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부모 부양은 자녀 몫" 옛말 됐다…국민 5명 중 1명만 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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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2월 13일 오전 대구 달서구 성서노인종합복지관에서 설맞이 특식 떡만둣국을 맛보려는 어르신들이 길게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스1
40대 직장인 박모씨와 형제들은 지난해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위해 때때로 돈을 부친다. 하지만 형편상 박씨 형제들이 병원비·간병비 등을 온전히 책임지거나 매달 꾸준히 드리긴 쉽지 않다. 박씨는 "혼자라면 모르겠지만, 아내와 자식도 챙겨야 하는 가장이라 부모님 생계나 병원비를 전적으로 부담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의 60대 정모씨는 하루 3시간씩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방문해 돌보는 재가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한 달 60만~70만원을 번다. 고된 일이지만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한다. 정씨는 "기초연금까지 더하면 근근이 먹고살 수준은 된다"라며 "죽는 날까지 자식들에게 손 벌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 부양은 자녀의 몫'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5년 한국복지패널 조사·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를 모실 책임은 자식에게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비율은 20.7%에 그쳤다. 국민 5명 중 1명만이 자녀의 부모 부양 책임에 찬성하는 셈이다.
김주원 기자
조사 결과 부모 부양의 자녀 책임에 반대한다는 응답 비율(47.5%)이 찬성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동의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31.8%였다. 직장인 이모(27)씨는 "긴 인생을 살면서 노후는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라며 "부모를 모시고 싶지도 않고, 나 역시 자식에게 기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인식은 가구의 경제 형편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 가구원의 부모 부양 찬성(동의) 비율은 20.7%, 일반 가구원은 20.6%로 사실상 차이가 없었다. 반대 비율 역시 저소득 가구 49.2%, 일반 가구 47.4%로 비슷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2~6월 7300가구를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응답자들의 인식을 '매우 동의'부터 '매우 반대'까지 5점 척도로 확인한 뒤 이를 재범주화해 분석했다.
앞서 2007년 한국복지패널 첫 조사 당시에는 부모를 자녀가 모셔야 한다는 의견이 52.6%로 과반을 차지했다. 반대 의견(24.3%)은 찬성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2013년 조사에서 찬반 비율이 처음으로 역전된 이후 격차가 매년 벌어졌고, 부모 부양이 자녀의 책임이라는 데 동의하는 비율은 20%대까지 낮아졌다.
대전 동구 ‘2026년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 발대식이 지난 2월 2일 오후 산내농협 강당에서 어르신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어르신들이 박희조 동구청장 등 내빈들의 큰절을 받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김성태 객원기자
이 같은 인식 변화 속에서 '마처 세대'(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첫 세대)를 자처하는 이들 사이에선 노후를 둘러싼 고민이 나오고 있다. 은퇴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모인 회원 30만 명 규모의 온라인 카페에서는 "50대인 우리가 마지막 부모 부양 세대다. 장례도 아이들에게 부담이 될까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연금이 적고 걱정도 많을 텐데 노후는 이제 각자도생"이라는 글이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국가데이터처 '2025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령자 가운데 생활비를 자녀나 친척에게서 지원받는다고 답한 비율은 10.3%에 그쳤다. 직전 조사(2023년 12%)보다 더 줄어든 수치다.
전문가들은 과거 효(孝)라는 이름으로 개인이 짊어졌던 돌봄의 영역이 이제는 사회의 공적 영역으로 이동했다고 설명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돌봄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에 대한 문제"라며 "가족이 책임지기 어려워진 만큼 공적 부양 시스템을 갖추고, 이를 위한 재원 마련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영선 경희대 노인학과 교수(AgeTech연구소장)는 "막내 베이비붐 세대인 1963년생이 65세가 되는 2028년, 1차 베이비붐 세대인 1955년생이 75세가 되는 2030년이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며 "그 전까지 노인들이 주도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산업 생태계와 정책이 마련돼야 사회 전체의 돌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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