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불과 4쪽 보고서인데 722만원…경찰병원, 연구비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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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병원 전경. 연합뉴스
지난해 경찰병원의 연구비 예산 일부가 부적절하게 쓰였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가 지출 내역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4쪽 분량의 의료진 보고서에 연구비 수백만원이 지급되거나, 연구 방식·성과에 따른 차등 없이 일률적으로 연구비가 지원되는 등의 정황이 포착되면서다.
2일 중앙일보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의 ‘2024회계연도 경찰청 결산 및 예비비지출’ 검토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경찰병원은 지난해 총 67건의 임상연구에 대해 예산 4억5400만원을 지급했다. 임상연구비 지원 사업은 경찰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또는 약사의 의료수준 향상을 위해 연구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연구비를 받고자 하는 의료진은 계획서를 매년 2월 말까지 제출하고 연말까지 최종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국회 예결위가 보고서 세부 내역을 뜯어본 결과, 사업 목적과 달리 부실한 연구에 돈이 지원된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예컨대 경찰병원은 ‘중장년 경찰 남성 환자 중 갑상선 고주파술을 시행받은 환자들의 경과 관찰’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한 의료진에게 지난해 약 722만원을 지급했는데, 보고서 분량은 약 1500자에 불과했다.
해당 연구의 대상은 2014년 1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경찰병원에서 갑상선 고주파 절제술을 받은 36명의 경찰공무원으로, 보고서에선 이들을 ▶종양 소멸(10명) ▶종양 50% 이상 감소(19명) ▶종양 50% 이하 감소(7명)로 분류한 후 “대부분의 경우에서 종양 50% 이상 감소 효과를 확인했다”고 적었다. 익명을 요청한 전직 의과대학 학장은 “수술 후 당연히 해야 할 추적 관찰을 단순 요약한 수준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경찰병원이 722만원을 지급한 4쪽 분량 보고서의 일부. 사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또 국회 예결위는 “다른 일부 보고서는 상당 부분이 사진으로 대체되는 등 연구에 대한 충분한 서술이 존재하지 않았다”며 “연구 성과를 공유하거나 의료 수준을 향상시키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지난해 연구 절반에 해당하는 33건은 방식·내용·성과가 전혀 다름에도 차등 없이 659만원이 일률적으로 지급됐다.
이와 관련해 경찰병원은 “임상연구비가 공공부문 의료진의 낮은 임금을 보전하는 성격을 일부 갖고 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실제 4·5급 공무원 신분으로 채용되는 경찰병원 소속 의사들은 같은 전공·연차 의사에 비해 연봉이 낮은 편이다. 지난해 기준 수도권 공공 의료원 12곳의 평균 의사직 연봉은 약 2억4000만원인 반면, 경찰병원 의사직 연봉은 약 1억3000만원이었다.
낮은 보수 때문에 경찰병원은 항상 정원 미달사태로 인한 운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기준 경찰병원에 재직 중인 전문의는 63명으로 정원 74명을 채우지 못했다. 경찰병원의 최근 3년간 수입 수납액도 327억원(2022년)→294억원(2023년)→241억원(2024년)으로 감소했다.
그럼에도 예산을 정해진 규정이 아닌 다른 용도로 유용하는 것은 잘못된 관행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병원 임상연구비 지급규칙에 따르면, 임상연구비는 연구 목적 외에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제9조 1항)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도 12년 전부터 경찰병원 등 14개 기관에 “의료진에게 연구비를 정액 수당처럼 주는 관행을 없애라”며 운영개선을 권고해왔다.

경찰병원은 경찰 공무원, 소방 공무원 및 일반인 진료를 위해 설치한 경찰청 산하 국립병원이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본청. 연합뉴스
경찰병원은 중앙일보에 “최소한의 논문 분량 기준을 세우는 등 임상연구심의위원회 규칙을 지난 6월 24일 개정했다”며 “향후 이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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