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3대 걸친 장인 손맛을 데이터화…1020 홀린 '할매 디저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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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로컬, 비 로컬

‘지방 소멸 위기, 로컬 산업이 해결할 수 있을까?’ 지역 기반으로 시작해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글로컬’ 브랜드가 나오는 요즘, 로컬은 지역 고유의 가치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시키는 미래의 라이프스타일 산업입니다. 비크닉은 이러한 잠재성에 주목, 지역 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경쟁력을 키워가는 브랜드·크리에이터·이벤트를 집중 조망하고자 합니다. 새로운 시리즈 ‘뉴 로컬, 비 로컬’를 통해 정부·지자체·기업 등이 참여하는 새로운 지역 활성화의 움직임도 담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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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과 등 전통 디저트 상차림 이미지. 선미한과

쿠키 대신 약과, 케이크 대신 개성주악이 진열된 디저트 카페. 요즘은 낯설지 않은 장면입니다. 지난 2023년 시작된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 열풍 이후 레트로 감성과 함께 전통 간식이 새로운 취향으로 부상했습니다. 이제는 외국인도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어요. 올해 7월 외국인 신용카드 소비 건수를 분석한 결과, 전통 디저트 카테고리는 전년 대비 76.9% 늘며 전체 음식 분야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어요(한국관광공사).

명절용 먹거리를 넘어선 인기에 변화도 눈에 띕니다. 강원도 사천면의 ‘모래내 한과마을’이 대표적인 곳이죠. 130년이나 된 이 동네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한과를 만드는 국내 유일의 집성촌인데요, 모든 과정을 100% 수작업으로 이어오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최근 한과의 현대적 변화를 실험하는 젊은 주인들이 늘고 있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 통할법한 비주얼 중심 전략을 짜거나, 과일·치즈·초콜릿 등 다양한 조합으로 고객층을 넓히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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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파리 'K-스트리트 페스티벌'에서 선미한과 부스를 체험 중인 외국인들. 선미한과

‘선미한과’는 그중에서도 눈에 띕니다. 지난해 9월 강릉 대표 로컬 커피 브랜드 테라로사로와 ‘커피 한과’ 협업 제품을 선보이면서 이름을 알린 곳인데요.로컬의 감각을 더해 전통을 재정의한 디저트로 연평균 매출 65% 성장을 기록 중인 브랜드죠. 지난 5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제주 공식 만찬의 디저트가 된 이후 9월엔 프랑스 파리 ‘K-스트리트 페스티벌’에도 참여했어요. 또 오뚜기 협업, 반얀트리·JW메리어트호텔 납품 등으로 판로를 넓혀가며 규모의 비즈니스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무엇이 선미한과의 남다름을 이끌었을까요. 비크닉이 그 비결을 들여다봤습니다.

‘장인정신’을 세련되게 브랜딩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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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부터 이어진 가업을 3세대에 걸쳐 바꿔온 선미한과의 구성원들. 선미한과

선미한과는 1939년 ‘최씨방앗간’으로 시작, 2001년 하나의 브랜드로 거듭났어요. 현재 김성래(35) 대표는 창업자의 손자로, 2018년 그가 합류하면서 전환점을 만들었죠. LG전자에서 품질 데이터 연구원으로 일했던 김 대표는 “내 기술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며 고향 강릉으로 돌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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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미한과가 무첨가 제조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전통다움'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선미한과

가업을 잇기로 결심한 그는 ‘한과 시장에서 프리미엄의 기준은 무엇인가’를 가장 먼저 고심했다고 해요. 그리고 내린 결론은 ‘부드러움’이었어요. “전통이 고루하게 느껴진다면, 해석이 낡은 것일 뿐”이라며 “한과의 본질은 부드러움이기 때문에, 제일 먼저 정체성으로 삼고 접근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죠. 팽화를 위해 첨가제를 쓰지 않고, 찹쌀·콩물·조청만으로 반죽을 부풀리는 ‘무첨가 제조’를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프리미엄은 복잡한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감산(減算)의 미학’에서 시작된다는 하나의 예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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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등 장비를 도입해 공정 효율화 개선에 나선 선미한과. 선미한과

또 다른 전략은 전통을 공학의 언어로 바꾸는 것이었어요. 지금까지 감으로 이어져 온 장인정신을 데이터로 옮겼어요. 한과의 핵심 공정인 20일 이상 발효, 순수 콩물 반죽, 100% 조청 제조법은 그대로 유지하되, 발효 온도·수분율·유탕 시간을 정밀하게 기록하는 겁니다. 김 대표는 이 과정을 ‘데이터화된 장인정신’이라 불러요. 스마트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을 도입해 유탕 온도와 발효 데이터를 자동 기록하고, 기준을 벗어나면 경보가 울리게 했어요. 세척·건조 같은 반복 공정은 자동화하면서도, 발효·수분 조절 같은 섬세한 과정은 여전히 사람에게 맡기고요.

