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2030 이공계 62% “3년 내 해외이직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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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젊은 이공계 인재(석·박사급)의 약 3분의 2가 해외 이직을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과가 아닌 연공 중심의 보상 체계와 열악한 근무 환경이 이공계 전문가의 한국 탈출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3일 한국은행은 ‘이공계 인재 해외 유출의 결정 요인과 정책적 대응 방향’ 보고서에서 “향후 3년 내 외국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한 20·30대 국내 이공계 전문가가 62%(구체적 계획 수립 단계까지 포함)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한은이 국내 교육기관, 연구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이공계 석·박사급 연구자 19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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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전체 석·박사급 인재 중에서 한국을 떠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밝힌 비중도 42.9%에 달했다. 젊은 층일수록 해외 이직을 고려하는 비중이 높았다. 구체적으로 응답자 중 20대는 72.4%, 30대는 61.1%, 40대는 44.3%로 나타났다.

한국의 이공계 인재 유출은 이미 상당 부분 진행 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추산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해외로 떠난 이공계 인력은 총 34만 명이다. 이 중 석·박사급 엘리트 인력만 9만6000명에 달한다. 특히 미래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인공지능(AI) 전문 인력은 순유입국에서 순유출국으로 이미 전환했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연구소(HAI)가 발표한 ‘AI 인덱스’에 따르면 한국은 10만 명당  AI 인재가 지난해 0.3명 빠져나갔다. 이는 이스라엘과 인도·헝가리·터키에 이어 다섯 번째로 큰 유출 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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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 한은 거시분석팀 과장은 “이공계 인재는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형성하는 핵심 인적 자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고교 최상위권 인재의 상당수가 의료 분야로 진학하고 있다”며 “이공계를 선택한 인재들 역시 더 나은 연구 환경과 경력 기회를 찾아 해외로 진출하는 인재 유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에 따르면 바이오·제약·의료기기(48.7%)나 정보통신(IT)·소프트웨어·통신(44.9%)같이 선진국이 우위를 점한 분야에서 해외 이직을 고려하는 비중이 높았지만, 한국이 우위에 있는 조선·플랜트·에너지(43.5%)도 이직을 고민하는 전문가 비중이 40%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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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이공계 인재의 한국 탈출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낮은 연봉이다. 해외 이직을 원하는 이유(1~3순위 복수응답)에서 국내 이공계 전문가 66.7%가 금전적 이유를 꼽았다. 한은은 성과가 아닌 근무 기간에 따라 보상을 받는 구조가 문제라고 짚었다. 해외 이공계 전문가는 13년 차에 가장 많은 연봉(평균 36만6000달러)을 받았다. 하지만 국내 이공계 전문가는 19년 차에 최고 연봉(평균 12만7000달러)을 기록했다. 국내 이공계의 경우엔 절대연봉도 적을 뿐만 아니라 최고 연봉까지 도달하는 기간이 해외보다 6년 더 길었다. 이 때문에 20·30대 젊은 전문가의 해외 유출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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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비금전적 이유도 이공계 해외 유출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한은이 해외 이직 요인을 실증 분석해 보니, 국내 이공계 전문가의 소득만족도가 한 단계 상향됐을 때, 해외 이직 확률은 4%포인트 감소했다. 고용안정성(-5.4%포인트)·승진(-3.6%포인트) 같은 근무 환경 만족도가 한 단계 올라갔을 때도 이직 확률이 유사하게 줄었다.

실제 해외와 비교했을 때 한국에서의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분야는 연봉이 아니었다. 한은이 해외 체류 이공계 인력(778명)까지 포함해 설문조사한 결과 국내와 비교해 해외 전문가의 만족도가 가장 높게 나타난 것이 연구생태계(1.64배)였다. 이어 근무여건(1.61배)·연봉(1.57배)·승진(1.49배) 순이었다.

정선영 한은 거시분석팀 차장은 “연구개발(R&D)비가 경제 규모에 비해서는 한국이 작다고 할 수 없지만, 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느냐는 생각해 볼 문제”라면서 “(해외 이직 이유로) 금전적인 부분이 높게 나오지만, 연구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없어서 비자발적으로 나가는 부분들도 크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인적 자본에 세제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R&D 투자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성과에 기반하는 유연한 임금·보상체계로의 전환 ▶R&D 투자 실효성 강화 ▶기술창업 기반 확충 및 전략기술 개방을 통한 혁신 생태계 확장 ▶해외 연구기관·연구자와의 교류 강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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