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올해도 워치스&원더스 놀래켰다...샤넬이 구축한 시계 세상 [더 하이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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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은 매년 ‘워치스&원더스’ 시계 박람회에서 수십 종의 신제품을 선보인다. 마치 파리에서 계절마다 열리는 기성복 또는 오트 쿠튀르(최고급 맞춤 의상) 컬렉션처럼, 다채로운 스타일의 시계가 쏟아진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단지 종류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각 시계에 혁신적인 기술력, 독창적인 디자인, 장인정신이 고루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결과는 샤넬 워치메이킹 크리에이션 스튜디오 디렉터 아르노 샤스탱(Arnaud Chastaingt)의 치밀한 전략, 브랜드 설립자 가브리엘 샤넬이 남긴 유산, 그리고 공격적인 투자로 확보한 스위스 정통 워치메이킹 노하우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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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점 생산한 탁상시계 '다이아몬드 아스트로 클락'으로 박람회 기간에 바로 판매됐다. 사진 샤넬

참고로 샤넬은 통합 매뉴팩처링(manufacturing)이 가능한 브랜드다. 디자인은 샤스탱이 근무하는 파리에서, 제품 생산은 스위스 라쇼드퐁 지역의 매뉴팩처에서 이뤄진다. 이곳은 케이스와 브레이슬릿 제작부터 조립, 품질 테스트까지 이뤄지는 공방으로, 샤넬이 직접 운영한다. 시계의 심장인 무브먼트는 샤넬이 공동 소유한 케니시 매뉴팩처가 담당한다. 시계 하나가 나오기까지 브랜드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부분이 없다. 이것이 샤넬이 시계 분야에서 정통성을 인정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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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12 블루를 대표하는 38 & 33㎜ 모델. J12 블루 컬렉션엔 자체 제작 무브먼트가 탑재된다. 사진 샤넬

다양화와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 샤넬의 전략은 올해도 유효했다. 대표 아이콘인 J12와 프리미에르 컬렉션이 더욱 강화됐다. J12의 출시 25주년을 기념해 블루 세라믹을 사용한 ‘J12 블루(bleu)’ 라인업이 새롭게 등장했고, 샤넬의 첫 시계인 프리미에르(1987년 출시) 컬렉션에는 두 가지 신제품이 더해졌다. 금으로 만든 볼륨감 있는 브레이슬릿이 특징인 ‘프리미에르 갈롱’, 체인 브레이슬릿이 손목을 두 번 감싸는 ‘프리미에르 아이코닉 체인 더블 로우 워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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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에르 갈롱 워치. 사진 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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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12 블루 출시에 맞춰 푸른색으로 꾸민 워치스&원더스 박람회 샤넬 부스 전경. 사진 샤넬


블랙과 화이트, 그리고 ‘블루’
박람회 출품작의 중심은 단연 ‘J12 블루’다. 2000년 블랙, 2003년 화이트 컬러에 이어 오랜만에 추가된 색상이다. 샤넬을 대표하는 컬러는 블랙과 화이트지만, 블루 역시 패션과 뷰티 등 브랜드의 주요 카테고리에서 꾸준히 사용되어왔다. 이번 컬렉션을 위해 샤넬은 5년에 걸친 연구·개발을 통해 특별한 블루 색조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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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이어를 인덱스로 사용한 J12 블루 워치. 사진 샤넬

샤스탱은 “블랙 컬러에 은은한 블루 빛을 넣고 싶었다”며, 블랙과 블루 사이에 놓인 오묘한 색이 이번 J12 블루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케이스는 J12 특유의 세라믹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매트한 질감으로 완성했다. J12 블루 컬렉션은 총 9종으로, 자체 제작 무브먼트를 탑재한 지름 38㎜ 또는 33㎜ 제품이 기본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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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컴플리케이션인 J12 블루 다이아몬드 투르비용 워치와 베젤에 바게트 컷 사파이어를 세팅하는 과정. 매트 블루 세라믹과 유색 스톤이 조화를 이룬다. 사진 샤넬

상위 라인업으로 갈수록 인덱스, 베젤, 브레이슬릿 등에 짙푸른 사파이어가 세팅돼 있으며, 모델에 따라 크기와 사양이 달라진다. 특히 ‘J12 블루 다이아몬드 투르비용 워치’는 베젤에 총 4캐럿의 바게트 컷 사파이어, 투르비용 케이지 위에는 1개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를 얹어 하이 컴플리케이션의 미학을 극대화했다. J12 블루의 제품 모두는 한정판이다.

남다른 시각으로 완성한 장인정신
샤넬은 매년 일정 기간에만 만날 수 있는 캡슐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는 샤넬 메이크업 제품의 색조와 질감(텍스처)을 시계에 담아낸 ‘블러쉬’가 그 주인공이다. 샤넬 특유의 블랙 케이스에 담긴 파우더와 립스틱처럼, 프리미에르∙보이프렌드∙J12 등 대표 시계에 다채로운 색감을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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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블러쉬 워치 캡슐 컬렉션 대표 모델. 왼쪽부터 프리미에르 커프 블러쉬 워치, 코드 코코 블러쉬 워치, 프리미에르 참 블러쉬 워치. 사진 샤넬

