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中청년이 AI 창업 몰릴 때, 韓청년은 배달식당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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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왕진(30)씨는 “최근 딥시크처럼 성공한 사례를 보며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인공지능(AI) 창업에 도전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 입사 기회가 있다면 들어가겠지만 경험일 뿐, 평생직장은 아니다. 최종 꿈은 내 사업을 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중국 청년들이 AI 창업에 몰리고 있는 데 반해, 한국 청년들은 ‘생계형 창업’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창업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지면서 한국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2일 중앙일보가 한국경제인협회와 함께 한·미·일·중 4개국 2030세대 청년 각 500여 명씩 총 2103명을 대상으로 ‘청년 기업가정신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창업을 시도해본 적 있는 한국 청년은 10명 중 1명(12.2%)에 불과했다.

‘4대 벤처강국’ 꿈꾸는 한국…청년 창업경험은 꼴찌였다

미국(35.1%), 중국(29.4%), 일본(16.4%) 가운데 꼴찌였다. 한국 청년이 창업을 고려하지 않는 이유로는 ‘실패 리스크 부담’(34.9%), ‘안정적인 직장 선호’(34%), ‘자금 조달의 어려움’(18.2%) 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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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한국 청년은 창업하더라도 부가가치 창출에 한계가 있는 내수 시장에 집중했다. 외식·소매업으로 대표되는 일반 서비스업(35.2%) 창업에 가장 관심이 컸다.

반면에 미국과 일본은 콘텐트 등 지식 서비스업이 각각 26.9%, 29.1%로 1위였고, 중국은 AI 등 정보기술(IT) 기반 산업(35.1%)에 가장 관심을 가졌다. 남대일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19 땐 아이디어만으로 창업이 가능했는데, 요즘엔 투자를 받기 위해 더 높은 기술력이 요구된다”며 “경험 적은 청년들이 단순 생계형 창업에 뛰어들며 내수 시장에 집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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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지난해 AI가 화장품을 추천해 주는 플랫폼을 창업했던 30대 한국인 A씨는 약 1년 만인 최근에 폐업했다. A씨는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현실과 이상의 간극이 너무 컸다”며 “외주를 줘서 개발하려 했더니 수억원이 들어 불가능했고, 베트남에서 필요한 인력을 구했는데 개발자가 아이디어를 이해 못 하는 경우도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정도 실증이 가능해야 투자를 받을 수 있는데, 데모 버전이 나오기까지 1년 정도가 걸리니 버티기 힘들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벤처투자 시장을 키워 ‘글로벌 4대 벤처 강국’을 만들겠다고 공약했지만, 청년 창업은 점차 위축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창업기업 수가 전년 대비 4.5% 감소한 가운데 30세 미만 창업기업은 12.9% 줄어들어 전 연령대에서 감소 폭이 가장 컸다. 나수미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2022년 하반기부터 벤처투자 시장이 경직되면서 수익화까지 시간이 걸리는 아이템보다 금방 회수가 가능한 안정적인 투자가 환영받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생계형 창업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전 세계 유니콘 기업 중 한국 기업의 비중은 감소세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업체인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전 세계 유니콘 기업 중 한국 비중은 2019년 2.2%에서 지난해 1%로 줄었다. 유니콘 기업이 많은 업종은 IT 솔루션(33.6%), 금융서비스(17.8%) 등이다.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개인의 창업이 국가 경제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창업 생태계의 구조적 변화와 첨단기술을 활용한 창업에 우호적인 환경 조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한경협 설문조사에서 6개 항목(대기업, 중소·중견기업, 벤처기업, 스타트업, 공공기관·공무원, 창업) 가운데 진로 희망을 물었더니, 한국은 대기업이 1위로 나타났다. 2위는 공공기관·공무원이었고, 창업은 6위로 꼴찌였다. 창업을 가장 많이 희망한 미국과 상반되는 결과였다. 한국 청년 중 ‘창업을 시도하거나 고려하지 않음’으로 응답한 비율은 55.7%로 집계됐다.

미국·중국 청년들이 창업에 대한 열망이 강한 반면, 한국과 일본은 비슷하게 안정적인 미래를 지향하는 성향을 보였다. 배달 전문 음식점을 창업했다가 폐업한 한국인 오민도(32)씨는 “상권 분석, 비용, 세금 등을 잘 모르는 상태로 뛰어들었다가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수천만원을 날렸다”며 “친구들보다 2~3년 뒤처진다고 느꼈고, 다시는 창업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인 유학생 미야나가 히카리(25)는 “친구들은 대부분 오래된 회사, 사원 수가 많은 안정적인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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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부모와의 동거 여부를 묻는 설문 문항에서 ‘예’라고 답한 이른바 ‘캥거루족’ 비율은 한국(54.9%)만 과반을 차지했다. 한국 청년은 이상적 독립 시점을 27.9세라고 응답해 미국(26.4세), 일본(26.8세), 중국(27.1세) 중 가장 늦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의 창업 열망이 낮고 독립이 늦어지는 원인을 기업가정신 부족에서 찾는다. 한국 청년의 기업가정신 인식 점수는 57.6점으로 미국(67.3점), 중국(61.6점)보다 낮았다. 김영은 한경협 기업가정신발전소 팀장은 “한국 청년들이 기업가정신을 특정한 사람만의 전유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며 “기업가정신이 청년들에게 보편적인 가치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교육과 문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창업 실패 후에도 일어설 수 있는 제도적·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청년 창업자는 한번 실패하면 지나치게 높은 재무적 위험을 안게 되는데, 재창업 또는 재취업 관련 국내 지원은 적고 효과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남정민 단국대 미래ICT융합창업학과 교수는 “청년 창업 소관부처가 중기부·교육부 등으로 나눠져 있어 애매하다. 명확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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