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팔수록 손해보는데…면세점들 '다이궁 다이어트' 힘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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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궁 의존도 낮추려는 면세점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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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궁(代购)과 거래를 전면 중단하겠다.” 올해 초, 국내 1위 면세점의 갑작스러운 발표에 유통업계가 술렁였다. 롯데면세점이 매출의 약 80%를 차지하던 중국의 보따리상 ‘다이궁’과 결별을 선언하면서다. 판매액의 절반을 수수료로 쥐어주며 손님을 끌어온 면세점의 호기로운 독립 선언에 이목이 집중됐다. 반년이 지난 현재 상황은 어떨까. 면세업계에 따르면 롯데면세점 매출의 절반은 여전히 다이궁이 책임지고 있다. 글로벌 명품 업체 역시 중국 매출의 최대 70%를 다이궁에 의존한다(베인앤컴퍼니). 면세·명품 기업들은 애증의 다이궁과 ‘윈윈’할 수 있을까.

◆다이궁이 뭐길래=다이궁은 해외에서 물건을 구입한 뒤 중국 현지에 되팔아 차익을 남기는 구매대행업자를 일컫는 말이다. 중국 시장조사업체 리허브에 따르면 다이궁 시장의 연간 규모는 약 4000억 위안(약 78조원)으로 추정된다. 국내 면세업계는 지난해 연 매출의 절반가량(약 7조원)이 다이궁을 통해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다이궁은 수익을 낼 수 있는 품목이면 무엇이든 취급한다. 구매한 제품은 알리바바의 오픈마켓 타오바오(淘宝)나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 등을 통해 판매한다. 중국 여행 가이드로 일하며 부업으로 구매대행업을 하는 이모(40)씨는 “항공료와 제품 판매가 등을 고려하면 이문이 제일 많이 남는 곳은 한국과 일본”이라며 “한번 물건을 사러 나오면 5000달러(약 690만원)에서 1만5000달러(약 2100만원)어치를 구입해 돌아가는데, 이를 되팔고 나면 적게는 100만원, 많게는 500만원 정도가 남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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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이들은 전 세계 환율 변동과 면세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지난해에는 위안화 대비 엔화 가치가 30여 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자 다이궁이 대거 일본으로 몰려들었다. 루이비통, 구찌, 펜디 등의 명품을 중국보다 최대 30%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내수 침체가 다이궁 산업을 더욱 키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5년 운동화 중고거래 플랫폼으로 출발한 더우(得物)는 현지 MZ세대의 새로운 명품 쇼핑 채널로 자리 잡고 있다. 다이궁 이씨는 “중국의 2040은 오프라인 명품 매장에 가는 대신 더우에서 다이궁이 파는 화장품이나 명품백과 구두 등을 저렴하게 사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LVMH 회장의 일갈, 왜?=글로벌 명품업계에 다이궁은 매출 일등공신이지만 동시에 숙제다. 일종의 병행수입 채널로서 중국 현지 인지도를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고 수익성을 악화시킨다는 판단에서다. 이들은 다이궁이 판매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한정판 제품을 중국에 유통시키며 명품 브랜드의 희소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에르메스의 경우 다이궁을 통해 현지에 유통되는 물량이 상당하다.  진품과 섞어 가품을 유통시킨다는 의혹도 있다. 스위스의 명품 전문 매체 럭셔리 트리뷴은 “다이궁이 위조 제품이나 유통기한이 지난 화장품을 판매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며 “이는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를 훼손시키고 기업 가치를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목소리를 크게 내는 곳은 루이비통, 디올 등 70여 개 명품 브랜드를 거느린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2022년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한국 면세업계를 거론하며 “팬데믹 기간 동안 공항이 텅 비었는데 면세점 명품 매장에서 엄청난 매출이 나왔다. 쌓아둔 재고를 중국 판매업자(다이궁)에게 할인 가격에 팔았기 때문”이라며 “정말 끔찍한 일(dreadful)”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LVMH는 국내 주요 백화점에 공문을 보내 외국인 고객에게 제공하는 페이백 행사에서 루이비통을 제외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구매액의 약 6%를 환급해주는 이벤트를 활용해 다이궁이 루이비통 제품을 대거 매입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다이궁이 중국과 한국의 가격차가 큰 상품이나 한국에서만 판매하는 제품을 수억원어치씩 구매해 중국에 가져가 파는 것으로 안다”며 “LVMH의 조치는 브랜드 가치 훼손을 막기 위한 선택”이라고 부연했다.

