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년중앙] 세잔·르누아르...현대미술 기반 닦은 두 거장 작품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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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여러 미술관 중에서도 오랑주리 미술관을 찾습니다. 오랑주리는 프랑스 왕실에서 오렌지를 키우는 온실(Orangerie)을 지칭하는 말이었는데, 19세기의 이 건물이 1927년 미술관으로 탈바꿈하면서 과거의 흔적을 이름에 남겨뒀죠. 다른 유명 미술관·박물관에 비해 규모가 작고 소장품도 140여 점 정도에 불과하지만, 길이만 91m에 달하는 벽면을 가득 메운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 파노라마를 비롯해 1930년대 유럽 최고의 수집가 폴 기욤이 기증한 작품들, 훌륭한 인상주의·후기인상주의 거장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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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며 프랑스의 대표적 국립미술관인 오르세 미술관과 오랑주리 미술관이 함께 준비한 이번 특별전은 국내 첫 오랑주리 미술관의 소장품전이라 의미가 깊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세잔, 르누아르’는 국내 첫 오랑주리 미술관의 소장품전이라 그 의미가 깊죠. 이번 특별전은 한국과 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며 프랑스의 대표적 국립미술관인 오르세 미술관과 오랑주리 미술관이 함께 준비한 것으로, 2016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렸던 ‘오르세 미술관 전’ 이후 10여 년 만에 프랑스 국립미술관의 명작들을 만나는 전시입니다. 특히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프랑스 미술사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두 위대한 화가, 폴 세잔(1839~1906)과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의 예술 세계를 집중 조명해요. 세실 지라르도 오랑주리 미술관 큐레이터는 기자간담회에서 “두 작가의 작품 중 익히 알려진 명작들로 엄선해 소장품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39점을 선보이죠. 작품을 운반하는 데만 비행기 4대가 동원됐습니다”라고 설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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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세잔, 르누아르’는 인상주의 작가인 세잔과 르누아르가 초상화·정물·풍경 등 같은 주제를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지 비교하며 볼 수 있다.

세잔과 르누아르는 인상주의라는 공통의 출발점에서 시작했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예술적 실험을 이어가며 각기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그들의 영향력은 후대에 깊이 스며들어 미술사의 흐름을 바꾸었죠. 인상주의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출발해, 작품 세계가 한껏 무르익은 시기에 다다르기까지 두 화가는 각기 다른 화풍을 통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궤적을 그려 나갔습니다.

인상주의의 상징적인 화가 르누아르는 빛과 색채를 통해 인간과 자연을 부드럽고 감각적으로 표현했죠. 그의 작품은 따뜻한 감정이 깃든 일상의 장면을 묘사하며, 회화가 어떻게 ‘삶의 기쁨’을 포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반면 세잔은 사물의 본질을 형태와 구도를 통해 탐구한 혁신가였죠. 그는 구조적인 시선으로 자연의 질서를 재해석하며 후기 인상주의와 입체주의 사이의 중요한 연결고리를 마련했습니다. 이 두 거장은 파블로 피카소를 비롯한 후대 화가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죠. 이번 전시는 오랑주리 미술관과 오르세 미술관의 소장품 중 세잔과 르누아르의 대표작들을 선보이며 그 예술의 정수를 드러냅니다. 구체적인 주제별 구성을 통해 세잔과 르누아르가 풍경·정물·인물 표현에서 이룬 독창적인 예술적 발전을 살펴보고 그들이 살았던 전환기의 생생한 시대 감각과 예술적 활력을 느끼는 기회가 될 전시죠. 세실 지라르도는 “인상주의 작가인 세잔과 르누와르가 초상화·정물·풍경 등 같은 주제를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지 비교하며 볼 수 있도록 기획했습니다”라고 밝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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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 부인의 초상’을 보면 최대한 작가의 감정을 제거하고 눈 밑 주름부터 눈썹 그림자까지 정교하게 묘사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세잔과 르누아르의 거대한 흑백사진과 함께 ‘세잔 부인의 초상’(1885~1895)과 ‘광대 옷을 입은 클로드 르누아르’(1909)가 관람객을 맞아줍니다. 두 작가가 가장 사랑했던 모델이자 가족을 그린 두 작품을 나란히 보면 확연히 다른 화풍을 체감할 수 있는데요. 세잔은 최대한 작가의 감정을 제거하고 눈 밑의 주름부터 눈썹에 드리워진 그림자까지 정교하게 묘사했고, 르누아르는 막내아들의 밝은 머릿결과 파랗게 빛나는 눈, 부드러운 살결과 옷의 주름을 따뜻하게 담아내며 아들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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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는 막내아들의 밝은 머릿결과 파랗게 빛나는 눈, 부드러운 살결과 옷의 주름을 따뜻하게 담아냈다.

