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李 외교 '첫 시험대' 중동서 왔다…정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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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과 관련해 "핵 비확산의 관점에서 이란 핵 문제 해결을 중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습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는 피하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습 '명분' 자체에는 공감대를 표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출범한 지 보름 남짓 된 이재명 정부가 예상치 못한 중동발 외교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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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 핵시설 공습 이후 백악관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는 모습. AP=연합뉴스

"핵 비확산 관점" 강조한 정부 

22일 외교부는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에 대해 "정부는 핵 비확산 관점에서 이란 핵 문제 해결을 중시하고 있으며 이란 내 핵 시설 공격 관련 사태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는 역내 긴장이 조속히 완화되기를 바라며 이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지속 동참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핵 비확산 관점'을 강조한 데는 한국 역시 북핵의 직접적 위협을 받고 있는 당사자라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비핵화를 추구해야 하는 한국이 이란의 불법적 핵 개발 저지 자체에 반대할 수는 없다는 게 대전제인 셈이다.

다만 트럼프가 이날 이란의 핵 시설 세 곳을 벙커버스터 등을 동원해 폭격한 건 '무력'을 동원한 이란 핵 문제 해결 시도에 해당한다. 미국이 직접적 위협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이를 자위권 발동 차원으로 인정할 수 있을지를 두고 국제법적 논쟁의 여지가 크다.

대북 군사 옵션까지 가정해야 하는 한국이 이에 대해 아예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은 건 다소 안일하다는 지적을 받을 여지도 있다. 정부의 공식 입장이 공습 불과 채 6시간도 되지 않아 나온 것도 충분한 고민한 결과냐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는 한·미 동맹을 우선 고려해 무력 사용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신 이란 핵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날 입장도 논평이나 보도자료가 아닌 언론의 질의가 있을 경우 배포하는 'PG'(Press Guidance) 형식으로 수위를 조절했다.

앞서 지난 13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직후 외교부는 “정부는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공격 등으로 중동 지역의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고 있는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모든 행동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당시엔 원인 제공자를 이스라엘로 지목하는 듯 했지만, '미국의 참전'이라는 변수가 생기면서 입장이 다소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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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란에 대해 핵시설 공습을 단행한 21일(현지시간) 백악관의 모습. EPA=연합뉴스

나토서 '韓 입장' 관건 

이재명 대통령의 참석이 유력한 오는 24~25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도 중동 사태는 핵심 의제가 될 전망이다. 국제사회가 양분된 가운데 이재명 정부의 입장에도 관심이 몰릴 수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강조한 ‘한국형 외교 좌표’의 방향성이 이번 사태로 윤곽을 드러낼 수도 있다.

유럽연합(EU)을 포함한 주요 유럽 국가들은 사태 해결을 촉구하면서도 사태의 도화선이 된 이스라엘의 공습을 공식적으로 규탄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튀르키예·중국·러시아 등은 이스라엘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앞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이스라엘이 우리 모두를 위해 더러운 일(dirty work)을 했다"고 발언한 건 이란의 핵 능력 증강을 원천 봉쇄하려는 이스라엘 공습 배경에 대해선 서방 진영에서는 상당 부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적 공조가 절실한 한국으로선 이러한 미국과 서방의 인식 자체에는 보조를 맞추는 게 자연스러운 그림일 수 있다. 이번 사안에서 한국이 어떤 입장을 표하는지에 따라 향후 북핵 문제 대응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한 외교적 설득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록 한국이 직접 휘말리지는 않더라도 중동 불안은 글로벌 안보와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북한·러시아·중국의 대응을 통해 한반도에도 파장이 미칠 수 있다”며 “이들의 반응을 포함한 전략적 구도 속에서 한국의 입장을 진단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한다면 정부의 외교·안보 인식 수준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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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일 대통령실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는 모습. 대통령실

"섣부른 입장은 금물" 지적도 

다만 트럼프의 이란 공습 자체가 국제사회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만큼 한국 정상이나 정부의 입장 표명은 정교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미국의 공습에 대해 "이미 벼랑 끝에 내몰린 지역에서의 위험한 확전이자 국제 평화 및 안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미국 국내적으로도 외국의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던 트럼프의 대선 공약에 배치된다는 비판에 더해 의회의 승인 없는 참전은 위헌이라는 정치적 논란도 거세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미국의 공습은 예방적 선제공격을 정당화하는 전례를 남김으로써 향후 중국의 대만 침공 등에도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한국이 중동에서 별다른 이해관계나 협상력도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데 신중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트럼프는 제한전 양상 속에서 이란이 협상 테이블로 나오길 기대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미국이 오히려 깊은 수렁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격 관련 긴급 안보·경제 상황 점검회의를 개최해 현지 교민 안전 등을 점검했다. 위 실장은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안정적인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최근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이 한반도 안보와 경제 상황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관계 부처 간 긴밀한 소통과 협업을 당부했다"고 대통령실이 이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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