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우승이라는 괴물과 싸우는 안병훈과 최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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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진(左), 안병훈(右). [뉴스1, AFP=연합뉴스]

# 지난 6월 PGA 투어 RBC 캐나디안 오픈 최종 라운드, 안병훈은 우승을 향한 마지막 질주가 필요했다. 파5인 18번 홀에서 점수를 줄여야 하는 상황. 장타자인 데다 이날 버디를 7개나 잡을 만큼 컨디션이 좋았기에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티샷을 벙커에 빠뜨려 레이업을 선택해야 했다. 그래도 기회는 남아 있었다. 세 번째 샷의 남은 거리는 151야드에 불과했다. 그런데 세 번째 샷은 그린을 훌쩍 넘어갔다. 그린은 물론 그린 뒤 벙커마저 넘긴 홈런성 실책이었다. 우승이 가까워질수록 안병훈의 샷에는 힘이 들어가는 듯하다.

# 지난 2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LPGA 투어 메이뱅크 챔피언십. 최혜진(26)은 18번 홀 우승을 확정할 버디 퍼트를 놓쳐 연장전에 가야 했다. 3라운드까지 이 홀에서 매 라운드 버디를 성공시켰던 최혜진이었다. 그러나 우승이 눈앞에 다가오자 달라졌다. 최혜진은 연장전에서도 이 홀에서 버디를 하는 데 실패했다.

전세계 골프의 '우승 없는 최고 상금 선수'는 모두 한국 선수다. 안병훈은 우승 없이 2150만 달러를 벌었고, 최혜진 역시 우승 없이 610만 달러를 벌어 여자 중 1등이다. 상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우승 없는 최고 상금 선수'라는 타이틀은 결코 훈장이 아니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우승 경쟁의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승을 지키고 있는 수문장을 뚫지 못했다는 뜻이다.

안병훈은 2017년 PGA 투어에 진출해 228경기를 소화했고, 톱10에 30번 진입했다. 연장전 3번을 포함해 준우승만 5번, 3위도 4번이나 기록했다. 그러나 우승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우승 경쟁 과정에서 운이 따르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 실수도 있었다. 지난해 소니 오픈이 대표적인 예다. 연장전에서 상대 선수가 가능성이 희박한 14m 버디 퍼트를 성공시켰다. 그러자 안병훈은 1.5m 버디 퍼트를 놓치고 말았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그를 옥죄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최혜진은 KLPGA 투어에서 9승을 거뒀다. LPGA 투어에서는 톱10에 29번 진입했지만, 우승 경쟁 기회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올해는 LPGA 투어 진출 이후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우승 경쟁도 잦아졌는데 우승이 나오지 않아 조급해진 모습도 보인다. 지난 6월 US 여자오픈에서는 최종 라운드까지 잘 따라갔다가 마지막 홀 보기로 추격을 완성하지 못했다.

메이뱅크 클래식은 최종 라운드를 4타 차 선두로 시작해 안정권이었는데, 끝내기에 실패했다. 8타 뒤진 채 시작한 미야시타 미유(일본)에게 우승컵을 빼앗겼다. 최혜진은 3라운드까지 평균 66.3타를 기록했으나 최종 라운드에서는 6.7타나 많은 73타를 쳤다. 최종라운드에서는 26위까지 오버파를 친 선수는 최혜진이 유일했다.

골프는 멘탈 게임이다. 놓친 역전패 하나하나는 결코 잊히지 않는 악몽이 된다.

사실 이 분야에서 안병훈이 1위는 아니었다. 토미 플리트우드(잉글랜드)가 우승 없이 3000만 달러를 넘기며 압도적 1위였다. 올해도 지난 6월 트래블러스 챔피언십과 플레이오프 1차전 세인트 주드 클래식에서 허망한 역전패를 당했다. 그러나 플리트우드는 넘어져도, 다운돼도 다시 일어나는 패기 넘치는 젊은 복서처럼 계속 도전했고 마침내 우승했다.

우승 압박감이라는 괴물과 싸우려면 플리트우드의 지혜를 들얼 볼 필요가 있다. 플리트우드는 우승을 놓친 후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그냥 어딘가 숨고 싶다. 나도 클럽을 물에 던져버릴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럴 스타일이 아니다. 모든 것에서 배우고, 거기서부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플리트우드는 지난 8월 163번째 시도 만에 마침내 우승한 후 이렇게 고백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의심하게 만드는 악마들과 싸워야 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에게 긍정적으로 말하라. 일관되게 옳은 일을 하고 끈기 있게 하면 성공을 이룰 수 있다.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런 위치에 다시 자신을 놓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실패는 무섭지 않다. 자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무서운 거다."

플리트우드가 보여준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실력은 충분하다는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유지하라.

둘째, '꼭 이겨야 한다'는 압박보다는 '이번 대회에서도 우승 경쟁하는 위치에 갈 것'이라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셋째, 우승을 놓쳤다는 사실에 흔들리지 말고, 오히려 멘탈 경험의 자산으로 여겨야 한다.

넷째, 스코어나 주변의 기대보다 현재의 샷에 몰입해야 한다.

다섯째,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먼저다. 우승을 못해도 중요하지 않다.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우선시하면, 그런 정체성이 안정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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