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서울 안가도 되것네유" 산골 어르신 웃게한 '바퀴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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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충북 영동군 상촌면 복지회관 앞에 설치한 이동형 병원에서 마을 주민들이 진료를 받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꼭 병원 같네" 대형 트레일러 붙인 이동형 병원

지난달 29일 충북 영동군 황간면 상촌면 복지회관. 12m 길이의 대형 트레일러 3대를 T자 형태로 이어 붙인 ‘이동형 병원’이 복지회관 앞마당을 꽉 채웠다. 환자 대기실과 진료실, 검사실 등을 갖춘 순회 진료용 의료 시설이었다.

주민 이여임(83)씨는 리프트를 타고 접수대에 들어선 뒤 “아이고, 훌륭해라. 꼭 병원 같네”라고 말했다. 이씨는 “얼마 전 자전거를 타다 넘어진 뒤 허리 통증으로 끙끙 앓다가 진료를 신청했다”며 “영동읍에 있는 병원을 가려 해도 버스로 40~50분씩 걸려서 쉽지 않은데 의료진이 코앞까지 와주니 너무 좋다”고 했다.

이정희(90)씨는 이날 외과 진료를 맡은 박윤상 청주원광효도요양병원 원장에게 손목 진찰을 받았다. 이씨는 3개월 전 오른쪽 손목이 부러진 뒤로 왕복 6시간이 넘는 서울의 한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아왔다. 이날 이씨가 엑스선(X-ray) 촬영을 한 후 10분도 안 돼 검사 결과가 진료실로 전송됐다. 박 원장은 “뼈가 잘 붙었다. 그래도 연세가 있으시니 최대한 움직이지 마시고, 3개월 뒤에 경과를 살펴보는 게 좋겠다”고 진단하자, 이씨는 “이제 서울을 안 가도 되것네유”라며 웃었다.

이날 영동군에 등장한 트레일러 병원은 ‘5G 기반 이동형 유연의료 플랫폼 사업’을 통해 개발한 의료시스템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4개 부처와 고려대 안암병원 등이 협력해 개발했다. 코로나19 펜데믹과 같은 감염병 발생과 대형 참사 현장에 대응하기 위해 설계됐으며, 평소엔 의료시설이 취약한 농어촌 지역을 돌며 순회 진료로 활용할 수 있다. 국비 465억원이 투입된 시스템은 실시간 영상 전송과 도시 병원과의 원격 협진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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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충북 영동군 상촌면에 들어선 이동형 병원에서 마을 주민들이 진료를 접수하고 있다. 환자 상태가 병원정보시스템에 입력되면 진료 의사에게 실시간 전송된다. 김성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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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군 상촌면에 복지회관 앞에서 설치된 이동형 유연의료 플랫폼. 대형 트럭 3대를 붙이자 진료실과 검사실이 만들어졌다. 중앙 트레일러는 6포트로 이곳에 병원체 모듈을 추가할 수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진료부터 치료까지…수술실·중환자실 운용 가능 

이동형 의료시스템은 현재 현장 지휘통제와 진료공간 등 7대 차량이 개발됐다. 6개 포트를 가진 중심 차량에 진료실 등 각 모듈을 붙이는 구조다. 울퉁불퉁한 지형에서도 진료할 수 있도록 자동 수평·도킹 기술을 탑재했다. 상황에 따라 수술실과 중환자실, 집중치료실을 운영할 수 있다. 차 안엔 초음파·심전도·혈액분석기·자동 요검사기·원심분리기 등 진단·검사장비가 장착됐다.

감염병 현장 대응을 위해 외부 바이러스의 유입을 막는 음양압 공조시스템, 12시간 동안 독립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무정전전원시스템(UPS)도 갖췄다. 이동형 병원이 열리게 되면 차폭이 2m에서 4m로 확장된다.

시스템 개발에 참여한 이호규 고려대의료원 교수는 “기존 지자체가 하는 이동진료소가 만성질환 관리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이동형 병원은 X-ray 촬영과 초음파 검사, 간 기능 검사, 혈액검사 등 2차 병원에 준하는 검진과 치료가 가능하다”며 “모든 장비가 차량에 매립된 형태라 현장에 도착함과 동시에 의료활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병원체 모듈 7개 외에도 대형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모듈을 더 붙일 수 있다. 에어 텐트로 된 야외 병상 운용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7월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간 이동형 병원은 충북의 인구감소지역인 제천·괴산·옥천·영동·단양·보은 등 6개 시·군을 돌며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주로 병원이 멀어 간단한 건강검진조차 어려운 지역들이다. 진료는 청주의료원과 충주의료원, 충북의사회 봉사단 소속 의사가 하고 있고, 각 시·군 보건소가 지원한다. 지금까지 8회 순회 진료에 나서 주민 400여 명을 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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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형 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주민들이 수직 이동 리프트를 타고 지상에 내려온 모습. 김성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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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형 병원 진료실에서 진찰을 받은 주민이 X-ray 촬영을 위해 검사실로 이동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충북 인구감소지역서 첫 시범 사업…"진료 과목 확대"

이날 상촌면에서 현장 진료를 신청한 주민은 대부분 70~90대 고령 노인이었다. 오랜만에 의사를 만난 주민들은 “다리가 저리다”, “속이 쓰리다”, “손가락을 크게 베었는데 통증이 계속된다”는 등의 각종 질문을 쏟아냈다. 강모(79)씨는 “심장질환으로 시술을 받은 터라 후유증 관리를 위해 병원을 자주 가고 싶지만, 영동군에 종합병원이 없어서 대전까지 나가야 한다”며 “혈압은 다소 높게 나왔지만, 혈액 검사는 정상이라고 나와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충북도 보건정책과 심준보 주무관은 “이동형 병원을 찾는 고령 어르신 상당수는 고혈압이나 근골계 통증, 소화계통 불편 등 만성 질환을 앓고 있음에도 가까운 곳에 병원이 없다 보니 치료를 미루는 경향이 있다”며 “이동형 병원은 현장 검진부터 진단 결과까지 받을 수 있어 주민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동형 병원 시범사업은 오는 5일 영동군 용화면, 오는 26일 단양군 매포읍 등 2곳에 순회 진료를 나간 뒤 올해 일정을 마무리한다. 한찬오 충북도 보건정책과장은 “이동형 병원은 중앙정부 연구개발 성과물과 지자체의 의료서비스가 결합한 전국 최초의 공공의료복지 모델”이라며 “내과와 외과, 재활의학과 위주인 현장 진료 과목을 주민 수요에 맞춰 다양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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