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신용 945점이세요? 평균 이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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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신용 인플레’ 왜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한 시중은행에서 2000만원 대출을 받기 위해 상담을 받았다가 깜짝 놀랐다. 상담 직원이 “요즘 신용점수 830점대로는 신용대출 신청이 거절될 수 있다”고 말해서다. A씨는 “입사 3년 차에 신용점수 836점이면 대출받는 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며 “아무래도 대출금리가 높더라도 2금융권을 알아봐야 할 거 같다”고 했다.

신용점수가 900점(1000점 만점) 이상인 고신용자가 급증하는 ‘신용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지고 있다. 예비 대출자들이 적극적으로 신용점수 관리에 나선 데다 코로나19 이후 꾸준히 시행된 ‘신용사면’ 정책의 여파도 있다.

18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국민·농협·신한·우리·하나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신규 취급액)을 받은 고객의 올해 6월 평균 신용점수는 코리아크레딧뷰로(KCB) 기준 945.2점에 이른다. 1년 전(935.8점)보다 9.4점 높아졌다. 은행연합회가 은행별 평균 신용점수를 처음 공개한 2022년 7월(909.4점)과 비교해 35.8점 수직 상승했다. 신용대출 고객의 평균 점수도 940.8점으로 3년 전보다 26.4점 뛰었다.

자칫 고신용자 가운데 상대적으로 점수가 낮은 3등급(832~890점)은 시중은행의 대출 문턱을 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현재 KCB는 신용점수를 1~7등급으로 구분하고, 832점 이상(1~3등급)을 연체 위험이 낮은 고신용자로 분류한다. 신용점수는 신용평가사가 예비 대출자의 부채를 비롯해 상환 이력과 신용거래 등을 종합해 산출한다. 대출 금리와 한도를 결정하는 잣대 중 하나다.

최근 신용평가사가 매긴 신용점수가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됐다. KCB에 따르면 2023년 전체 평가 대상자 4953만3733명 가운데 43.4%(2149만3046명)의 신용점수가 900점 이상이었다. 3년 전(38.6%)보다 4.8%포인트 상승했다. 현재 10명 가운데 4명은 신용점수가 900점을 넘는다는 의미다. 이 중 950점을 넘은 초고신용자도 약 1315만 명(27%)에 달했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한 푼이라도 이자를 줄이기 위해 신용점수 올리는 방법에 관심을 갖는 예비 대출자가 늘었다. 핀테크(금융+기술) 발전으로 앱으로 손쉽게 신용점수를 조회하고, 점수를 올리는 각종 정보가 공유된 영향도 크다. 코로나 사태 이후 시행된 대규모 신용사면도 신용점수가 오른 요인 중 하나다.

새 정부도 다음 달 30일부터 324만 명에 대한 신용사면에 나선다. 2020년 1월부터 이달까지 발생한 5000만원 이하의 연체를 연말까지 갚은 개인(개인사업자 포함) 대상이다. 역대 최대 규모다. 2021년 문재인 정부 때 250만 명을, 2024년 윤석열 정부에선 290만 명의 연체 기록을 지웠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신용사면을 받은 개인은 신용점수가 653점에서 684점으로 평균 31점 올랐다. 개인사업자는 약 101점 상승해 평균 725점이 됐다.

신용평가사의 신용점수 변별력이 낮아지면서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신용평가 잣대(시스템)를 강화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권 관계자는 “올해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심사 문턱이 더 높아진 게 사실”이라며 “요즘 대출자의 직업과 소득, 재산, 은행 실적 등을 다방면으로 따지고, 신용평가사의 신용점수는 대출 거절 기준으로 활용한다”고 말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용사면이 잇따르면 은행들은 연체율 관리를 강화하면서 가산금리(대출금리)를 올릴 수 있다. 자칫 연체 없이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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