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현금 쓸 곳이 없네…지폐 발행도 10년 뒤 최대 절반까지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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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현금 사회 가속화

한국을 방문한 일본 모델이 교통카드 잔액이 부족해 버스를 타지 못할 뻔했으나, 버스 기사의 배려로 숙소까지 이동한 사연이 온라인에서 화제다. 해당 버스는 ‘현금 없는 버스’였다. 한국인의 따뜻한 배려로 주목을 받은 영상이지만, 한편으로는 ‘현금 없는 사회’ 확산에 따른 외국인과 금융 취약계층의 불편을 보여준 장면이다.

실제 최근 현금을 받지 않는 식당과 카페가 늘고, 현금 결제가 불가능한 버스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올해 초 한국은행이 발간한 ‘2024년 지급수단 및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지급수단 중 현금 이용 비중(건수 기준)은 15.9%로 신용카드(46.2%)와 체크카드(16.4%)에 이어 세 번째였다. 2013년 41%에 달했으나 10년 만에 10%대 중반으로 떨어졌다. 연령별로는 60대 이상(30.2%)에서 현금 이용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현금 결제가 불가능한 장소도 빠르게 늘고 있다. 28일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전국 광역 시·도의 버스 운영 현황을 분석한 결과, 17곳 중 10곳에 ‘현금 없는 버스’가 도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광주·대구·대전·세종·인천·제주 등 6곳은 전면 시행 중이며, 서울·경기·충남·전남 등 4곳은 부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프랜차이즈 카페와 음식점에서도 ‘현금 없는 매장’이 늘고 있다. 스타벅스는 2018년부터 일부 매장에서 현금 결제를 받지 않고 있으며, 최근 빠르게 늘어나는 무인 점포의 키오스크 역시 카드나 간편결제만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현금 없는 사회’가 빠르게 오면서 한국은행과 조폐공사는 올해 ‘현금 사용 감소에 대응한 조폐산업 발전 방안’ 비공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정태호 의원실이 입수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신규 화폐 발행량은 현재 연평균 4억~8억장 수준에서 2035년에는 3억1000만~4억4000만장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10년 안에 발행 규모가 최대 절반 가까이 감소할 수 있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조폐공사는 생산설비와 인력을 점진적으로 축소할 완충 기간을 마련해야 한다”며 “한국은행 역시 유통 화폐의 품질과 보안을 개선하는 차원에서 새 은행권 발행을 대안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현금자동입출기(ATM) 등 화폐 접근성이 전반적으로 낮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남 신안(24.3%), 경북 군위(31.4%), 경북 봉화(33.5%) 등 지방 소도시가 ATM 보급이 부족한 대표적 취약 지역으로 꼽혔다. 취약계층의 현금 이용권을 보장하기 위한 해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게 보고서의 제안이다. 영국은 금융포용 차원에서 수수료 없는 ATM을 확대하고, 저소득 지역에 무료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대형 점포가 줄어든 스웨덴은 지급결제서비스법을 개정해 주요 시중은행에 현금 취급 의무를 법으로 부과했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무현금 매장’을 금지하는 법안을 시행 중이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CBDC 등 지급 결제 혁신도 중요하지만, 혁신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반드시 생길 수밖에 없다”며 “지급결제는 국민의 기본권적 수단인데 변화 속도가 빠르다”고 진단했다. 정태호 의원은 “고령층이나 외국인 등에게 최소한의 현금 결제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를 고민해볼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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