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처세 달인' 北김영남 사망…김일성∙정일∙정은 3대 보좌한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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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일 새벽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장회관을 찾아 주요 간부들과 참배하는 모습. 노동신문=뉴스1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 북한의 지도자 3대(代)를 모두 보좌하면서 외교 분야에서 핵심 역할을 맡아온 김영남 전(前)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3일 사망했다. 정부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 명의의 조의문을 내고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노동신문은 4일 "영광스러운 우리 당과 국가의 강화 발전사에 특출한 공적을 남긴 노세대 혁명가인 김영남 동지가 97살을 일기로 고귀한 생을 마쳤다"고 보도했다. 사인은 암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이라는 게 신문의 설명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날 오전 1시 주요 간부들과 함께 시신이 안치된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장회관을 찾아 조문하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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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은 4일 "영광스러운 당과 국가의 발전사에 공적을 남긴 김영남 동지가 3일 서거했다"고 보도했다.노동신문, 뉴스1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진다. 국가장의위원회에는 김정은을 비롯해 박태성 내각총리,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조용원·박정천·조춘룡·김덕훈 당 비서, 최선희 외무상, 노광철 국방상 등 고위 간부들이 이름을 올렸다.

1928년생인 김영남 위원장은 소련 유학파 출신으로 외교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평양 권력 핵심부에 진입했다. 김일성 집권기인 1972년에 당 국제부장에 올랐고 1983년부터 정무원 부총리 겸 외교부장(현 외무상)을 맡았다.

이후 김정일이 공식 집권한 1998년부터 2019년까지 21년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직을 유지했는데, 초기에는 대외활동을 꺼린 김정일을 대신해 '명목상 국가수반'이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북한 사회주의 헌법은 제117조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직무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여 다른 나라 사신의 신임장, 소환장을 접수한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정치적 부침을 겪지 않아 '처세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는 해당 기간인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당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방남했는데, 당시에도 인천국제공항 귀빈실 문 앞에서 기다리던 김여정이 들어오자 소파 상석을 권하는 등 예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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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환영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는 모습. 남북정상회담 공동기자단

김영남은 북한 고위 간부들이 흔히 경험하는 숙청이나 혁명화를 한 번도 가지 않은 몇 안 되는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주어진 역할에 집중하면서 정치 파벌이나 권력과는 철저히 거리를 둔 신중한 태도가 그의 생존 비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김영남은 공개 석상에 여러 차례 등장했다. 2021년 1월 8차 당대회 기념행사에선 현직 시절과 다르게 머리가 하얗게 세 있었고, 2022년 9월 북한 정권수립 74주년 행사에선 청년들에게 부축을 받을 정도로 쇠약해진 모습이었다.

지난해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30주기 행사 당시에는 김정은과 웃으며 담소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이 관영 매체에 포착되기도 했다. 노동신문은 이날 김영남의 부고를 김정은 조문 소식보다 앞세워 보도하면서 원로에 대한 예우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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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8일 북한 대표단 일원으로 방남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인천국제공항 귀빈실에 들어서자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앞자리인 상석 소파에 앉을 것을 권유하는 김영남 당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뒷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는 이날 정동영 통일부 장관 명의의 조의문을 통해 김영남의 사망에 조의를 표했다. 정 장관은 조의문에서 "김 전 위원장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북측 대표단을 이끌고 방남하여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기여한 바 있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북측 관계자 여러분께도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통일부 당국자는 남북관계에 깊이 관여한 인사들이 사망했을 때 정부 차원에서 조의를 표한 전례가 있다면서 "김 전 상임위원장도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북측 특사단 대표로 방남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그런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판문점 통신연락선을 통해 전통문 형식으로 조전을 보냈지만, 현재는 북측이 이를 거부하고 있어 언론 발표를 통해 우회적으로 조의를 표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게 통일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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