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기름값 2000원 코앞…'빵빵' 최저가 주유소 앞 차들 뒤엉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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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11시 서울 성북구의 한 주유소. 휘발유 L당 1787원, 경유 1766원으로 성북구에서 가장 저렴한 주유소(오피넷 기준)인 이 곳은 셀프 주유소임에도 직원 서너 명이 나와 차량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기름 값이 치솟자, 저렴한 주유소를 찾아 온 차량들이 대거 몰리면서다.
내부순환로 길목에 있는 주유소에는 들어가려는 대기 차량과 지나가려는 차량이 뒤엉켜 2차선 도로가 오전부터 가로 막혔다. 대기줄 사이로 끼어들려는 차량이 있자 한 차주는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리기도 했다. 주유기 여섯 대는 30분 동안 단 한 번도 비지 않고 쉴 새 없이 차량과 오토바이에 기름을 채워 넣었다.
9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의 '최저가' 주유소가 차량들로 붐비는 모습. 김예정 기자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국내 주유소 휘발유·경유 가격은 연일 상승세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9일 오후 4시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 판매가격은 L당 1902.70원, 경유는 1926.34원을 기록했다. 지난달 주간 평균 가격이 휘발유 1686~1691원, 경유 1582~1594원선이었던 것과는 대비된다. 이날 서울 평균 L당 판매가격은 휘발유 1949.53원, 경유 1971.53원에 달했다.
최근 비싸진 원유가 국내에 공급되기도 전에 정유사들이 주유소 기름값을 올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제 유가 상승이 국내 주유소 유류 판매가격에 반영되기까지는 통상 약 2주가 걸리는 것과는 대비된다. 이에 대해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석유 공급이 불안정한 데다 국내 소비자 수요가 급증하면서 주유소 유류 판매가격을 불가피하게 인상 조치했다”며 “정부의 유류 수급 안정 지침에 협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9일 오전 11시 서울 성북구 '최저가' 주유소에서 주유하기 위해 차량들이 줄지어 선 모습. 곽주영 기자
정부는 급등한 주유소 유류 판매가격을 손보겠다고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주유소 유류 가격) 제재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회의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유류 최고가격 지정과 정유사 간 담합 여부 조사 등을 언급하며 “(유류 물가 안정을 위해) 모든 행정수단을 동원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나흘이 지난 9일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이날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알뜰주유소를 찾은 김필성(45)씨는 “전쟁 직후 기름값이 올라 화가 났는데 대통령이 경고 메시지를 냈다고 하니 고맙기도 했다”면서도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기름값이 내려가게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2022년 6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국내 휘발유·경유 평균 판매가격이 2100원에 육박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같은 일이 반복되는 만큼 이번엔 정부 대응이 달라졌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중동 정세 불안이 장기화하면서 기름값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오전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100달러는 국제 원유 시장에서 주요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수준으로, 이 선이 무너진 것은 202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기름값이 더 오르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주유해두려는 시민들은 최저가 주유소에 몰려들고 있다. 오피넷과 네이버 지도, 카카오맵 등을 통해 주변에서 가장 저렴한 주유소를 검색한 뒤 이동하는 것이다. 이날 휘발유를 L당 1798원, 경유 1758원에 판매해 오피넷 기준 용산구 최저가 주유소를 운영하는 A씨는 “전쟁 전보다 손님이 50% 정도 늘었다”며 “주변 주유소와 가격 차가 벌어지면서 손님이 몰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종의 한 주유소도 L당 1752원으로 비교적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자 주말 내내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들이 인근 도로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9일 오전 11시 서울 성북구의 한 셀프주유소에서 문채준(24)씨가 오토바이에 휘발유를 주유하기 위해 패널 버튼을 누르는 모습. 문씨는 “요즘 서울에서 L당 1800원 이하인 주유소 드물어 일부러 찾아왔다”며 “전쟁 전엔 8L에 1만원쯤이면 됐는데 방금 1만5000원 가까이 결제했다”고 말했다. 곽주영 기자
그럼에도 생계를 위해 운전대를 놓을 수 없는 시민들은 부담이 크다고 호소한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 성동구의 한 셀프주유소를 찾은 방제관(58)씨는 “경유가 근방에서 제일 저렴한 1769원이라 찾아왔다”면서도 “원래 이틀에 한번 5만원씩 기름을 넣었는데 오늘은 비슷한 양에 7만원을 냈다”며 씁쓸해했다. 20년째 유통업계에서 탑차를 몰고 있다는 방씨는 “기름값이 비싸져도 매일 납품을 해야 하는 우리 같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주유해야 한다”며 “월 120만원쯤 들던 기름값이 이대로라면 반 이상 더 늘어날 것 같아 눈앞이 캄캄하다”고 했다. 그는 동료들과 급제동·급가속을 줄이는 운전 습관 등 기름값을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한 ‘팁’을 공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유가 여파로 전기차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전기차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렌트와 구매 문의 글이 늘었다. 장기렌트 업체 매니저 김현철(45)씨는 “예전에는 내연기관차 문의가 70%, 전기차가 30% 정도였는데 최근엔 역전돼 전기차 문의가 더 많아졌다”며 “보조금 혜택과 기름값 부담이 맞물리면서 전기차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들은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거나 난방비를 줄이는 등 에너지 절약에 나섰다. 대학원생 최모(25)씨는 "학교가 차로 30분, 버스로 1시간 30분 걸려 차를 이용했는데, 이제는 버스 타고 다녀야할 판"이라고 걱정을 토로했다. 한 시민은 SNS에 “일요일 낮 양양고속도로 양방향이 뻥 뚫려 있었다”며 “매주 같은 시간에 다니는 길인데 이렇게 차가 없는 건 처음 봤다”고 적었다.
경찰은 기름값 관련 불법 행위를 적극적으로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9일 오전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중동 사태로 인한 기름값 (급등) 문제와 관련, 석유사업법 위반 사범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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