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인생 망가졌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등급 상관없이 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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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기후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간담회에서 묵념하고 있다. [뉴스1]

박창연(59)씨는 2007년 근무 중 갑자기 호흡 곤란을 겪고 응급실에 갔다. 중환자실 등을 거쳐 10일간 입원한 그는 급성 천식 진단을 받았다. 2년 전부터 가습기살균제를 썼던 게 원인이었다. 이후 그는 정부로부터 가장 낮은 ‘등급 외’ 피해 판정을 받았다. 그가 받은 지원은 치료비 200여만원이 전부였다. 박씨는 “등산처럼 숨 차는 운동을 전혀 할 수 없을 만큼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다”며 “나이가 들수록 폐가 더 나빠질 수밖에 없어 불안이 크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박씨처럼 등급 외 판정을 받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도 위자료 등 경제·정신적 피해에 따른 배상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국가로 확대하는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 전부개정법률안’이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으며 이달 내 국회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다.

개정안의 핵심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사회적 참사’로 규정하고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기존에 지원했던 치료비에 ‘일실이익(逸失利益·사고가 없었을 경우 피해자가 장래에 얻었을 이익)’, 위자료까지 배상 범위를 넓힌다. 피해자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질병에 걸리지 않을 때 얻을 수 있었던 소득까지 배상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오랫동안 지속된 사회적 난제다. 2006년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폐 손상 환자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 결과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으로 밝혀지면서 2011년 판매가 중단됐다. 그동안 가습기살균제는 1000만 병 넘게 팔렸다. 이후 피해 보상 문제를 놓고 오랜 갈등을 겪은 끝에 15년이 지난 뒤에야 국가 책임이 명문화됐다.

피해자 입장에서 가장 큰 변화는 등급 중심에서 벗어나 개인별로 배상액이 산정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기후부 산하 피해구제위원회가 피해 등급을 ‘초고도’부터 ‘등급 외’까지 총 6가지로 분류해 구제급여를 지급해왔다. 올해 1월까지 5971명이 피해가 인정돼 지원을 받았으며, 총 2080억원이 지급됐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까다로운 등급 심사 탓에 피해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주장해왔다. 지난달 25일 기후부가 개최한 가습기살균제 간담회에서도 피해자들은 “인과관계를 더 넓게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한 참석자는 “정부에서 등급을 매겨 1·2등급만 피해자로 인정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에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국가가 책임 있는 보상을 하겠다고 한 만큼 적극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보완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국무총리 소속 배상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하반기부터 개인별 배상 심의에 나설 계획이다. 배상액은 심의가 끝나야 결정될 예정이나, 2022년 사적 조정 당시 9240억원으로 추산된 적이 있다. 정부는 배상액 중에서 20~30%를 분담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손해배상 신청을 법 시행 후 6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는 개정안 내용이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에 대해 손삼기 기후부 환경피해구제과장은 “국외 체류나 중증 치료 등 부득이한 사유가 있으면 사유가 해소된 이후에 신청할 수 있고, 새롭게 인과관계가 밝혀진 질환이 생기면 추가로 배상 신청 절차를 안내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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