◆“이별은 안 돼” 속 타는 면세점=국내 면세점의 입장에서도 다이궁은 매출 상승의 주역이자 동시에 수익성 악화의 원인이다. 국내 면세점들이 다이궁 유치에 공들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계기로 중국 정부가 한국 관광 제한 조치를 내린 이후다. 주요 고객이던 유커(游客·중국인 단체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기자 면세점들은 여행사들과 계약을 맺고 다이궁을 모집해 오면 구매액의 일부를 수수료로 지급하기로 했다. 관광진흥법에 따라 면세점이 단체관광 여행사에 지급하던 송객수수료를 다이궁에게도 확대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당초 구매액의 10% 안팎이었던 송객수수료율은 2018~2019년 50%까지 치솟았다. 국내 면세점들이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 외형 경쟁에 치중한 결과다. 송객수수료율이 50%인 경우 다이궁이 1000만원어치 물건을 사면 면세점은 여행사에 500만원을 수수료로 지급해야 한다. 면세업계에 따르면 국내 면세점 매출 중 외국인과 내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8대 2다. 외국인 고객의 90% 이상은 중국 국적으로 특히 다이궁의 비중이 크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다이궁 전문 여행사의 협상력이 커지다 보니 업체들끼리 다이궁 수수료 높이기 경쟁을 피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올 들어 롯데면세점이 다이궁과 거래 중단을 선언한 것은 과도한 수수료 경쟁을 하지 않겠다는 상징적 선언에 가깝다. 실제로는 수수료율만 낮췄을 뿐 여전히 거래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국인 고객의 발길이 끊기고 해외 관광객들도 올리브영, 다이소 등 국내 로컬 매장에서 쇼핑하다 보니 면세업계의 믿을 만한 충성 고객은 여전히 다이궁이다. 롯데·신라·신세계·현대 등 주요 면세점에 따르면 다이궁 모객 여행사의 평균 송객수수료율은 30%대로 형성돼 있다. 전체 매출에서 다이궁이 차지하는 비중은 업체별로 50~70%에 이른다.

◆면세점의 홀로 서기 전략은=중국 단체관광객 수는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달러 강세로 내국인의 발길마저 뜸해지며 국내 면세업계는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롯데·신라·신세계·현대 등 4개 면세점의 지난해 영업손실 합계는 2776억원을 기록했다. 연간 영업손실액이 가장 컸던 2022년(1395억원)을 웃도는, 사상 최악의 실적이었다. 면세업계는 우선 몸집부터 줄이는 중이다. 지난 1월 신세계면세점 부산점이 폐점했고, 7월에는 현대면세점 동대문점이 문을 닫았다. 롯데면세점은 롯데월드타워점의 면적을 30% 줄이고 2개 층으로 운영되던 부산점 규모를 1개 층으로 줄였다. 현대면세점도 3개 층이던 삼성동 무역센터점을 2개 층으로 축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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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면세사업 본연의 경쟁력 강화에 대한 고민도 크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환율이 올라 면세품 구매의 이점이 줄어든 데다 관광 트렌드도 쇼핑보다는 체험 위주로 바뀌었다”며 “K푸드, K패션, K뷰티 등 한류 콘텐트를 활용한 경험 마케팅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면세업계는 면세 한도 상향 등 제도 개선도 요구하고 있다. 국내 여행자의 입국 면세 한도는 800달러(약 110만원)로 일본(20만 엔, 약 190만원), 중국 하이난(10만 위안, 약 1900만원)과 비교해 적은 편이다. 유광현 조선대 무역학과 교수는 “한국은 중국, 대만 등과 비교해 면세사업 규제 개선이 더딘 편”이라며 “면세 한도 확대, 입국장 인도장 도입 등 다이궁의 의존도를 낮추고 내국인 이용객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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