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카메라 테스트에 공약도 짜준다…강남에 뜬 '반장 선거' 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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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 선거 대비반을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스피치 학원. 학원 입구에 전교·학급 임원 임명장이 빼곡하게 걸려 있다. 이규림 기자
새 학기를 맞은 서울 시내 주요 학원가에 초등학교 임원 선거를 대비하는 학원이 성행하고 있다. 국·영·수 등 주요 학원에 맞먹는 가격대지만 발성 연습과 함께 카메라 테스트, 맞춤형 공약 컨설팅까지 제공해 매 학기 수십 명이 선거 대비반을 찾고 있다.
5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스피치 학원 입구엔 초등학교 전교·학급 임원 임명장이 벽면에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올해 전교부회장에 당선된 인근 초등학교 학생이 “선생님께서 도와주셔서 당선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강사에게 보낸 메시지도 함께 걸려 있었다. 학원 내부엔 강의실과 별도로 카메라 테스트를 할 수 있도록 스탠딩 책상과 크로마키가 걸린 교실이 마련돼 있었다. 이 학원에선 1~2월부터 초등학교 임원 선거 대비반을 운영한다. 언론사 공채 아나운서 출신인 원장 유모씨는 “임원 선거 강의는 일대일로만 진행하고 금액은 전교 임원인지 학급 임원인지에 따라 월 10만~20만원대”라고 했다.
임원 선거 대비반을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스피치 학원. 방송 연설을 준비하기 위한 세트가 갖춰져 있다. 이규림 기자
스피치 학원은 학교와 학생별 특성에 따른 맞춤형 강의 전략을 내세운다. 강사들은 인근 초등학교의 선거 관련 지침을 미리 파악하고 그에 맞춰 지도한다. 서울 은평구 한 스피치 학원 관계자 A씨는 “전교 임원 연설을 방송실에서 한다면 호흡 조절에 신경 쓰고 강당에서 하는 경우 동작을 크게 하도록 가르친다”고 했다. 서울 양천구 한 스피치 학원 원장 이모씨는 “소극적인 학생이라면 ‘뿌리 깊은나무 같은 듬직한 회장이 되겠다’는 공약을 만들기도 하고, 장난기 많은 학생은 유행어를 섞어 연설문을 쓰기도 한다”고 했다. 이 학원에선 매 학기 60~70명 정도 학생이 선거 대비 수업을 듣는다.
초등학생들이 임원 선거에 몰두하는 이유는 중등 입시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초등학교는 과목 성적이 학교생활기록부에 남지 않기 때문에, 임원 이력이나 생활 지표를 통해 리더십이나 원만한 교우 관계를 증명하려 한다는 것이다. A씨는 “사립중학교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학원을 특히 많이 찾는다”며 “5학년 1학기 전교부회장에 출마하기 위해 4학년 때부터 학원에 다니는 학생도 있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 한 스피치 학원 벽면에 초중고 73곳의 전교·학급 임원 당선자 목록이 붙어 있다. 이규림 기자
"스팩 쌓기식 경쟁…선거 의미 무색해질까 걱정"
임원 선거에 수십만원을 들일 정도로 선거가 과열되자 일부 초등학교는 선거 유세 등에 제약을 두기 시작했다. 간식, 문구류 등 물질을 주겠다는 공약을 금지하고 연설 시에 소품을 쓰지 못하게 하는 식이다. 유모씨는 “학부모가 선거 유세용 옷을 직접 만들어 입히기도 하다 보니 무채색 옷만 입으라는 학교도 있고, 안무나 동작을 일체 금지하고 차렷 자세로만 연설하게 하는 곳도 있다”고 했다. 대치동에서 프랜차이즈 스피치 학원을 운영하는 대표는 “선거가 너무 과열되니 아예 반장 선거를 없애는 초등학교가 늘고 있다”고 했다.
임원 선거까지 사교육 영역에 들어가자 교육 현장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 시흥시의 한 초등학교 교사 B씨(25)는 “반장 선거는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배우는 첫 단계인데, 학원 표 공약으로 스펙 쌓기식 경쟁이 벌어지니 선거의 의미가 무색해질까 걱정”이라고 했다. 공교육 현장에서 관련 역량을 키워줘야 한단 지적도 나온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원에서 만들어온 공약과 연설문은 눈에 띄기 마련”이라면서 “그런 격차가 생기지 않도록 학교에서 연설문 쓰기, 공식적 말하기 등 교육을 더 체계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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