고려한 정치적 절충점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양해각서(MOU)든 공동선언이든, 기본 틀만 명확히 문서로 남긴다면 의미 있는 성과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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