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브래드 피트 ‘F1’이 말해줬다, 레이싱 우승시킨 숨은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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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진화, 자동차 산업 숨은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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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300㎞로 질주하는 F1 머신의 휠이 영화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엔진 굉음 속에서도 카메라는 유난히 노면과 맞닿은 타이어에 집착한다. 카메라의 시선이 머무는 순간, 관객은 비로소 눈치챈다. 챔피언십의 결과를 좌우하는 건 드라이버의 손끝도, 팀의 전략도 아닌 결국 타이어의 상태와 선택이라는 사실을. 최근 개봉한 브래드 피트 주연 영화 ‘F1: 더 무비’가 보여주듯, 고무 덩어리 같은 타이어는 레이스의 승패는 물론 산업과 경제의 판도까지 바꿀 수 있다. 타이어는 단순히 자동차를 굴리는 바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능과 안전,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결정하는 숨은 주인공이다. 글로벌 완성차와 부품사들이 앞다퉈 전기차용, 친환경, 스마트 타이어 개발에 투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퀴의 진화=타이어의 역사는 곧 자동차의 역사다. 19세기 중반 찰스 굿이어가 고무 가황법(vulcanization)을 발명하고, 1888년 존 던롭이 공기주입식 타이어를 상용화하면서 자동차는 마차와는 전혀 다른 주행 성능을 갖췄다. 이후 20세기에는 승차감이 다소 떨어지던 바이어스(Bias) 타이어(측면과 접지면이 일체형으로 충격 흡수가 부족함)에서 주행 안정성과 연비가 좋은 레이디얼(Radial) 타이어(측면이 유연해 승차감이 우수함)로의 전환, 고속에서도 안정성을 유지하는 런플랫 타이어(펑크가 나도 일정 거리 주행 가능), 트랙 주행을 위한 고성능 스포츠 타이어(접지력과 조종 성능을 극대화)가 잇따라 등장하며 주행 품질이 비약적으로 개선됐다.

특히 전기차(EV) 시대가 도래하며 타이어 산업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소음이 거의 없는 EV에서는 타이어 마찰음이 더 크게 들리고, 배터리 무게 때문에 마모 속도는 내연기관차보다 20~30% 빨라진다. 여기에 전기모터 특유의 즉각적인 토크 전달까지 더해져 타이어는 전보다 훨씬 정교한 균형을 요구받고 있다.

◆레이스 트랙에서 도로까지=자동차 경주에서도 마찬가지다. F1이나 르망 같은 대회에서는 ‘어떤 타이어를 언제 갈아 끼우느냐’가 곧 전략이 된다. 같은 차량이라도 드라이버가 어떤 타이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코너링 속도가 달라지고, 피트 스톱(pit stop, 급유나 타이어 교체를 위한 정지) 소요 시간이 달라져 레이스의 승패를 가른다. 그래서 경기 중 가장 큰 함성은 드라이버의 추월 장면뿐만 아니라 타이어 교체 순간에도 터져 나온다.

일상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출퇴근길에서 밟는 브레이크의 제동 거리, 빗길에서 차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선회하는지, 장거리 주행에서 기름이 얼마나 절약되는지, 심지어 차 안에서 들리는 소음도 타이어가 좌우한다.

차량의 용도에 따라 타이어도 천차만별이다. 가족용 스포츠유틸리티차(SUV)에는 안정감과 승차감을 강화한 타이어가, 스포츠카에는 고속에서도 노면을 꽉 움켜쥘 수 있는 고성능 타이어가 필요하다. 트럭이나 항공기용 타이어는 수t의 무게와 극한 조건을 견뎌야 하며, 광산에서 쓰이는 초대형 트럭 타이어는 실제로 1층 건물 높이만 하다.

◆연평균 성장률 3.4% 전망=글로벌 타이어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약 1430억 달러(약 190조원)에 달한다. 이는 자동차 부품 중 엔진 다음으로 큰 단일 시장이다. 향후 성장세도 꾸준히 이어질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는 2030년 타이어 시장 규모가 약 1739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2025~2030년 연평균 성장률은 3.4% 수준이다.

특히 전기차 시대에는 교체 주기가 더 짧아진다. 배터리 무게와 강한 토크로 인해 타이어가 더 빨리 닳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더 자주 교체해야 하고, 제조사에는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이 때문에 미쉐린의 ‘이.프리머시(e.Primacy)’, 콘티넨탈의 ‘에코 콘텍트 EV(EcoContact EV)’, 한국타이어의 ‘아이온(iON)’ 시리즈 같은 전기차 전용 타이어가 속속 등장했다.