첫 번째 섹션은 두 화가가 자연을 담기 위해 야외로 나가 작업한 작품들을 모았어요. 1874년 첫 번째 인상주의 전시 이후 두 화가는 변화하는 자연, 시시각각 바뀌는 빛의 효과를 포착하기 위해 야외에서 작업했습니다. 이상적인 자연의 모습을 그렸던 고전주의 풍경화가들과 달리, 인상주의 화가들은 하루의 특정 순간 계절, 날씨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지는 자연의 빛을 포착하고자 했죠. 순간 달라지는 시각적 인상을 재빨리 그리기 위해, 이들은 작업 방식을 과감히 바꾸고 눈앞의 풍경을 그대로 옮길 수 있는 기법을 연구했으며 실내 작업실보다 야외에서의 창작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르누아르는 따뜻한 색채와 부드러운 붓질로 빛과 공기의 떨림을 담았고, 세잔은 견고한 구도와 힘 있는 터치로 풍경의 질서와 구조를 드러냈죠. 인상주의라는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했으나 르누아르는 감각적 아름다움 표현에, 세잔은 조형적 탐구에 몰두하며 서로 다른 예술적 여정을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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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을 그릴 때도 세잔은 전통적 원근법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색·형태·공간의 원리를 탐구했다.

두 번째 섹션은 정물에 대한 탐구, 세 번째는 인물을 향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어요. 정물·인물을 중심으로 두 화가의 작품을 나란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연출됐죠. 정물을 그릴 때도 르누아르는 색채의 조화를 통해 일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고, 세잔은 전통적 원근법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색·형태·공간의 원리를 탐구했습니다. 세잔과 르누아르가 정물에 접근하는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두 화가 모두 정물을 통해 고요하고 깊은 사유의 공간을 창출했죠.

두 작가의 정물화를 모은 공간에서는 먼저 극장 좌석에 놓인 꽃다발을 그린 르누아르의 작품을 볼 수 있는데요. 그는 생애 동안 꽃을 표현하길 즐겨했는데, 꽃다발이 아름다운 여인에게 바쳐질 것이라는 상상을 불러일으키죠. 반면, 세잔의 정물화는 공간감이 느껴집니다. 테이블이 이상하게 많이 올라와 있고, 사과는 원형의 모습을 띠고 있죠. 초상화의 대비처럼 정물화도 세잔의 정물화는 구조적이며, 르누아르는 부드러움을 표현했어요. 또 세잔은 감정을 절제하고 구조적 일관성을 강조하며 인물을 그렸고, 르누아르는 따뜻한 색채와 이상적으로 표현된 곡선으로 일상의 친밀한 순간을 작품으로 구현했죠. 저마다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이룩한 두 화가이지만, 인물을 작품으로 담아내는 데에 단순한 외형의 묘사를 넘어 인간의 본질을 탐색하려고 했던 공통점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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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조화를 통해 일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한 르누아르의 정물화.

폴 기욤(Paul Guillaume·1891~1934)은 20세기 초 파리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작품 수집가로 시대와 장르를 아우르며 방대한 컬렉션을 구축했어요. 그의 거처에서는 세잔과 르누아르의 작품이 마티스·피카소의 작품과 함께 나란히 전시되었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작품 컬렉션은 오랑주리 미술관의 ‘발테르-기욤 컬렉션’으로 계승되어 오늘날 세잔과 르누아르의 예술 세계를 폭넓게 조망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죠. 네 번째 섹션은 폴 기욤의 수집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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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바다 풍경, 건지 섬. 세잔과 르누아르는 자연의 풍경, 정물, 인물이라는 공통의 주제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루었다.

