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94화.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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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떻게 하늘의 시계를 손에 넣었나

“요즘은 해가 꽤 짧아졌어. 겨울이 다가오나 봐.” 사람들은 말합니다. 청명한 하늘이 가을을 상징하듯 짧아진 해, 길어진 밤의 하늘은 겨울로 향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죠. 마치 달력처럼 말이에요.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하늘을 보며 때를 확인했습니다. 해가 뜨는 것을 보며 일과를 시작하고, 해가 가장 높이 뜬 한낮에 일을 쉬며 해가 지면 집에 돌아갑니다. 하늘은 우리의 달력이자 시계였죠. 그러려면, 그 흐름이 정확하고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태양은, 달은, 그리고 별들은 일정한 흐름으로 변화하며 때를 알렸고, 우리는 이에 맞추어 여러 절기를 기념할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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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 육분의, 그리고 태엽 시계. 하늘의 시계를 우리 손으로 옮기려는 인간의 노력은 이들 발명품을 통해 미지에 도전할 힘을 주었다.

하늘을 관찰하며 흐름을 파악하는 시설도 있었어요. 이번에 APEC이 열린 경주의 첨성대도 그중 하나로 태양과 달과 별을 통해 세상의 흐름을 보고자 했던 조상들이 남긴 지혜의 흔적이죠.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달력이라는 형태로 그 흐름을 기록하고, 해시계를 만들기에 이릅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광장에 거대한 기둥을 세우고 그 그림자를 통해 지금이 언제인지를 파악한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죠. 튼튼한 화강암을 힘들게 깎아 세운 이 놀라운 건축물은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줘요.

시간은 신화나 전설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그리스에선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원초의 신 중 하나로 등장하며(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와는 다른 존재) 로마는 과거와 미래를 나누는 시간의 신 야누스의 문을 도시 중심부에 세워두었죠. 북유럽에서 아메리카까지, 세계 각지의 신화에서 시간을 다루는 신은 매우 높은 위치에 있고 상당수는 하늘, 특히 태양이나 달과 관련됩니다. 이집트에서는 태양신 라가 주기를 다루며, 메소포타미아에서도 태양과 정의의 신 샤마쉬가 하루의 질서, 시간을 규정하죠. 하늘의 흐름이 인간의 시간을 결정짓는다는 점을 잘 보여줘요.

흥미로운 것은 이들 신 중 ‘지식이나 지혜’와 관련한 이들이 꽤 있다는 겁니다. 메소아메리카의 케찰코아틀이 대표적으로, 달력의 창시자인 그는 인간에게 지식과 문명을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죠. 그 밖에도 달의 신이자 밤의 시간을 기록하는 신 토트, 수메르의 창조와 질서의 신 에아, 켈트의 마법의 신 오그마 등이 모두 시간을 관리하고 기록하는 동시에 지식과 문명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활약합니다. 이는 하늘을 통해 시간을 깨우치는 것이 곧 지혜라는 것을 잘 보여주죠. 시간을 안다는 것, 그것은 바로 세상의 질서를 이해하고 다스릴 수 있음을 말합니다. 시간을 인식하는 것이 곧 지혜이자 문명. 때문에 하늘을 보고 과거의 때를 알고, 시간의 흐름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이들은 오래전부터 존경받았죠.

하지만 하늘을 통해 알 수 있는 시간의 흐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날씨에 따라 하늘을 보지 못한다는 거죠. 문명이 발달하면서 조명이 늘어난 것도 문제였습니다. 도시의 빛이 밤하늘을 밝히고, 인공위성이 반사하는 빛과 전파가 천문학에 방해가 되는 현재만큼은 아니지만, 문명의 빛이 늘어날수록 하늘은 멀어졌어요. 하늘의 질서가 멀어지면서 혼란이 늘자, 사람들은 이를 대신하는 질서를 찾기 시작했죠. 그중 하나가 시계입니다. 거대한 기둥으로 만들어진 해시계는 매우 편했지만, 밤에는 쓸 수 없고 날씨의 영향을 받았죠. 그래서 모래시계와 물시계가 등장해요. 물의 흐름을 이용하는 물시계는 인간의 지혜로 작동하는 최초의 시계였지만 흔들리면 안 되기에 들고 다닐 수 없죠. 여행자들은 밤에는 시간을 알 수 없었고, 가장 중요한 ‘길잡이’를 잃게 됩니다.

하늘은 우리에게 시간만 알려주지 않아요. 우리가 있는 곳도 알 수 있게 해주죠. 태양의 그림자를 통해 우리는 북쪽과 남쪽 중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2200년 전 그리스의 과학자 에라토스테네스는 이를 통해 지구 지름을 거의 정확하게 계산했죠. 별의 위치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동쪽과 서쪽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를 위해선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 한다는 거죠. 우리가 어딘가에 머물고 있다면, 별을 통해 시간도 알 수 있습니다. 한 지역에서 하늘에 보이는 별은 계절과 시간에 따라 변화하며, 항상 보던 하늘의 변화를 파악하긴 쉬우니까요. 하지만 여행자들은 그럴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쉽게 알 수 있을까?’ 고민하던 사람들은 기계 장치에 주목하죠. 하늘처럼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돌아가며 시간을 알리는 장치. 기계식 시계와 함께 사람들은 시간을 소유하게 됩니다. 내가 지금 있는 시간을 정확하게 알게 되면서 사람들은 하늘의 흐름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하고, 광활한 바다에서 길을 찾게 된 것이죠.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하늘을 보며 세상의 흐름을 깨달았어요. 나아가 이를 통해 내가 있는 곳, 나아가야 할 길을 알았습니다. 하늘의 흐름을 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죠. 오랜 경험과 지혜로 그들은 케찰코아틀 같은 신들처럼, 길잡이나 현자라 불리며 존경받았습니다. 문제는 그들조차 날씨나 밤의 장막은 넘어설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혜성처럼 예측을 벗어나는 하늘의 변덕’에 두려움을 갖기도 했죠.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하늘의 불이 땅에 내려와 어둠을 극복했듯, 사람들은 하늘의 변화를 지상으로 가져와 시간의 어둠을 극복합니다. 하늘이 아닌 인간의 발명품으로 시간을 알게 된 그 순간, 하늘의 시계는 인간의 손 위로 내려와 인간의 시간을 알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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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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