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년중앙] 어떻게 포착했을까, 매일 같은 일상 속 마음이 머무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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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졌죠. 우리는 하루라는 시간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있나요. 늘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에 대해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전시가 찾아왔습니다. 사소한 일상 속 따스한 순간을 발견하는 헤일리 티프먼의 ‘일상을 그리다: 평범한 하루의 온도’가 그 주인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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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리 티프먼은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며 디지털 드로잉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국제 매체 및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 왔다. ©Haley Tippmann

헤일리 티프먼은 미국 뉴욕 로체스터 출신으로 현재 독일 올덴부르크에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며 디지털 드로잉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이후 『뉴욕타임스』 『와이어드』 같은 국제 매체 및 유니클로·일리 커피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 왔죠. 스쳐 지나가는 감정의 흔적을 시각적 리듬으로 다시 구성하며, 장면 속에 남아 있는 온도·여운·정서를 포착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녔습니다.

사진과 스케치를 기반으로 재구성한 화면은 디지털 작업임에도 특유의 섬세한 질감과 감도 높은 회화적 기법으로 표현하죠. 관람자가 자신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투영할 수 있는 해석의 틈을 열어두는 방식이 특징이에요. 빛·색·공간·인물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조용한 감정을 포착하는 작가의 시선은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인의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추어 서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죠. 말보다 감정이 오래 남는 순간들, 작가는 그 순간의 온도를 그림으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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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리 티프먼의 작품은 디지털 작업임에도 특유의 섬세한 질감과 감도 높은 회화적 기법으로 표현한 게 특징이다. ©Haley Tippmann

헤일리 티프먼의 한국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작가의 대표작과 최신작을 비롯해 작업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드로잉·스케치·영상 등 아카이브까지 약 100여 점을 한 공간에서 선보이죠. 지난 10여 년간 이어온 헤일리 티프먼의 감성과 작업 세계를 한자리에서 밀도 높게 만날 수 있어요. 지난해 12월 오프닝 리셉션에서 진행된 라이브 드로잉 퍼포먼스를 통해 현장에서 완성된 작품도 2월부터 전시장에 추가됐습니다.

전시는 다섯 개의 테마로 구성됐어요. 정물과 방 안의 장면을 통해 머무름의 온도를 좇는 ‘멈춰 있는 시간’, 사람들의 몸짓과 거리에서 관계의 리듬을 포착하는 ‘가까이 머물다’, 미국과 독일을 오가며 쌓인 장소의 기억을 담은 ‘기억의 결’, 최근의 삶에서 경험한 감정의 전환점이 반영된 신작을 선보이는 ‘어딘가의 일상’, 아카이브를 통해 작업의 출발점과 작가의 시각을 보여주는 ‘남겨진 일상들’로 이어지죠. 각 공간은 서로 다른 장면을 보여주지만, 하나의 질문으로 모입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풍경과 시간은 각자의 내면에서 어떤 온도로 기억되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는 동안, 무심히 흘려보냈던 어느 하루를 다시 되돌아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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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리 티프먼은 늘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 일상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사소한 순간을 포착해 작품을 만든다. ©Haley Tippmann

티프먼의 정물·공간 작품은 사건보다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온기와 기류에서 출발합니다. 정물과 방 안의 사물이 품는 온기부터 시작된 포근하고 아늑한 공간으로 관람객을 초대해요. 첫 번째 섹션 ‘멈춰 있는 시간’에서는 눌린 쿠션, 책상 위의 작은 물건, 창문을 타고 들어온 빛 같은 사소한 흔적들로 누군가 머물렀던 시간의 여백을 조용히 보여주죠. 그에게 그림의 대상은 거창하고 대단한 순간이 아닙니다. 일상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정말 사소한 것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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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를 쓰다 잠깐 내려놓은 펜, 흐트러진 담요들 같은 사람이 등장하지 않아도 금방이라도 사람이 존재했을 것 같은 다양한 흔적들이 남아 있는 작품 ‘큰 분홍색 소파’. ©Haley Tippmann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작품 ‘욕실’은 작가가 평소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에 상상력을 더해 복합적인 요소가 어우러진 장면을 그려냈어요. 욕실이라는 친숙한 장소 안에 어딘가 어색한 화분과 독특한 문양의 거울이 놓여 있고, 거울에 비친 풍경엔 노을 진 하늘과 구름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공간과 사물의 이색적인 조합이 작품을 더욱 풍부하게 완성했죠. 그의 작품엔 사람이 등장하지 않아도 금방이라도 사람이 존재했을 것 같은 다양한 흔적들이 남아 있어요. ‘큰 분홍색 소파’ 작품을 보면 글씨를 쓰다 잠깐 내려놓은 펜, 흐트러진 담요들 같은 단서들을 볼 수 있죠. 인물이 등장하지 않지만, 그 부재는 오히려 방금 누군가가 자리를 비운 듯한 기척을 남기며. 보는 이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는 기억의 틈을 발견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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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공간 작품은 정물과 방 안의 사물이 품는 온기부터 시작된 포근하고 아늑한 공간으로 관람객을 초대한다. ©Haley Tippmann

