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단독] 역대급 기업인 국감 소환에…李대통령 재차 '자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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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가 지난 10일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고 “국감감사에서 재계 증인을 최소화할 예정”이라고 밝힌 배경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자제령’이 있었던 것으로 12일 파악됐다. 이 대통령은 최근 정무수석실로부터 국감 증인 명단을 보고 받고 “대내외적으로 경제 여건이 어렵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행사를 앞둔 시점에 기업인을 이렇게 많이 부를 필요가 있느냐”는 취지로 말했다고 복수의 여권 인사들이 전했다.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달 말에도 각 상임위 간사단에 “야당 시절처럼 기업인에 대한 마구잡이 증인 신청을 하지 말자”는 취지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러나 이후 각 상임위가 취합하거나 의결한 증인 명단에 기업인이 대거 포함되자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지난 1일 다시 상임위 간사단에 “기업인에 대한 증인·참고인의 경우 불필요한 명단을 정리해 최소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일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을 찾아 피해 복구 현황 및 향후 계획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그런데도 각 상임위가 채택한 기업인 국감 증인은 지난 10일 현재 164명으로, 역대 최다였던 지난해 국감(156명)보다 8명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황성혜 구글코리아 부사장이 국방위·정무위·문화체육관광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등 상임위 네 곳에서 증인으로 채택된 것을 비롯해 두 곳 이상의 상임위에서 중복 출석을 요구받은 기업인도 14명에 달했다. 최태원 SK그룹, 정의선 현대차그룹,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도 포함됐다.
주요 현안과 관련해 기업인을 국감 증인으로 소환하는 건 경우에 따라 필요한 일이지만, 국회는 매년 마구잡이식 출석 요구와 망신주기성 질의로 비판을 자초해 왔다. 출석한 기업인을 밤늦도록 질의 한 번 하지 않고 기다리게 한다거나, 현안과 무관한 훈시를 하고 호통을 쳐 이목을 끄는 모습 등이 문제였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일단 오너나 대표를 증인으로 신청한 뒤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 자료를 내놓지 않으면 끝까지 철회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업인을 너무 부르지 말자는 건 이미 여당과 여러 번 공유한 것인데, 오히려 언론에서 ‘과거보다 늘었다’는 보도가 나와 지난주 당 지도부와 재차 논의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기업인 증인 채택 자제라는 원칙을 구두로 전달했지만, 개별 의원들에게 제대로 전파되지 못한 것 같다”며 “재조정을 거쳐 14일 원내대표단과 상임위 간사단 사이 회의에서 기업인 증인 신청 현황을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이날 고위당정대협의회 직후 브리핑에서 “기업인 출석이 꼭 필요하면 CEO(최고경영자) 대신 실무자가 출석해도 되는 경우가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10대 건설사 중 여덟 곳의 대표 등 총 23명의 기업인을 증인으로 부르려던 국토위는 허윤홍 GS건설 사장과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 등에 대한 증인 채택을 철회하고, 다른 건설사들의 소환 대상과 일정도 조정 중이다. 다만, 윤석열 전 대통령의 관저 관련 의혹이 제기된 현대건설은 조정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민주당 일각에선 볼멘소리도 나온다. 정무위 소속 민주당 의원은 “정무위에는 쿠팡이나 배달의민족처럼 사회적 현안이 많은 기업 증인들이 많다”며 “줄일 수 있는지는 사안에 따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 첫 국정감사를 사흘 앞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앞 대기 장소에 대법원 등 피감기관 직원들이 붙여 둔 종이에 기관명이 적혀 있다. 연합뉴스
역대 최다 기업인 증인 채택에는 국민의힘의 역할도 컸다. 최태원 회장이 의장인 APEC CEO 서밋 개회식 날(28일) 최 회장의 증인 출석을 요구한 건 정무위 야당 간사인 강민국 의원, 정용진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한 사람은 김성원 의원이다. 정무위 관계자는 “야당으로서 선명성을 보이려는 것인지, 국민의힘 의원들의 기업인 증인 신청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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