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손목 위에 구현한 전용 '스코어보드'...리차드 밀이 공개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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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를 대표하는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리차드 밀(Richard Mille)이 새로운 모델 ‘RM 41-01 투르비용 축구(이하 RM 41-01)’를 올봄 공개했다. 이름 그대로 중력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장치인 투르비용과 90여분간 이어지는 축구 경기를 보다 능동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한 다양한 기능을 담아낸 시계다.
RM 41-01 투르비용 레드 카민 컬러 바살트 TPT® 버전. 경기 시간 인디케이터와 홈∙원정팀 골 카운터 등 두 가지 새로운 컴플리케이션을 탑재한 모델이다. 사진 리차드 밀
착용자가 킥오프부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경기 시간을 측정하고 득점 결과를 직접 손목 위에 기록할 수 있도록 설계된 메커니즘이 돋보인다.
연장전 시간까지 재는 기발함 갖춰
축구 경기용 ‘타이머’ 기능은 리차드 밀을 포함해 여러 브랜드가 이미 시도해왔다. 하지만 전∙후반 및 연장전 표시, 팀별 득점 카운터, 그리고 투르비용 메커니즘까지 아우른 사례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 이는 단순한 기능 확장을 넘어 브랜드의 독창적 아이디어와 첨단 기술력을 집약한 결과물이다.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로 보이는 칼리버 RM 41-01의 모습. 650개의 부품을 조립했다. 사진 리차드 밀
RM 41-01의 중심에는 리차드 밀이 새롭게 개발한 무브먼트 ‘칼리버 RM 41-01’이 있다. 시계 이름과 같은 일련번호를 받은 이 심장은 크라운(용두)을 돌려 동력을 저장하는 수동 와인딩 방식이며, 650여 개의 부품으로 이뤄졌다. 풀 와인딩 시 파워리저브는 70시간으로 넉넉하다.
수동 와인딩 방식의 칼리버 RM 41-01. 리차드 밀과 오데마 피게의 르 로클 매뉴팩처가 합세해 개발한 새로운 시계의 '심장'이다. 사진 리차드 밀
투르비용과 시간의 흐름을 재기 위한 플라이백(Flyback) 크로노그래프가 이 무브먼트의 기술적 축을 이룬다. 크로노그래프는 시간 흐름을 측정하는 일종의 스톱워치 기능을 말한다. 플라이백은 측정 중 ‘리셋(Reset)’ 버튼 한 번으로 즉시 원점으로 복귀해 곧바로 재측정을 시작할 수 있는 장치로, 일반 크로노그래프보다 한층 높은 기술력을 요구한다. 이 무브먼트는 스위스의 또 다른 시계 브랜드인 오데마 피게의 르 로클 매뉴팩처와 함께 5년에 걸친 긴 연구 개발 끝에 완성됐다.
레드 카민 컬러 바살트 TPT®와 다크 블루 컬러 쿼츠 TPT®의 두 가지 소재로 선보이는 RM 41-01 투르비용 모델. 생산되는 시계마다 케이스의 무늬가 모두 다르다. 사진 리차드 밀
손목 위에 얹은 전용 스코어보드
시계 기능에 대해 좀 더 살펴보면, 다이얼 9시 방향의 ‘경기 시간 인디케이터’가 눈에 띈다. RM 41-01의 핵심 장치다.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의 리셋 버튼을 누를 때마다 인디케이터는 전반(1st Half)에서 후반(2nd Half)으로, 다시 연장 전반과 연장 후반으로 자동 전환한다. 단순히 시간을 재는 기능을 넘어 축구 경기의 단계적 구조를 기계적으로 구현한 설계가 돋보인다. 이 장치는 케이스 8시와 10시 방향의 푸시 버튼 2개로 조작한다.
경기 시간 인디케이터 조립 과정. 크로노그래프 작동 시 ‘전∙후반전(1ST∙2ND HALF)’과 ‘연장(1ST∙2ND OVERTIME)전’을 표기한 디스플레이가 회전한다. 사진 리차드 밀
‘기계식 골 카운터’ 역시 이 시계를 특징짓는 요소다. 케이스 2시와 4시 방향의 푸시 버튼 2개를 통해 홈팀과 원정팀의 득점을 각각 기록할 수 있다. 카운터는 다이얼 11시(홈팀)∙5시(원정팀) 방향에 있으며, 버튼을 누를 때마다 삼각형 포인터가 숫자와 눈금을 새긴 금속 레일을 따라 이동한다. 각 팀당 최대 9골까지 표시할 수 있고, 이후 포인터는 자동으로 초기 위치로 돌아간다. 마치 시계 착용자만을 위한 전용 전광판처럼, 손목 위에서 득점 현황을 기록하고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RM 41-01 투르비용 모델의 주요 기능·부품 설명도. 복잡해 보이나 가독성이 뛰어나고 작동 방식이 간편한 것이 이 시계의 특징이다. 사진 리차드 밀
650개 부품 모여 완성된 심장
이러한 기능을 가진 무브먼트는 뼈대만 남긴 채 속을 훤히 드러낸 스켈레톤 형태로 다이얼 위에서 직접 볼 수 있다. 복잡하고 정교한 메커니즘을 손목 위에서 즐길 수 있는 리차드 밀 고유의 설계 방식을 이번 제품에서도 이어간다. 다이얼 중앙에는 축을 공유한 4개의 시곗바늘이 있다. 시침과 분침, 크로노그래프 초침과 분침이다. 초침에는 바늘 끝에 ‘S(second)’, 분침에는 ‘M(minute)’을 표기해 직관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초침과 분침이 각각 다른 축에서 회전하는 보통 크로노그래프 디스플레이와 다르다.
