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국정자원 화재 중대본 해체했지만…“취약한 디지털 복구 체계 확립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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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현장에서 불에 탄 리튬이온 배터리가 소화수조에 담겨있다. 연합뉴스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로 발생한 정부 행정정보시스템이 정상화 단계에 돌입했다.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똑같은 사태가 반복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책을 본격 실행할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안전부(행안부)는 6일 윤호중 행안부 장관 주재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행정정보시스템 재난 위기경보를 ‘심각’ 단계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하고, 40일 만에 중대본을 해체했다. 이날부터는 중대본 대신 위기상황대응본부가 국정자원 화재 사태를 관리한다.
정부 행정망 복구율 95% 돌파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6일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행정정보시스템 화재 관련 중대본 15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행안부에 따르면, 6일 오전 6시 기준 전체 709개 시스템 중 676개 시스템을 복구했다. 전체 복구율(95.3%)도 95%를 넘어섰다. 등급별 복구율은 1등급 40개(100%), 2등급 65개(95.6%), 3등급 246개(94.3%), 4등급 325개(95.6%)다. 국가 행정정보시스템은 이용자 수와 파급효과 등에 따라 1~4등급으로 분류하며, 이 중 1등급은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높은 단계다.
이날 현재 2등급 시스템 중에서도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하는 1·2등급 시스템은 모두 복구를 마쳤다. 고용노동부 노사누리, 조달청 제안서 화상평가, 행안부 모바일전자정부 시스템 등 미복구한 1·2등급 시스템은 모두 공무원 행정업무 시스템이다.
윤 장관은 “국민이 생활 속 안전 위험 요인을 신고할 수 있는 ‘안전신문고’ 등을 지난 5일 복구하면서 국민 생명·안전과 관련 있는 1·2등급 시스템의 복구를 마쳤다”며 “국민 여러분께 복구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정부는 연말까지 시스템을 완전히 정상화할 예정이다. 국정자원 대전센터 복구 대상 시스템은 오는 20일까지 복구를 모두 마치고, 대전센터에서 소실돼 대구센터로 이전해 복구하는 시스템은 12월까지 복구하는 게 목표다.

윤호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행정안전부 장관)이 6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행정정보시스템 화재 관련 중대본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행정안전부]
문제는 예산…정부 “순차적 이중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원인을 수사 중인 경찰이 국정자원과 이번 화재와 관련된 대전지역 3개 업체 등 4개소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뉴스1
“정부 행정망의 정상화가 가시권에 들어왔지만, 정부의 디지털 리스크 대처 역량은 여전히 물음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차례 화재로 주민등록·정부24·전자민원 등 주요 정부 행정 서비스가 일제히 장기간 멈춰 섰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6일 화재 발생 이후 41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부 3·4등급 시스템은 멈춰있는 상태다. 정부가 애초 파악했던 피해 시스템 수(647개→709개)나 시스템 정상화를 약속했던 시점(10월 24일) 등도 달라졌다.
이상대 코리아재난안전연구소 박사는 “화재 때 멈춰선 정부 업무·민원서비스 시스템의 개수를 화재 발생 14일 만에야 제대로 파악했다는 건 재난 안전에서 가장 기본적인 현황 파악조차 실패했다는 점에서 반드시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정자원 화재로 인한 부처 시스템 피해액은 최소 96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7개 부처, 54개 시스템만 산정한 액수로, 복구 비용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709개 전체 시스템과 복구비용까지 합산하면 피해액은 훨씬 클 것으로 추산된다.
‘디지털 정부’를 표방해온 정부의 자부심도 흔들렸다. 윤호중 장관은 지난 5일 브리핑에서 “정부가 추진했던 전자정부·디지털정부는 양적인 부분에 치중했던 측면이 있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인공지능정부실 신설한다…지방자치·사회적경제 기능 강화
“국정자원 화재, 디지털 정부 취약점 반추 계기”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정문이 굳게 닫혀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 행정망 시스템을 이중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금처럼 정부가 단순히 월 1회 데이터만 백업하는 방식은 화재에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똑같은 시스템을 하나 더 만들어 동시에 가동하는 ‘액티브(active·활성화)-액티브’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방식을 도입하면 한쪽에서 장애가 발생해도 다른 쪽에서 즉시 서비스를 이어받아 중단 없이 운영할 수 있다.
문제는 예산이다. 1등급 시스템에 액티브-액티브 방식을 적용하려면 최소 7000억원 이상이 투입될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국정자원 예산 중 장애 발생 시 즉시 가동할 수 있는 ‘재해복구 시스템 구축’ 예산은 30억원 수준이었다.
이에 대해 윤호중 장관은 “중요한 시스템은 우선적으로 이중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현재 4단계 등급 체계를 6단계로 세분화해 중요한 시스템들은 당장 2026년부터 이중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인 예산 문제를 고려해 클라우드 시스템 도입을 제안한다. 해외 주요 국가들도 정부 시스템 안정성·연속성 확보하기 위해 클라우드 기반의 이중화 체계를 도입·운영 중이다.
미국은 정부 행정망 시스템에 복수의 클라우드를 분산 운영 중이다. 한 지역의 데이터센터가 마비되더라도 타지역 클라우드 컴퓨터가 이를 이어받아 대국민 서비스 제공한다. 영국은 공무원 업무용 G클라우드의 경우 중요 시스템을 이중으로 백업하고 있다. G드라이브가 완전히 소실된 한국과의 차이점이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행정 구조상 정보보안 분야에서 정부가 민간 기업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인권·안보 등 민간 이양이 불가능한 기밀정보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민간 클라우드 기업과 협업해 맡기는 것이 서비스 연속성 측면이나 효율성, 보안, 데이터 복구 측면에서 모두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윤호중 장관은 “정부는 국정자원 화재 사태를 디지털 정부 인프라의 취약점을 돌아보는 중요한 계기로 삼고 있다”며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원상 복구’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근본적 혁신’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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