작가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잔향처럼 감정이 남아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해요. 덕분에 관람자는 ‘인물이 없어도 생동감을 느낄 수 있죠. ‘턴테이블이 있는 로프트’에서는 해 질 녘 핑크빛 하늘과 연두색 의자 등이 어우러져 모든 사물이 따스한 햇살을 머금은 듯한 장면이 연출돼요. 작가가 전하고자 한 온도와 맞닿아 있는 거죠. 중요한 것은 공간의 형태가 아니라 사물들 사이에 머물러 있는 기류, 그 흐름이 빚어내는 미세한 긴장감이죠. 빛은 장면을 하나로 묶는 핵심 요소인데요. 아침의 차가운 명암, 오후의 길어진 그림자, 저녁의 낮은 조도는 색의 농도와 결을 달리하며 시간의 흐름을 은근하게 드러내죠. 그의 그림이 따스한 이유는 온도라는 감각이 그림 곳곳에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빛과 색채, 사물의 온도가 잠시 머무르는 동안 보는 이는 어느 순간 자신의 기억과 감정으로 화면을 조용히 채워 넣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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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사람들은 얼굴이 감춰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헤일리 티프먼은 일상 모습을 포착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Haley Tippmann

두 번째 섹션은 인물화를 중심으로 구성됐죠. 그의 작품 속 사람들은 얼굴이 감춰져 있거나, 간단하게 표현되고 혹은 아예 크롭되곤 해요. 누구를 그리냐보다 일상 모습을 포착하는 게 더 중요한 겁니다. 전철 안에서 휴대전화를 보는 사람, 카페에서 창가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는 사람, 풀밭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연인의 모습 등 주변을 살피면 볼 수 있을 법한 일상을 감각적으로 그려낸 게 인상적이에요. 가까이 있으면서도 닿지 않는 거리, 함께 머물지만 서로에게 도달하지 않는 온도, 티프먼은 이러한 미세한 감정의 간극을 사람의 몸짓과 공기의 흐름 속에서 포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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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나 표정이 드러나지 않아도 손끝의 각도와 몸의 기울기, 앉아 있는 자세만으로 관계의 온도가 은근히 전해진다. ©Haley Tippmann

얼굴이나 표정이 드러나지 않아도 손끝의 각도와 몸의 기울기, 앉아 있는 자세만으로 관계의 온도가 은근히 전해져요. 색은 장면 속 관계의 흐름을 따라 미묘하게 변화하며 감정의 농도를 시각적으로 환기하죠. 이 섹션의 작품들은 일상 속 관계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풍경을 다루고 있어요. 가까움과 멀어짐이 동시에 존재하는 자리, 함께 있지만 혼자인 순간, 말하지 않아도 감지되는 미세한 긴장감. 티프먼은 그 감정을 사건처럼 설명하지 않고, 색과 제스처의 리듬으로 조용히 머물게 합니다. 보는 이는 그 흐름을 따라가며, 자신이 지나온 관계의 어떤 순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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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와 빛은 기억의 밀도를 드러내는 도구가 되고, 보는 이는 자신 안에 남아 있는 오래된 풍경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Haley Tippmann

지하철처럼 길고 좁은 전시 공간엔 작가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사람들을 스케치하던 순간들이 작품으로 재현됩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포착된 장면들은 잠시 관람객의 시간마저 멈추고 자신의 기억을 덧붙이며 오늘의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유도해요.