다이얼 가운데 크로노그래프 초침과 분침이 함께 회전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시곗바늘 구분을 위해 바늘 끝에 S(Second), M(Minute)을 새겼다. 사진 리차드 밀
다이얼 4시 방향, 즉 원정팀 카운터 위로는 크라운의 포지션을 알려주는 기능 인디케이터가 있다. N은 중립, W는 동력 축적을 위한 와인딩, H는 시간 설정 모드를 뜻한다. 리차드 밀을 대표하는 기능 중 하나로 크라운 회전 오작동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설계됐다.
이 시계에는 크로노그래프의 핵심 부품인 칼럼 휠을 두 개 탑재했다. 크로노그래프의 시작과 정지, 그리고 부드러운 플라이백 기능 구현을 위한 설계다. 사진 리차드 밀
무브먼트의 구조를 이루는 칼리버 41-01의 베이스 플레이트와 브리지는 5등급 티타늄 소재로 제작했다. 표면에는 마이크로 블라스트와 새틴 브러싱 마감을 적용해 금속 특유의 기계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혁신적 복합 소재로 만든 케이스
이번 신작의 케이스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토노(tonneau) 형태다. 와인을 숙성하는 배럴을 닮은 곡선형 실루엣으로, 측면 역시 손목 곡선을 따라 완만하게 다듬어 착용감을 높였다. 리차드 밀의 시계 케이스는 보통 글라스를 감싼 베젤, 측면의 미들 케이스, 백케이스의 3단 구조로 이뤄지며, 이번 모델에는 총 105개의 부품이 투입됐다.
케이스 조립 과정. 3단 구조의 케이스는 12개의 스크루로 견고하게 고정된다. 베젤과 백케이스는 바살트 TPT®, 미들 케이스는 카본 TPT® 소재로 제작했다. 사진 리차드 밀
RM 41-01은 케이스 소재에 따라 두 가지 버전으로 나뉜다. 선홍빛을 띠는 레드 커민 바살트 TPT®, 블루 쿼츠 TPT®다. 두 모델 모두 미들 케이스에는 ‘카본 TPT®’를 적용했다. 이들 소재는 스위스 복합 소재 전문 기업 노스 신 플라이 테크놀로지(North Thin Ply Technology)와 협업해 개발한 것으로,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높고 부식과 열, 자외선에 강한 것이 특징이다.
두께 40마이크론의 바살트 섬유 제조 과정. 머리카락(약 50~100마이크론)보다 가는 굵기로 추출한다. 사진 리차드 밀
‘노스 신 플라이 테크놀로지’사가 보유한 자동화 설비를 통해 바살트 섬유를 45도씩 방향을 달리하며 적층한다. 이후 고온∙고압 처리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케이스 소재로 완성된다. 사진 리차드 밀
가장 최근 개발한 ‘바살트 TPT®’는 화산암에서 영감을 받은 복합 소재다. 두께 40마이크론(µm, 0.001㎜)의 바살트 섬유를 최소 수백 겹 이상 적층하고, 층마다 섬유 방향을 45도씩 교차시킨 뒤 고온∙고압에서 압축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나뭇결을 연상시키는 자연스러운 패턴과 깊이 있는 색감이 완성된다. 두께 30마이크론의 실리카 섬유를 사용하는 쿼츠 TPT®, 45마이크론 탄소 섬유 수백층으로 구성한 카본 TPT®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제작된다.
압축 과정을 거치기 전 뽑아낸 카본 TPT® 섬유. 사진 리차드 밀
완성된 케이스 크기는 43.23×49.65㎜, 두께는 16.08㎜다. 다이얼과 마찬가지로 백케이스의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를 통해 칼리버 RM 41-01의 역동적인 구동 모습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두 가지 버전 각각 30점 한정 생산한다.
축구로 확장한 기술 실험
리차드 밀은 RM 41-01 이전에도 축구를 다룬 바 있다. RM 11-01과 RM 11-04 로베르토 만치니 모델이 그 사례다. 특히 이탈리아 출신 감독 로베르토 만치니와 협업한 RM 11-04는 전·후반 45분 구조를 반영해 경기 시간을 설정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축구의 시간 체계를 기계식 시계로 해석하려는 시도였다.
케이스 오른쪽에 위치한 홈∙원정팀 득점 기록용 푸시 버튼과 크라운. 반대 방향에는 시작/정지와 리셋으로 구성된 한 쌍의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푸시 버튼이 있다. 사진 리차드 밀
이런 접근은 축구에만 머물지 않았다. 리차드 밀은 자사 기술력을 통해 스포츠를 설계에 반영해왔다.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과 선보인 초경량 투르비용, 골퍼 부바 왓슨과 개발한 G-센서(회전 가속 측정) 탑재 모델, 그리고 드라이버 펠리페 마사 및 맥라렌 F1 팀과의 협업은 충격·가속·진동 같은 물리적 변수를 시험하는 과정이었다. 스포츠는 리차드 밀에게 후원이나 파트너십 대상이 아니라 기술 개발의 무대다.
백케이스를 통해 복잡하고 정교하게 조립된 칼리버 RM 41-01을 볼 수 있다. RM 41-01 투르비용 다크 블루 컬러 쿼츠 TPT® 버전. 사진 리차드 밀
그 연장선에서 RM 41-01은 또 다른 발전 방향을 보여준다. 그동안 물리적 한계를 다루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축구의 단계와 스코어라는 시간 구조 자체를 설계 안에 자연스럽게 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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