팝 아트 또는 물감을 흩뿌리는 듯한 드리핑 기법 등 다양한 회화 표현을 시계 위에 구현하기 위해 공방의 장인들은 에나멜링, 젬 세팅, 미니어처 페인팅, 골드 조각 등 다양한 기술을 총동원했다. 또한 스탬프를 사용해 잉크를 다이얼 위에 전사하는 ‘패드 프린팅’ 방식도 이번 컬렉션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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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블러쉬 워치 캡슐 컬렉션에 속한 보이∙프렌드 ‘코코 아트’ 워치. 그랑 푀 에나멜 다이얼 위에 패드 프린팅 기법으로 설립자 가브리엘 샤넬을 표현했다. 미니어처 팝아트를 연상시킨다. 사진 샤넬

샤넬의 독보적인 장인정신은 브랜드를 상징하는 동물 ‘사자’를 테마로 한 ‘더 리옹 오브 마드모아젤’ 컬렉션으로 이어진다. 총 119.92캐럿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 5037개를 세팅한 사자 조각상과 구체, 별 모티브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 아스트로클락’, 투르비용 케이지 위에 사자 모티브를 얹은 남성 시계 ‘무슈 플래티넘 리옹 투르비용 워치’ 등이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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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아스트로 클락과 탁상시계에 들어가는 사자 조각상 제작 과정. 9개 파트로 나뉜 조각상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하는 데만 565시간이 걸린다. 사진 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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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슈 플래티넘 리옹 투르비용 워치. 사진 샤넬

워치스&원더스 박람회 현장에서 아르노 샤스탱을 직접 만나, 새로운 시계와 브랜드 철학에 대해 들었다. 2013년부터 샤넬 시계 디자인의 방향성과 창의적 정체성을 주도해온 인물이다. 샤넬 시계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제약을 두지 않는 디자인 철학'에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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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워치메이킹 크리에이션 스튜디오 디렉터 아르노 샤스탱. 사진 샤넬

Q. J12와 프리미에르를 포함해 샤넬의 시계는 브랜드 미학을 강하게 드러낸다. 각각이 하나의 아이콘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는 의도된 방향인가.
“제품이 ‘아이콘’이 되는 건 결국 고객의 선택에 달려있다. 다만 두 컬렉션이 샤넬 시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샤넬의 스타일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방돔 광장과 N°5 향수 뚜껑의 디자인을 모티브로 삼은 프리미에르는 샤넬의 첫 시계로, 클래식을 추구하는 샤넬 스타일의 교본 같은 존재다. 반면 J12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블랙과 화이트 컬러, 그래픽적 요소를 통해 샤넬의 모던한 측면을 보여준다. 이 둘은 확실히 다르지만, 함께 놓고 보면 샤넬의 정체성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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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12 블루 다이아몬드 투르비용 워치. 투르비용 케이지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독창성을 발휘한 모델로 꼽힌다. 사진 샤넬


Q. 샤넬은 시계 디자인에 따라 무브먼트를 설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워치 디자인에 있어 중요한 철학은 무언가.
“‘먼저 꿈꾸고, 그다음 기술을 고민하라.’ 시계는 기계이기 때문에 디자인 과정에서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 브랜드는 나를 포함한 디자이너에게 창작의 자유를 보장해 준다. 운 좋게도 메커니즘을 담당하는 워치메이커들 역시 우리의 디자인을 도전이나 장애물이 아닌 ‘기회’로 받아들인다. 물론 완벽한 디자인이라도 품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생산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작업한다. 내부적으로 이를 ‘샤넬의 시간(L’heure de Chanel)’이라 부른다.”

Q. J12의 새로운 색을 블루로 택한 특별한 배경이 있나.
“샤넬의 대표색으로 블랙과 화이트를 떠올리지만, 블루 역시 특별한 색이다. 설립자가 사랑한 색이기도 하고, 드레스나 슈트에도 자주 등장한다. ‘블루 드 샤넬’이란 남성 향수도 있다. 수년 전 파리에서 열린 한 전시에서 설립자가 디자인한 여러 드레스를 봤다. 짙은 블루 컬러 위에 블랙 장식 더한 조합이었는데, 그 색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때의 기억이 이번 시계의 색을 정하는데 영감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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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신제품 중 하나인 프리미에르 아이코닉 체인 네크리스 워치. 사진 샤넬


Q. 프리미에르 갈롱 워치의 브레이슬릿 디자인은 어떻게 나오게 됐나.
“갈롱(재킷의 칼라나 소매, 포켓에 덧대는 장식)은 설립자 시절부터 지금까지 샤넬 패션 분야에 중요한 디테일 코드다. 정교하면서도 여성적인 디테일을 프리미에르에 접목함으로써, 시계와 쿠튀르 세계를 연결할 수 있었다. 프리미에르는 우리 시계 중 가장 ‘쿠튀르적인’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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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 골드와 세라믹을 사용한 J12 칼리버 12.2 모델 또한 올해의 신제품이다. 사진 샤넬


Q. 약 40년의 길지 않은 시간, 샤넬 워치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창작의 자유는 시계를 포함한 샤넬 하우스 DNA의 중심이다. 아티스틱 디렉터 자크 엘루는 ‘검은색 시계를 만들겠다’라는 하나의 생각에 따라 25년 전 J12를 내놨다. 여성들이 작은 시계를 착용하던 시기였지만 지름 38㎜의 과감한 크기를 택했다. 이는 시장 분석의 결과가 아니라 브랜드 자체, 그리고 그것을 이끄는 창의적인 사람들의 열망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J12는 결국 성공적인 아이콘이 됐다. 다른 컬렉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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