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부녀 무죄…재판부 “검찰 자백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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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의 피고인이었던 부녀가 28일 광주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기자회견 하고 있다. 이들은 2009년 청산가리를 넣은 막걸리를 아내와 주민들이 마시게 해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과 징역 20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이날 무죄를 선고받았다. [뉴시스]

2009년 7월 발생한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중형이 확정됐던 부녀(父女)가 사건 발생 16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광주고법 형사2부(부장 이의영)는 28일 존속살해 등 혐의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형이 확정됐던 백모(75)씨와 백씨의 딸(41)에 대한 재심에서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백씨 부녀는 2009년 7월 6일 순천시 한 마을에서 청산가리가 섞인 막걸리를 마시게 해 아내이자 어머니 A씨(당시 59세) 등 주민 2명을 살해하고, 2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백씨 부녀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백씨와 딸에게 각각 무기징역,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2012년 3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후로도 재심을 신청한 끝에 지난해 1월 재심 개시가 결정됐다.

재심 재판부는 검찰 수사의 위법성을 무죄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이날 “검찰의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조서의 허위 작성과 자백 강요 등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부녀간 부적절한 관계가 A씨를 살해한 동기였다는 피고인들의 진술 등은 허위 자백으로 판단해 증거에서 제외했다.

재판부는 이날 “딸 백씨는 지적 능력과 학력 등을 살펴볼 때 지능지수 74점 정도의 경계성 지능을 가졌다. 그럼에도 여러 진술조서 작성 시 신뢰관계자의 동석이 이뤄지지 않은 점, 진술 거부권이 고지되지 않은 점 등을 볼 때 유도신문을 했음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아버지 백씨에 대해서는 “초등학교를 중퇴해 비교적 쉬운 글자 정도만 읽을 수 있는 학력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모든 조서를  백씨에게 읽어주거나 확인해줬다는 자료가 없어 형사소송법상 열람권 보장이 안 된 조사로 위법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폐쇄회로TV(CCTV) 영상 등 증거물의 미제출, 현장검증에서 재현한 청산가리 투여량과 정밀 분석을 통해 추산한 실제 희석량 간 차이 등을 무죄 판결의 근거로 제시했다.

아버지 백씨는 무죄 선고 후 “(검찰의 강압수사는)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온다. 수사관이 제일 나쁜 사람”이라며 “(검찰 수사 당시) 대질신문을 요구하면 (옆에 있던 사람에게)‘뺨을 때려버려라’라고 (위협)했다”고 말했다.

백씨 딸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수사관들이 아버지에게 윽박지르는 등 강압 수사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백씨 부녀의 법률 대리인인 박준영 변호사는 “백씨 부녀는 아내이자 어머니를 죽였다는 낙인 속에서 16년을 버텨야 했다. 특히 ‘부적절한 부녀 관계’라는 검사에 의해 만들어진 참혹한 낙인이었다”며 “(검찰의) 증거 조작은 당시 판사를 속였고, 대법원까지 속였다”고 했다.

사건을 담당한 검사와 수사관 등은 재심이 재개된 후에도 수사 절차에 문제가 없었음을 강조해왔다. 당시 수사 검사 B씨(49)는 지난 8월 19일 재판 결심공판에 출석해 “피고인들의 진술을 미리 정해놓고 짜 맞춘 수사가 아니었다”며 “(딸이) 아빠를 ‘짐승’이라고 표현한 자술서 내용 등을 지금도 기억한다. 부녀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경찰의 관련 범죄 첩보도 있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재심 판결문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거쳐 상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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