다섯 번째 섹션은 두 거장의 교류와 서로에 대한 영향을 비교할 수 있도록 구성됐죠. 세잔과 르누아르는 1860년대 파리에서 만나 평생 예술적 교류를 이어 나갔으나 르누아르는 섬세하고 조화로운 표현을, 세잔은 구조적이고 기하학적 구성을 추구했습니다. 앞서 다양한 주제가 이 두 거장의 공통된 실험 무대가 되었음을 살펴보았는데, 이 섹션에서는 그들의 풍경·정물·인물 작품을 보다 직접적으로 비교해 보면서 두 작가의 특징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죠. 세잔과 르누아르의 겨울 풍경을 담은 작품도 감상할 수 있는데, 세잔은 남부에 주로 머물렀기 때문에 항상 여름의 빛을 표현해서 겨울의 풍경을 담은 작품은 흔하지 않아요.

이번 전시에서 주목해야 할 세잔의 작품은 ‘사과와 비스킷’이죠. 세잔의 사과는 성경 속 아담의 사과,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와 함께 세상을 바꾼 3개의 사과라 불립니다. 르누아르의 대표작 ‘피아노 치는 소녀들’도 만날 수 있어요. 르누아르가 처음 프랑스 정부로부터 의뢰받은 작품입니다. 화가로서 완숙기인 50대에 접어든 르누아르는 파스텔로 그린 작품 1점과 유화 5점 등 총 6점의 대형 작품을 만들었는데요. 그중 프랑스 정부가 최종 선택한 작품이 이번 전시에 걸렸죠. 또한 르누아르와 세잔, 폴 기욤이 활동하던 당시의 사진들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인상주의를 보다 더 친근하고 쉽게 관람객들이 바라볼 수 있도록 해놓은 게 특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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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의 사과는 성경 속 아담의 사과,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와 함께 세상을 바꾼 3개의 사과라 불린다.

마지막 섹션을 들어서면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과 세잔·르누아르의 작품이 나란히 걸린 공간을 만나게 됩니다. 세잔과 르누아르는 19세기 후반 미술사의 흐름을 이끌며 새로운 시대의 예술적 토대를 마련했죠. 세잔의 분석적 회화는 입체주의의 등장을 견인했고, 선과 색채에 대한 르누아르의 표현 방식은 피카소의 고전주의 회귀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두 거장은 인상주의를 넘어 현대미술의 기반을 닦은 이정표로 자리매김했죠. 피카소는 세잔을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 불렀고 르누아르의 작품도 4점 이상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어요. 전시는 두 거장과 피카소의 작품을 나란히 걸어 관람객들이 세잔과 르누아르에서 시작한 20세기 현대미술의 흐름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도록 배치했죠. 피카소의 ‘천을 두른 누드’는 르누아르의 누드 작품 속 여성의 인체 모습과 형태가 유사한 것을 보여주고, 피카소의 ‘대 정물’은 세잔의 정물 ‘사과와 비스킷’의 영향을 받았음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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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가 처음 프랑스 정부로부터 의뢰받은 작품으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피아노 치는 소녀들’.

전시를 보다 보면 ‘난 세잔 작품이 좋아’ ‘난 르누아르 작품이 더 좋아’ 하며 자신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을 텐데요. 취향을 발견하는 시간도 가져보고, 두 작가가 같은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그림을 그렸는지 비교해보는 시간도 가져보세요. 세잔이 주는 다각도의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과 기하학적인 느낌, 르누아르가 주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색채와 빛이 함께 어우러져 전시 관람의 재미를 끌어올려 줄 겁니다.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세잔, 르누아르’

기간 2026년 1월 25일(일)까지
장소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월요일 휴관, 입장은 오후 6시 마감)
관람료 성인 2만2000원, 청소년 1만8000원, 어린이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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