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국에 치매 엄마 '버리러' 가는 베트남 아들, 그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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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베트남의 합작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의 한 장면. 거리의 이발사인 아들 환(뚜언 쩐)은 치매에 걸린 엄마 레티한(홍다오)를 홀로 돌본다. 사진 싸이더스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5일 개봉)는 한국과 베트남의 합작 영화다.
양국 영화사가 스토리 개발 단계부터 3년 여간 협업해 만든 작품이다. 지난 8월 베트남에서 먼저 개봉해 22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작이 됐다.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모홍진 감독 인터뷰
제목은 섬뜩하지만, 내용은 따뜻하고 눈물겹다. 성치 않은 몸으로 거리의 이발사로 일하며 치매에 걸린 엄마 레티한(홍다오)을 돌보는 아들 환(뚜언 쩐)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한국에 있는 이부(異父) 형에게 엄마를 데려다 주기 위해 떠나는 내용이다.
모홍진(52) 감독이 메가폰을 잡게 된 건, 교도소를 배경으로 가족애를 그린 전작 '이공삼칠'(2022) 덕분이다. 가족애와 정(情)이 영화 흥행 코드인 베트남에서 '이공삼칠'이 흥행하면서, 따뜻한 가족애를 다룬 이 영화의 연출 제안이 들어왔다.

한국과 베트남 합작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를 연출한 모홍진 감독. 사진 싸이더스
3일 서울 용산의 한 극장에서 만난 그는 연출을 결심한 건,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5살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을 작품 원안과 함께 전달 받았어요. 그 사진을 보고 시간이 거꾸로 가는 치매 환자의 마음을 통해 절절한 가족애를 그려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의 원안은 호치민에 살던 아들이 치매 엄마를 하노이의 형한테 맡기러 가는 내용이었다. 가족애가 한국에서도 통할 거라는 판단에 합작 영화로 기획되면서, 지금의 설정으로 바뀌었다.
모 감독은 "공원과 시장 등에서 순수하고 정 많은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치매 환자 가족의 사연들을 참고하면서 원안을 재구성했다"고 말했다.
베트남 말도 못하고 살아본 적도 없는 한국인 감독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흥행보증 수표' 뚜언 쩐, '베트남 국민 엄마' 홍다오 등 베트남 국민 배우들이 캐스팅되면서 눈 녹듯 사라졌다.
"뚜언 쩐이 출연한 영화 포스터를 우연히 보고 아들 역에 맞겠다 싶어 연락했는데, '이공삼칠'을 잘 봤다면서 캐스팅에 응해줬어요. 그러면서 엄마 역에 홍다오를 추천해 미국에 사는 그에게 시나리오를 보냈더니 곧바로 OK 사인을 주더군요. 베트남 스태프들에게 '내가 이런 큰 복을 받아도 되는 거냐'고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과 베트남의 합작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의 한 장면. 거리의 이발사인 아들 환(뚜언 쩐)은 치매에 걸린 엄마 레티한(홍다오)를 홀로 돌본다. 사진 싸이더스

한국과 베트남의 합작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의 한 장면. 거리의 이발사인 아들 환(뚜언 쩐)은 치매에 걸린 엄마 레티한(홍다오)를 홀로 돌본다. 사진 싸이더스
흥행작 '마이'에 이어 두 번째로 모자 간 호흡을 맞춘 두 배우는 열연을 펼쳤고, 특히 홍다오는 "인생작을 만들고 싶다"는 각오로 수치스러울 수 있는 치매 증상 연기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모 감독에게 큰 힘을 준 건, 영화 심의를 담당한 베트남 공안의 한 마디였단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여서 아직 영화 사전 심의 제도가 있는데, 공안이 베트남 PD에게 '감독에게 좋은 영화를 만들었다고 꼭 전해 달라'고 했다더군요. '어머니가 한국에서 더 편하게 잘 살 수 있을 거야'라는 대사를 빼달라는 것 외엔 별다른 간섭이 없었습니다."
레티한이 젊은 시절 한국 공장에서 일할 때 만나 결혼한 남편 정민 역은 배우 정일우가 맡았다. 양국 제작진은 '베트남 국민 사위'로 불리며 현지에서 인기 있는 정일우를 캐스팅 1순위로 꼽았고, 그는 "베트남 분들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에서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에 노개런티로 출연한 배우 정일우. 레티한이 젊은 시절 한국 공장에서 일할 때 만나 결혼한 남편 정민 역을 맡았다. 사진 싸이더스
레티한은 기억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한국에 두고 온 아들 지환을 애타게 그리워한다. 환은 그런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끼지만, 한국 국적의 엄마가 한국의 복지 혜택을 받으면 지금보다는 나은 생활을 할 거란 생각에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엄마와 함께 한국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후 전개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고, 영화는 신파에 기대는 쉬운 결말을 택하지 않는다.
"우리 가족 중 누구 한 명은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여전히 기억을 망쳐가지만 새로운 추억을 쌓아갑니다" 등 환의 대사엔 가족애에 대한 모 감독의 오랜 생각이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7살 때 어머니를 여읜 아픔이 있어 가족애가 더욱 애틋합니다. 그래서 결말에 저의 개인적 바람이 들어가게 된 것 같아요. 가족을 품는 건 우주를 품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관객들이 엄마 생각에 안부 전화를 걸게 되는 영화가 됐으면 합니다."
두 아들의 엄마에 대한 사랑과 추억이 '희망'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여운을 남겼다는 모 감독은 "베트남 관객들은 속편이 당연히 나올 거라 믿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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