타이어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는 한 번 사지만 타이어는 여러 번 산다”며 “교체 주기만으로도 산업 규모가 커지고, 전기차 보급은 그 주기를 더 짧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타이어 3사=세계 타이어 시장은 브리지스톤(일본), 미쉐린(프랑스), 굿이어(미국) 등 ‘3강 체제’가 주도해왔다. 하지만 한국타이어·금호타이어·넥센타이어 등 국내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늘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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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2024년 한국타이어는 매출 9조4119억원으로 글로벌 타이어 시장 7위에 올랐다. 금호타이어는 4조5381억원으로 12위, 넥센타이어는 2조8479억원으로 17위를 기록했다. 국내 시장만 놓고 보면 세 회사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과점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신차용 OE 협업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포르쉐 ‘타이칸’과 ‘파나메라’, 아우디 ‘RS6’ ‘RS7’, BMW ‘7시리즈’, 메르세데스-벤츠 ‘GLC’ 등에 OE를 공급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전기차 시장에서도 테슬라 ‘모델3’ ‘모델Y’, 기아 ‘EV9’, 쿠프라 전기 SUV ‘타바스칸’ 등에 전용 타이어를 장착하며 영역을 넓히고 있다.

글로벌 통상 환경 변화는 타이어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중국산 타이어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한국 타이어 기업들이 대체 공급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반대로 원자재 가격 상승, 물류비 불안, 환율 변동은 부담 요인이다.

이에 대응해 국내 기업들은 유럽(헝가리·체코), 동남아(인도네시아·베트남) 등으로 생산 거점을 다변화하며 공급망 리스크 관리에 나서고 있다. 해외 투자 확대와 완성차 업체와의 협력 강화도 동시에 추진하고 있어 앞으로 향후 5년이 글로벌 경쟁력 제고와 공급망 리스크 분산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폐타이어의 재발견=매년 전 세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폐타이어는 10억 개 이상. 예전에는 그 많은 타이어를 그냥 불태우거나 땅에 묻었다. 하지만 환경오염 문제가 커지면서 이제는 ‘버려진 고무’를 새로운 자원으로 보는 시도가 늘고 있다.

대표적인 방법이 열분해다. 고온에서 타이어를 분해해 카본블랙(고무 배합에 쓰이는 핵심 원료)과 폐유 기반 연료를 다시 뽑아내는 방식이다. 이렇게 회수한 자원은 다시 고무 원료로 쓰이거나 산업용 연료로 재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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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가 업사이클링 브랜드 ‘트레드앤그루브’와 함께 폐타이어를 재활용해 제작한 특별 스니커즈.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지속가능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진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그 외에도 활용 방식은 더 다양하다. 잘게 부순 폐타이어는 운동장 바닥재, 건축 자재, 신발 밑창으로 변신하기도 하고, 스타트업들은 이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업사이클링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의 스타트업 ‘블랙칼라(Blackcala)’는 폐타이어를 활용해 가방과 패션 소품을 만들어 주목받았다.

전동화 흐름에 따라 타이어도 더 똑똑해지고 있다. 요즘은 신차에 기본으로 탑재된 TPMS(타이어 공기압 모니터링 시스템)가 대표적이다. 바퀴 안의 공기압이나 온도, 심지어 마모 정도까지 실시간으로 알려주어 운전자가 사고를 미리 예방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이어 자체에 센서를 부착한 ‘커넥티드 타이어’ 개발도 활발하다. 차량의 제어 시스템과 타이어가 데이터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일부 고급 차량에는 타이어 공기압이나 온도를 운전자에게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기술이 이미 적용되고 있다. 나아가 노면의 상태를 감지해 자율주행차에 직접 신호를 보내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그러나 커넥티드 타이어가 실제 제대로 기능하려면 타이어 기술 뿐만 아니라 관련 기술 생태계 전반이 성장해야 한다. 브리지스톤 연구개발(R&D) 임원을 지낸 조셉 D. 월터 미국 애크런대 객원교수는 “커넥티드 타이어는 앞으로 필수품이 될 것”이라면서도 “타이어가 수집한 노면 데이터를 차량의 제어 로직에 통합하려면 OEM·센서업체·소프트웨어 기업 등이 모두 참여해야하는데, 아직 관련 기술 표준화나 협업 구조가 마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는 ‘기업’입니다. 기업은 시장과 정부의 한계에 도전하고 기술을 혁신하며 인류 역사와 함께 진화해 왔습니다. ‘기업’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더중플이 더 깊게 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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