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구 30명 시골서 탄생한 세계적 기업, 레고 100년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점[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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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 이야기
옌스 아네르센 지음
서종민 옮김
민음사
지구인은 한 명당 75개의 레고 블럭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기계적 평균이며, 실제 레고 블럭을 구매한 이는 약 4억 명으로 추정한다. 레고는 2022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브랜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적지 않은 유럽 대기업들이 그렇듯 레고는 100% 가족 회사로 최근까지 오너 가족이 직접 경영해 왔다.

2017년 덴마크 빌룬에 개관한 레고 체험 센터 '레고 하우스'. [사진 민음사]
『레고 이야기』는 100년 전 문을 연 덴마크의 시골 목공소가 우리가 아는 레고가 되는, 그리고 된 뒤의 이야기이다. 부제는 ‘작은 장난감은 어떻게 전 세계를 사로잡았나’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인기 상품이 생긴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해피엔딩을 뜻하지 않으며, 목가적인 시대의 마침표, 더 큰 고난의 시작인 경우가 더 많다.

2017년 공식 개장 당시 덴마크 왕세자, 왕세자비, 네 명의 왕세손이 '레고 하우스''를 방문했다. 사진은 왕세지비 메리가 키엘 등 레고 관계자들의 안내로 전시물을 둘러보는 모습. [사진 민음사]
저자 옌스 아네르센(1955~ )는 덴마크의 작가이자 언론인이다.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북구 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90년에는 게오르그 브라네스 문학상을 받았다. 19세기와 20세기 북구 작가들을 다룬 전기를 여럿 썼다. 그중에는 자신의 이름과 철자가 같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전기(2001)도 있다(안데르센의 올바른 덴마크어 표기는 아네르센이다).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전기(2014)는 한국에 번역되었다.

올레 키르크와 아들 고프레드, 손자 키엘, 레고 설립자 올레 키르크의 1951년 예순 번째 생일 때 모습이다. [사진 민음사]
이 책은 창업자 올레 키르크, 아들 고트프레드, 손자 키엘이 등장하는 크리스티안센 가문의 일대기이다. 1915년 젊은 목수 올레 키르크는 빌룬이라는 마을에 목공소가 매물로 나온 것을 알게 됐다. 빌룬의 인구는 30명에 불과했다(지금은 레고 본사 덕에 7000명이 넘는다). 빚을 내 목공소를 인수하고 정착한 올레는 그 뒤에도 빚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부분적으로는 강렬한 신앙심, 다른 한편으로는 모험적인 성격 덕분이었다.
그가 장난감 사업에 뛰어들어 1932년 ‘레고’를 설립한 것은 어느 정도는 역사적 우연이었다. 세계적 불황으로 건설 경기가 너무 안 좋아 목공소에서 실내용 제품이라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곧 장인의 직관으로 플라스틱의 가능성을 알아보았고 전 재산에 맞먹는 거액을 주고 영국제 사출 기계를 사 오는 무모함을 발휘했다.

1955년 출시된 최초의 레고 타운 플랜. 어린이들이 나만의 도시를 만들고 집과 자동차, 표지판, 나무들을 채울 수 있었다. [사진 민음사]
그리고 영특한 아들 고트프레드가 등장한다. 레고를 전 세계에 보급하겠다는 야심을 품은 이도, 가장 골치 아픈 블럭 간의 체결력 문제를 기발한 아이디어로 해결한 것도 그였다. 레고가 파는 건 블럭 조각이 아니라 보편적 시스템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도 그였다. 아마 그가 취한 몇몇 냉정한 결정들은 저자가 부드럽게 서술하기가 힘겨웠을 것 같다. 그가 경영하는 동안 레고는 최고의 브랜드로 올라선다. 그러나 그의 말년에 침체기가 닥친 것은 어찌할 수 없었고 이 해결은 1970년대 말 3세 키엘에게 맡겨졌다.
1세는 경건한 신앙인이었으나 모험가였다. 2세는 개인주의적이지만 선대보다 더 큰 기업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3세는 예술가적인 인간이면서도 대규모 경영 혁신을 가져왔다. 저자는 누구도 주인공으로 만들지 않으며, 3대가 책에서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한다. 그 결과는 마치 토마스 만의 소설 같은 상인 집안의 일대기로도 보이고, 한편 워즈니악-잡스-쿡으로 이어지는 애플의 역사를 보는 듯한 느낌도 없지 않다.

책 '레고 이야기' 서평용 이미지. 상세 크레딧은 확인필요. [사진 민음사]
눈에 띄게 서술되지는 않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면 이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출발점인 덴마크의 작은 마을 빌룬을 떠나지 않았다. 떠날 이유도 기회도 충분했으나 떠나지 않았다. 글로벌 대기업으로서는 비합리적이고 세계적 추세에도 역행하는 선택이었다. 적어도 이 결정에서 크리스티안센 일가는 사업가라기보다는 도덕적 약속의 이행자에 가까웠다. 그 이야기가 이 책을 흔한 기업 성공담과 구분 짓는다. 레고라는 브랜드가 퇴색되지 않는 것은 이 윤리적 선택에 대한 보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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