티프먼의 풍경 작업은 작가가 살아온 장소를 그만의 색조로 재구성했어요. 미국의 풍경은 유년과 청년기의 기억이 겹쳐진 곳으로 넓고 탁 트인 공간으로 표현됩니다. 수평으로 이어지는 도로, 낮은 하늘, 사라지는 노을빛은 고향의 친근함을 품고 있죠. 반면 독일 코블렌츠의 풍경은 오래 머물며 체득한 삶을 표현하고 있는데요. 빛의 방향이 계절마다 달라지고, 고요한 골목과 반복된 산책길은 오래 살아 본 사람만이 감지할 수 있는 풍경을 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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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풍경 작업은 작가가 살아온 장소를 그만의 색조로 재구성했다. ©Haley Tippmann

여행지의 장면은 잠시 머무른 체류의 감각을 표현합니다. 특정 장소를 묘사한다기보다 일시적인 머무름의 순간을 담고 있었죠. 색채와 빛은 기억의 밀도를 드러내는 도구가 되고, 보는 이는 작품을 마주한 순간 자신 안에 남아 있는 오래된 풍경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됩니다.

작가가 살아온 장소를 작업한 ‘기억의 결’ 섹션을 지나 네 번째 섹션에서는 신작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티프먼이 최근 경험한 내적 변화를 시각화한 작업이에요. 혼자 떠난 여행 속 익숙한 도시를 전혀 다른 감정으로 바라보게 된 순간, 그 감정의 온도를 그림에 담았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경우 여러 번 방문한 도시였지만, 혼자 머무르는 시간과 오랜만에 재회하는 사람들을 직접 마주한 순간들은 도시를 완전히 새롭게 체감하게 하죠. 끊임없이 엇갈리는 자전거의 움직임, 트램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인물들, 얇게 내려앉은 빛이 잠시 머무는 하늘은 여행의 인상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고, 확인하게 만드는 순간의 배경입니다.

마지막은 스케치와 드로잉, 컬러 스터디, 노트, 사진과 영상으로 일상 속 순간들이 어떻게 작가의 언어로 작품으로 축적되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흔적들을 볼 수 있는 아카이브 공간이에요. 티프먼은 인상적인 장면을 오래 불들기보다, 빠르게 그려두며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꺼내 보는 방식을 택한다고 해요. 특정한 날의 빛, 사람의 제스처, 스쳐 지나간 풍경의 색감은 기록 속에 한 번 더 머물렀다가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작품으로 되살아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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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이어온 헤일리 티프먼의 감성과 작업 세계를 한자리에서 밀도 높게 만날 수 있다.

상업 작업과 커미션 작업 또한 비슷한데요. 신문·잡지의 에디토리얼, 브랜드 협업, 패키지나 텍스타일 작업처럼 목적과 형식이 달라도 작가의 색과 구도, 인물의 리듬은 일관되게 유지되죠. 현실의 요청과 작가의 시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특유의 일상 감각은 또 다른 방식으로 확장됩니다. 회화 작품과 함께 아이패드 드로잉 과정을 담은 영상도 감상할 수 있어요. 전시장에서 마주한 장면들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떻게 쌓여왔는지 직접 볼 수 있는 섹션입니다. 완성된 그림이 감정의 응축이라면, 아카이브는 감정과 관찰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예요. 티프먼의 작업은 단일한 이미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감정이 천천히 축적된 긴 시간의 결과임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죠.

때로는 특별한 일 없이 흘러가는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죠. 작가는 “익숙한 거리에서도, 마음이 머무는 순간은 언제나 다르게 찾아온다”고 말했어요. 매일 같은 일상, 익숙해서 평범한 것 같지만 티프먼이 포착하여 시각화한 작품은 따뜻하고 다정한 순간처럼 다가옵니다. 우리의 일상에 온기를 더해주는 그림들을 이번 전시를 통해 만나볼 수 있을 거예요.

‘헤일리 티프먼, 일상을 그리다: 평범한 하루의 온도’

기간 4월 13일(일)까지(휴관일 없음)
장소 서울 강서구 공항대로 165 원그로브 C동 2층 W213호 마이아트뮤지엄 원그로브점
관람 시간 오전 10시 30분~오후 9시(입장 마감 오후 8시)
관람료 성인 2만원, 청소년 1만6000원, 어린이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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