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더버터] 연간 1000명 교육…국내 최대 규모 장애인 직업훈련시설 생겼다
-
1회 연결
본문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경기남부직업능력개발원 개원식

지난달 25일 경기도 화성시에서 열린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경기남부직업능력개발원 개원식 참석자들. [사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복잡한 선들이 엉킨 설계도가 강의실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치수와 각도가 빼곡히 표시된 2D 도면과 입체적인 3D 형상이 화면에 번갈아 나타났다. 훈련생 3명의 시선도 한 곳에 모였다. 이들은 지체장애·정신장애 등 장애 유형은 다르지만, 첨단 기술 분야에서 일하겠다는 목표로 수업에 참여한 훈련생들이다.
지난 2일 경기도 화성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경기남부직업능력개발원(이하 경기남부직능원)에서 열린 수업은 설계도에 맞게 제품이 제작됐는지를 검사하는 ‘3차원 정밀 측정’ 직무 교육 과정이었다. 훈련생들은 앞으로 3개월 동안 기초 이론을 익힌 뒤 실제 부품 품질 분석 실습에 들어간다. 수료 후에는 자동차·항공·조선 등 제조업 분야의 부품 품질관리 직무로 진출할 예정이다.
장애인이 반도체·AI·바이오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일할 수 있는 길이 넓어지고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지난달 25일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와 인접한 경기도 화성시에 연면적 약 2만2400㎡(6771평) 규모의 경기남부직능원을 정식 개원했다. 정원 300명, 연간 1000명을 교육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장애인 직업훈련 시설이다. AI 데이터 분석, 반도체 품질 분석, 3차원 정밀 측정 등 신기술 분야 훈련 과정이 이곳에서 운영된다.
단순노동 넘어 고숙련 직무로
경기남부직능원이 문을 열자마자 부산·경남·강원 등 전국 각지에서 훈련생이 몰려들고 있다. 지난 2일 찾은 현장에는 이미 77명의 장애인이 수업을 받고 있었다. 공단은 타 지역 장애인들도 최장 12개월 동안 진행되는 직업 훈련에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기숙시설을 마련하고 숙식도 무료로 제공한다. 황아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경기남부직능원 능력개발처장은 “장애 유형과 개인별 역량에 따라 고숙련 업무가 가능한 장애인들이 많지만, 그동안 교육은 단순 직무 중심으로 운영돼 지원의 공백이 있었다”며 “이들의 잠재력을 키워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고, 기업과 협력해 고부가가치 직무를 개발하는 것이 공단의 목표”라고 말했다.
대표 교육과정은 ‘융복합훈련’이다. 직업훈련에 필요한 국어·영어·수학능력과 신체 기능을 평가하는 입학선발평가를 통과한 장애인들은 적성에 따라 기계·전자·IT·회계 등 다양한 분야의 훈련 모듈을 선택할 수 있다. 입학선발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경우 훈련 진입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특별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정규 교육은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전공 기본 교육 ▶실무 교육 등으로 구성된다. 적성이 맞지 않으면 3개월 단위의 세부 과정이 끝날 때마다 상담을 통해 훈련 모듈을 변경할 수 있다.
교육은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곳에서는 훈련생이 장비를 직접 다루고 전문가의 피드백을 받을 기회가 훨씬 많이 주어진다. 수업은 최대 12명의 소수 정원으로 운영된다. 대기업 현장 근무 경력을 가진 강사들이 훈련생 각자의 진도와 숙련도를 꼼꼼히 살핀다.
기업 맞춤형 직무 개발, 정규직 취업 연계
경기남부직능원 곳곳에는 별도로 마련된 실습 구역과 메이커스페이스가 있다. 덕분에 훈련생들이 실제 산업 현장과 동일한 수준의 첨단 장비를 직접 다뤄볼 수 있다. 3차원 측정기, 3차원 전자현미경, 산업용 3D 프린터, 레이저가공기, 자율주행 로봇 등 대부분 한 대당 1억원을 훌쩍 넘는 고가 장비다.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는 등 관리가 까다로워 일반 훈련 기관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렵지만, 장애인 훈련생들에게 현장과 같은 환경에서 충분히 연습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과감히 도입했다는 게 공단의 설명이다. 황아윤 처장은 “장애인이 배우는 속도가 조금 느릴 수는 있지만, 개인에 따라 업무의 정확성과 집중력은 매우 뛰어나다”며 “충분한 반복 학습과 체계적인 실습 기회를 제공하면 충분히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맞춤형 직무 개발과 전문 인력 양성도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경기남부직능원은 바이오·헬스케어 기업 HK이노엔과 협력해 오송·대소·이천 사업장의 특화 직무를 공동으로 개발해 지난 6월 훈련생 교육을 시작했다. 훈련생들은 3개월 동안 교육을 받은 후 IT 전략기획, 자재관리, 디지털 문서 관리 등 분야에서 정규직으로 채용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삼성전자, 한국토지주택공사 캐논코리아 자회사 엔젤위드 등 다양한 기업과 손잡고 기업별 특화 훈련 과정을 개설해 취업으로 연계하고 있다.
장동수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경기남부직능원장은 “4차 산업 일자리가 늘어나는 만큼 장애인이 그 흐름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기업 맞춤형 직무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공단은 앞으로도 이런 노력을 꾸준히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