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23년 만에 '핵잠'의 꿈 이루나..."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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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23년 만에 ‘핵추진 잠수함(핵잠)’의 꿈을 이룰까.

이재명 대통령(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가진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일단 여건은 마련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인 ‘트루스소셜’에 “한ㆍ미 군사동맹은 어느 때보다도 강력해졌다. 나는 한국이 현재 보유한 구식이고 기동성이 떨어지는 디젤 잠수함 대신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썼다.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핵추진 잠수함 연료를 우리가 공급받을 수 있도록 (트럼프) 대통령께서 결단해주면 좋겠다”고 제안한 데 대해 화답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29일 언론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에 대한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북한의 핵잠 건조 등 여건 변화에 따라 한국이 핵잠 능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을 표하면서 후속 협의를 해 나가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한국의 핵잠 사업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한국은 핵잠 사업을 꾸준하게 추진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2003년 6월 2일 당시 조성태 국방부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핵잠 건조 계획을 보고했다. 그러나 이 계획이 언론에 일찍 알려지면서 무산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9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미국 해군의 핵잠을 사거나 빌리겠다고 요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당시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이 반대했다. 관련 사정을 잘 아는 정부 소식통은 “핵잠 사업을 추진한 지 20년 넘으면서 때가 무르익었다. 이에 이 대통령이 화두를 던지자, 트럼프 대통령이 흔쾌히 응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핵잠은 내부 원자로의 열로 증기 터빈을 돌려서 동력을 생산해 항해한다. 크게 핵탄두를 단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으로 무장한 전략잠수함(SSBN), 적의 함선이나 잠수함을 사냥하는 공격잠수함(SSN) 등으로 나뉜다. 한국이 보유하려는 핵잠은 공격잠수함이다.

박경민 기자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핵보유국(P5)인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 등 5개국과 인도만이 핵잠을 운용 중이다. 브라질은 프랑스의 지원으로 핵잠을 건조하고 있다. 호주는 미국·영국의 도움을 받아 핵잠을 도입하려 한다. 북한은 올해까지 ‘핵동력전략유도탄잠수함(SSBN)’을 확보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핵잠은 물과 식량이 떨어질 때까지 수중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고, 속력이 빠르다는 게 장점이다. 지난 22일 해군이 진수한 장영실함은 공기 불요(필요하지 않음) 추진 체계(AIP)을 갖췄고 리튬이온 배터리로 움직인다. 재래식(비핵) 추진 잠수함 중에서 가장 오래 잠항할 수 있는데, 3주 정도에 불과하다. 3주 넘으면 수면 가까이 올라와 공기를 넣어 발전기를 돌려서 배터리를 충전해야 한다.
핵잠은 장거리 항해와 은밀한 기동이 가능해 유사시 북한의 핵 미사일 발사 잠수함을 상대하는 데 적격이다. 그래서 한국은 핵잠에 매달려 왔고, 독자적으로 관련 기술을 확보해왔다. 3600t급 장영실함은 디젤-전기 추진 방식이지만, 핵 추진으로 바꿀 수 있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은 핵잠 원자로로 쓸 수 있는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를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원자력협정(협정)에 가로막혔다. 협정 때문에 한국은 핵잠의 동력원인 핵연료를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한국은 1956년 미국의 교육·장비·자금 지원으로 원자력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고, 그 대가로 협정을 맺었다. 협정 13조(폭발 또는 군사적 적용 금지)에서 “어떠한 군사적 목적을 위해서도 이용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이 조항이 핵무기만 해당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미국에서 핵추진도 해당한다고 해석해 왔다. 핵잠 원자로에 넣을 우라늄을 농축하는 길도 협정이 가로막았다.

22일 경남 거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열린 장영실함(3600t급) 진수식. 이 잠수함은 재래식(비핵) 잠수함에서 제일 오래인 3주 동안 잠항할 수 있다. 3주가 지나면 수면 가까이 올라와 배터리를 충전해야만 한다. 반면 핵추진 잠수함은 물과 식량이 떨어질 때까지 무제한 잠항이 가능하다. 뉴스1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족쇄’을 단번에 풀었다. 노무현 정부 핵잠 사업단에 있었던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협정을 개정하지 않고 행정명령으로 한국 핵잠을 예외로 인정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30일 국회 국방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핵잠이 최소 4척 이상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석종건 방위사업청장은 핵잠 건조 기간에 대해 “선진국 사례를 보면 10년 정도”라며 “역량을 통합하면 단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하는 조선업계 관계자는 “원자로를 검증한 뒤 첫 핵잠을 설계·건조·진수하기까지 15년 걸린다”고 말했다.
핵잠은 상당히 비싸다. 잠수함장 출신인 최일 잠수함연구소 소장은 “핵연료 취급 설비·운용 인력 교육·원자로 안전체계 등을 새로 갖춰야 하므로 천문학적 예산이 든다”고 말했다. 브라질은 첫 핵잠의 건조 비용을 74억 달러(약 10조원)로 예상했다. 다만 두 번째 핵잠은 12억 달러(약 1조 7000억원)로 떨어질 전망이다.
신범철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북한은 올해까지 핵잠을 내놓겠다고 주장하고, 일본은 핵추진을 의미하는 ‘차세대 추진력’ 잠수함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까지 가세하면 동북 아시아의 군비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 센터장은 이어 “북한은 한국 핵잠에 대해 반발해 ‘철저히 상응한 힘으로써 견제한다’며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며 “호주의 핵잠 사업에 비판적인 중국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30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2025년도 종합 국정감사에서 핵추진 잠수함에 대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
또 걸리는 대목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의 또 다른 글에서 “한국의 핵잠은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할 것”이라며 “미국의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핵잠을 독자 건조하고, 핵연료를 미국에서 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필라델피아 조선소는 한화오션이 지난해 인수한 필리 조선소를 뜻한다. 이 조선소는 현재 핵잠을 건조할 시설과 장비가 없다. 한국이 여기에 대규모 투자하라는 요구로 해석할 수도 있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AIDA) 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한국 핵잠을 승인한 것으로 보인다”며 “‘오커스’처럼 한국이 미국의 핵잠을 사거나 미국의 통제를 받으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유 연구위원은 미 해군의 잠수함 작전 과정을 이수한 경력이 있다. 오커스(AUKUS)는 2021년 미국·영국·호주 3개국이 맺은 안보 파트너십이다. 이에 따라 호주는 미국의 핵잠을 사고, 미·영의 기술을 받아 신형 핵잠을 만든다. 단 원자로와 핵물질은 미·영이 관리한다. 호주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비핵 국가이기 때문이다.
유 연구위원은 “미국이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려고 역시 핵잠을 바라는 일본까지 엮어 동북 아시아판 오커스인 ‘코저스(KORJUS)’를 제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규백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필리 조선소 건조)에 대해서는 한·미 간 추가적인 논의를 반드시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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