손맛에서 데이터로, ‘감’을 잃지 않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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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2024년 선미한과의 생산 및 제조 환경 변화 과정. 선미한과

하지만 기술 개선만으로는 빈틈이 보였습니다. 생산성을 고심한 그는 작업 환경 개선에 방점을 찍었어요. 전통 간식과 같이 세밀한 작업을 하려면 어떤 곳에서 어떻게 일하느냐가 관건이라는 생각에서였죠. 실제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되는 ‘입식 제조’를 도입한 이후 생산성은 40% 가까이 향상됐다고 합니다. 또 명절이 아닌 비수기에도 발효·건조 공정을 선행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수기 생산량을 조정해 파손·폐기 리스크를 줄였습니다.

데이터 관리로 디지털은 곧 경영 전략이 됐습니다. 생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재고 관리와 수요 예측 시스템은 자연스럽게 판매 구조의 디지털화로 이어졌죠. 김 대표는 “제조의 디지털화가 완성되면, 판매의 디지털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했어요. 포털 커머스 입점은 그 연장선이었죠. 온라인 고객의 리뷰와 구매 패턴이 곧 연구·개발의 데이터가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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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높은 판매율을 기록 중인 선미한과의 소비자 리뷰. 네이버 캡처

눈에 띄는 변화는 서서히 나타났습니다. 온라인 매출 비중이 전체의 60%로 늘었고, 브랜드 검색량은 매년 65%씩 뛰었어요. 주 고객층도 명절 선물용 중장년층에서 30대 여성 중심으로 옮겨갔고요. 명절 시즌에 매출이 집중되던 기존 한과 시장 구조를 깨고, 일상 디저트로의 확장을 이뤄낸 셈이죠.

K-디저트, 공감의 언어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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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의 한과를 집어 올리는 모습. 선미한과

선미한과는 국내외에서 다른 전략으로 승부합니다. K푸드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때보다 높은 요즘, 글로벌 시장에선 한국의 전통 간식에 ‘건강’ ‘정직’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워요. 선미한과는 파리 ‘K-스트리트 페스티벌’ 현장에서 직접 부스를 운영하며 완판을 기록했습니다. 김 대표는 “반응이 한국과 거의 같아 놀랐다”면서 “‘기름에 튀겼는데도 느끼하지 않다’ ‘글루텐프리라 좋다’는 피드백이 대부분이었고, 건강·발효·무첨가는 세계 어디서든 동일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덧붙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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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와 협업 컬렉션을 선보인 선미한과의 제품들. 오뚜기

반면 국내에서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변주하는 ‘협업’에 주력합니다. 올해 선미한과는 설에 이어 추석 시즌에 오뚜기와 손잡고, 카레·스프·진라면에서 모티브를 얻은 한과 선물 세트를 선보였죠. 오뚜기 관계자는 “한과는 한국 고유의 문화적·역사적 가치를 담고 있음과 동시에, 트렌드를 반영한 레시피를 적용할 수 있어 K-푸드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며 협업의 취지를 설명했어요.

전통의 지속 가능성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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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의 쇼룸에 전시된 선미한과 제품들. 선미한과

김 대표는 한과를 더는 ‘먹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그래서 선미한과는 포장·향·컬러·질감까지 하나의 경험 단위로 디자인하고,강릉한과마을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쇼룸과 한과 라운지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어요.다음 목표는 ‘명절을 넘어서는’ 확장입니다. 선미한과는 2035년 매출 115억 원을 목표로, 강릉에 1만1595㎡(3500평) 규모의 통합 캠퍼스를 짓고 있어요. 생산·물류·체험이 결합한 복합형 공간으로, 전통식품 산업을 관광과 연결하려는 구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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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현대적으로 번역하는 데 집중하기로 한 브랜드. 선미한과

그는 “소상공인도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면서 “공급자가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식이 있어야 전통도 계속된다”는 믿음으로 기술과 제도를 바꿔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고온 항로에서도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수출용 패키징 R&D, 공정 표준화, 인증 현대화 등을 추진 중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민텔(Mintel)은 ‘2026 식음료 트렌드 전망’ 보고서에서 “소비자는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다. 대신 과거에서 신뢰를 소비한다”고 분석했어요.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오래된 기술과 재료가 주는 안정감, 그리고 ‘진짜에 대한 욕망’을 찾는다는 의미죠. 전통은 단순히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맥락에서 다시 경험되고 산업으로 설계될 때 비로소 살아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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