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조선땅' 독도 왜 출입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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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에도시대(1603~1868년), 울릉도·독도 출입 금지를 어긴 자국 어민들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책임으로 지방 사무라이(무사)들이 문책 끝에 자결한 기록이 일본 문서에서 확인됐다.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은 일본 시마네현 '다케시마 자료실' 보관소에 있는 '마쓰이 일족' 사료에서 이러한 내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해당 삽화는 김 소장이 마쓰이 일족 문건에서 찾은 관련 이미지다. 사진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
일본 에도시대(1603~1868년), 울릉도·독도 출입 금지를 어긴 자국 어민들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책임으로 지방 사무라이(무사)들이 자결했다는 기록이 일본 문서에서 확인됐다. 이는 당시 일본 정부가 독도 등 두 섬을 조선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으로 주목된다.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은 일본 시마네현 '다케시마 자료실' 보관소에 있는 '마쓰이 일족' 사료에서 이러한 내용을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해당 문건은 일본 현지에서도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비공개 자료로 알려졌다.
일본 에도시대(1603~1868년), 울릉도·독도 출입 금지를 어긴 자국 어민들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책임으로 지방 사무라이(무사)들이 문책 끝에 자결한 기록이 일본 문서에서 확인됐다.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은 일본 시마네현 '다케시마 자료실' 보관소에 있는 '마쓰이 일족' 사료에서 이러한 내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진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
마쓰이 일족은 시마네현 서쪽에 있는 하마다 지역의 번주(다이묘·영주)였던 마쓰다이라 가문에 속한 사무라이 집안이다.
김 소장이 공개한 마쓰이 일족 사료를 보면 해당 문건 20쪽에 천보 7년(1836년) 10월 29일 하마다의 사무라이 마쓰이와 오카다가 '죽도 도해 금지령'을 어긴 어민을 관리하지 못한 문제로 일본 막부로부터 조사를 받았다는 기록이 담겨 있다. 이들은 당시 하마다 지역 행정을 책임지던 관료였다.
문건에 따르면 막부는 두 차례 서면 조사를 진행한 뒤 같은 해 12월 이들을 에도(현재 도쿄)로 불러 직접 심문했다. 조사 과정에서 마쓰이 등 사무라이들이 자결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명예를 지키기 위한 할복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죽음 이후에도 처벌은 이어졌는데, 막부는 마쓰이의 아버지와 일가에게 영구 근신 처분을 내렸다.
일본 에도시대(1603~1868년), 울릉도·독도 출입 금지를 어긴 자국 어민들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책임으로 지방 사무라이(무사)들이 문책 끝에 자결한 기록이 일본 문서에서 확인됐다.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은 일본 시마네현 '다케시마 자료실' 보관소에 있는 '마쓰이 일족' 사료에서 이러한 내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진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
이 사건의 배경에는 막부의 출입 금지 조치가 있었다. 막부는 1696년 울릉도·독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이유로 일본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죽도 도해 금지령'을 내렸다. 이 금지령은 1693년 조선 어민 안용복 등이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독도 문제를 항의한 이후 내려진 조치다.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안용복과 박어둔은 "독도는 조선의 땅"이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항의했고, 이를 계기로 양국 간 영유권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이후 막부는 두 섬이 조선 영토임을 인정하고 자국민의 접근을 엄격히 제한했다고 한다. 김 소장은 "러·일전쟁(1904~1905년) 시기까지도 두 섬 출입을 금지했다는 자료가 전해진다"고 전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울릉도를 '죽도', 독도를 '송도'라고 불렀다. 일본에서 울릉도로 가기 위해서는 독도를 거쳐야 했기 때문에 두 섬은 하나의 항로로 인식됐고, 금지령 역시 두 섬 모두에 적용됐다.

일본 에도시대(1603~1868년), 울릉도·독도 출입 금지를 어긴 자국 어민들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책임으로 지방 사무라이(무사)들이 문책 끝에 자결한 기록이 일본 문서에서 확인됐다.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은 일본 시마네현 '다케시마 자료실' 보관소에 있는 '마쓰이 일족' 사료에서 이러한 내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진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
이 조치 이후 일부 일본 어민들이 금지령을 어기고 몰래 출입하면서 문제가 반복됐고, 이를 관리해야 할 지방 사무라이에게 책임이 돌아간 것이다. 김 소장은 "이 기록은 당시 일본 정부가 울릉도·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은 이런 기록을 공개하지 않은 채 매년 2월 22일 '다케시마의 날'을 열어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자국의 역사 기록조차 외면한 일본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주장이 이어지면서 호적상 본적지를 독도로 신고한 일본인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지난달 23일자 기사에서 독도를 본적으로 신고한 일본인이 112명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일본 호적법은 자국민이 국내 어디로든 본적지를 이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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