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홍길동의 율도국처럼....해적들이 만든 평등한 공동체가 있었다[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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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계몽주의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고병권‧한디디 옮김
천년의상상

해적은 엄연한 범죄자인데 영화를 비롯한 상당수 창작물에선 낭만적으로 묘사되기 일쑤다. 억압 사회에서 탈출해 자유와 기회를 누린 데다 약탈물을 동등 분배한 관습 때문에 대중에겐 비교적 긍정적으로 비친 모양이다.

미국 인류학자로 영국 런던정경대(LSE) 교수를 지낸 지은이는 카리브 해적들이 17세기 말~18세기 초 아프리카 동쪽 마다가스카르 섬에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리베르탈리아’라는 해적공화국을 세웠다는 기록에 주목한다.

실존여부가 확실하지 않아 홍길동의 ‘율도국’이나 허생의 ‘빈 섬’처럼 상상의 유토피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국 해적의 아들인 라치밀라호라는 인물이 마다가스카르의 암보나볼라 정착지에서 평등주의 연합체인 베치미사라카를 세우고 유토피아적 정치‧경제 실험을 했다는 기록은 남아있다. 노획물을 함께 나누는 해적의 민주주의‧평등주의 조직 원리를 육지에 적용하려 시도했다는 이야기다.

이곳 주민들은 자율적‧독립적 공동체 마을에 살며 평등한 삶을 누렸다. 지도자인 필로하니를 비롯한 정치 엘리트들도 주술사 등 종교 엘리트들과 함께 권력과 부를 일반 주민과 동등하게 나눴다. 해적과 결혼한 현지 여성들은 성적 해방 투쟁을 벌여 가부장적 제약을 넘어섰다.
지은이는 해방적‧급진적 민주주의를 꿈꾸며 바다의 유토피아 건설을 추구했던 이들을 ‘원형적 계몽주의자’로 부르고, 때 묻지 않은 인간중심 사상의 선구자로 평가한다. 17~18세기 서구 계몽주의는 이성‧합리를 무기로 권위의 족쇄를 부수고 인간 자유를 추구했지만 오늘날 급진주의자들에게 인종주의‧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됐다고 비판받는다. 하지만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이 동등한 정치‧경제 공동체를 이뤘던 리베르탈리아는 이런 한계를 넘어선다는 평가다.

아나키스트로서 ‘월가를 점령하라’ 등 다양한 사회운동에 참여하다 2022년 세상을 떠난 지은이는 리베르탈리아가 인간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고 강조한다. 원제 Pirate Enlightenment, or The Real Libert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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