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뜻 이어 … 30년간 의료 불모지 찾아 [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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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여구 단장
성산장기려기념사업회 블루크로스의료봉사단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수상
1997년부터 국내외에서 봉사 실천
의료진·학생 등 5000여 명 함께해
캄보디아선 캠프 열어 암 환자 수술
장여구 단장은 “봉사 중 배우자가 쓰러졌는데 119가 생각나지 않아 손도 써보지 못하고 남편을 떠나보낸 어르신을 만난 적이 있다”며 “올바른 의료 정보를 알리는 일의 중요성을 느껴 학생들과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은주 객원기자
비행기와 버스, 배를 갈아타며 오지로 향한다. 길게는 12시간이 넘는 여정이다. 현장에 도착해도 쉴 틈은 없다. 소문을 듣고 몰려든 수백 명의 환자를 살피고, 때로는 오전 7시부터 밤 9시까지 수술을 이어간다. 직경 30㎝에 달하는 갑상선 종양 탓에 말을 하지 못했던 청년, 유방암으로 죽음의 문턱에 섰던 일곱 남매의 어머니…. 성산장기려기념사업회 블루크로스의료봉사단은 이들에게 새 삶을 선물했다.
블루크로스의료봉사단은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97년 세워진 단체다. 30년간 의료 사각지대를 찾아다니며 봉사를 펼쳤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최근에는 제42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보령의료봉사상은 참된 의료인과 단체를 발굴하기 위해 보령과 대한의사협회가 85년 제정한 상. 그간 고(故) 이태석 신부를 비롯해 191명에게 시상했다. 지난 9일 블루크로스의료봉사단을 대표해 장여구(군포지샘병원 통합암병원장) 단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장 단장은 장기려 박사의 손자이기도 하다.
- 대상을 받은 소감이 어떻나.
- “우리가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겸허히 되돌아보게 된다. 수많은 봉사자와 뒤에서 지원해준 분들 덕에 이룬 성과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묵묵히 봉사를 이어가겠다.”
- 단체 규모가 꽤 크다.
- “처음엔 소규모였으나 지금은 의료진 200여 명에 학생과 일반 봉사자 등 5000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단체로 성장했다. 우리 단체는 가족 단위 봉사자가 많은 편이다. 부모를 따라 자녀가 봉사에 나서기도 하고, 자녀의 권유로 부모가 함께하기도 한다. 학창 시절 봉사 현장에서 의료진의 모습을 보고 의대에 진학한 뒤 의사로 다시 봉사에 참여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
- “국내 노숙자와 외국인 근로자, 농어촌 지역민 등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하고 해외 오지 마을을 찾아다니며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캄보디아에선 주기적으로 ‘닥터장 수술 캠프’를 열어 암 환자도 수술한다. 이외에 의료 정보를 담은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고 맨발로 축구 경기를 하는 동남아 아이들에게 축구화를 선물하는 일에도 앞장선다.”
- 본업과의 병행이 쉽지 않을 텐데.
- “은퇴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의료진이 병원 진료 등 각자의 일을 병행하고 있다. 일정을 조율할 수 있게 보통 1~2월에 한 해 계획을 세우고 세부 일정을 미리 안내한다. 매년 열리는 6박7일 캄보디아 수술 캠프의 경우 10월 말에서 11월 초로 일정을 고정해 개인 휴가를 내 준비할 수 있도록 한다. 국내 이동 진료는 학생 참여자가 많아 방학 기간을 주로 활용한다.”
캄보디아에서 수술 후 처치하는 의료진 모습.
- 현장 반응은 어떤가.
- “요즘은 무의촌(의사나 의료기관이 없는 곳)이 없다지만, 읍·면 소재지에 있는 병원을 가기 위해 하루를 통으로 써야 하는 산골 마을 주민이 여전히 많다. 버스가 하루 두 번밖에 운행되지 않아 아침에 병원에 갔다 밤에 돌아오는 식이다. 농번기에는 큰맘 먹어야 병원에 갈 수 있는 처지라 봉사자들이 가면 무척 좋아한다. 해외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국 의료진이 왔다는 소문에 트럭을 타고 다른 동네에서까지 매일 수백 명씩 몰려온다.”
- 힘든 순간은 없었나.
- “해외 봉사의 경우 거즈 한 장까지도 한국에서 직접 챙겨갈 만큼 만반의 준비를 하지만, 현지 사정으로 진료를 하지 못할 때가 있다. 특히 라오스 같은 공산주의 국가는 사전 허가를 받아도 갑작스러운 조치로 봉사가 막히곤 한다. 실제로 3년 전 인근 마을에서 진료받던 환자가 잘못됐다는 이유로 하루 치 진료가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그래도 치료받은 환자와 그 가족들이 ‘고맙다’고 할 때면 그 모든 어려움이 잊힌다.”
- 해외 의료진 교육에도 열심이다.
- “현지 환자들이 퇴원 후에도 건강을 유지하고, 더 많은 개발도상국 주민에게 의료 혜택이 전달되도록 하기 위한 과정이다. 필요하다면 한국에 돌아와 현지 의대생들에게 의학 서적과 청진기 등 의료용품도 보낸다. 과거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성장한 한국의 변화는 현지 학생들에게도 큰 귀감이 된다. ‘언젠가는 우리도 남을 돕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 앞으로 어떤 단체가 되길 바라나.
- “블루크로스의료봉사단의 명칭은 할아버지인 장기려 박사가 68년 설립한 청십자의료보험에서 유래했다. 가난한 사람들도 치료받을 수 있는 국내 최초의 의료보험 조합이었다. 그 명성에 걸맞게 도움이 필요한 곳에 꾸준히 의료의 손길을 전하는 단체가 되는 게 우리의 목표다.”
- 좀 더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 “우리 단체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최근 들어 후원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의사들이 참여하는 단체라 재정적으로 넉넉할 거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의료진도 후원에 참여하지만 한계가 있다. 이동 진료에 필요한 장비만이라도 지원이 원활하게 이뤄지면 더 많은 환자를 돌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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