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초유의 미·중 정상 ‘연쇄 국빈방한’ 추진…관건은 실질적 결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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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잇달아 한국을 찾는 가운데 정부는 두 정상 모두 ‘국빈 자격’으로 방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외국 정상이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그것도 하루 간격으로 국빈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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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16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정부는 APEC 계기 방한이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을 각각 국빈으로 초청하는 방안을 미·중 과 조율 중이다. 큰 변수가 없는 한 초유의 ‘연쇄 국빈 방한’이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29일부터 30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을 가능성이 큰데, 도착 당일인 29일 한·미 정상회담과 국빈 만찬을 추진 중이다. 시 주석 역시 국빈 자격으로 30일 방한해 이날 미·중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높다. 한·중 정상회담도 이날 이뤄질 수 있다. 시 주석은 31일부터 이틀 동안 이어지는 APEC 정상회의 본 행사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계획대로 이뤄지면 한국은 하루 간격으로 미·중 정상을 국빈 자격으로 맞이하게 된다. 외국 정상 방한 때 국빈 방문은 접수의 격이 가장 높다. 통상 의장대 사열, 환영식, 국빈 만찬, 국회 방문 등 최고 수준의 의전이 제공된다. 정부 소식통은 "미·중 정상의 방한 일정의 윤곽이 잡힌 만큼 최대한의 예우를 하기 위해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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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후 경북 경주시 보문단지 호반 광장에서 APEC 보문단지 야간경관개선 '빛의 향연' 시연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국빈 방문의 조건이나 회수, 방식 등을 규정하는 명문화된 기준은 없다. 단 하나의 원칙은 우리 대통령 임기 중 국별로 1회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해당 정상이 재선 또는 임기 연장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재차 국빈 방문이 가능하다.

결국 희소성이 핵심이고, 이를 위해 보통 수개월에 걸친 치밀한 준비가 이뤄진다. 이와 관련, 시 주석의 국빈 방한은 지난해부터 거론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 방한 추진은 최근에서야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APEC 본행사에 불참하기로 하자 APEC 흥행 부진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지는 것을 의식해 방한의 격을 높인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세계적인 이목은 끌겠지만, 급하게 ‘쌍끌이 국빈 방한’을 추진하며 내실 있는 준비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우려도 그래서 제기된다. 당장 이례적으로 방문의 장소도 서울이 아닌 경주로 국한된다.

통상 미 대통령 국빈 방한 시 상징적인 동맹 중시 행보가 포함됐다는 걸 고려하면 아쉬움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11월 국빈 방문 때 경기도 평택의 주한미군 기지인 '캠프 험프리스'과 국립현충원을 방문했고, 국회에서 연설했다.

시 주석도 지난 2014년 방한 때는 정상회담 외에도 기업인 포럼과 서울대 연설 등 풍성한 일정을 소화했지만, 이번에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외교 역량을 총결집하는 흔치 않은 기회인 만큼 ‘국빈 찬스’를 활용할 때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과가 담보돼야 한다.

그런데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 모두 일정상 방한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통상 정상 순방에 앞서 외교장관이 상대국을 찾아 성공적인 회담 결과물 도출을 위한 사전 조율을 하지만 이번에는 이조차 이뤄지기 힘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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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기간 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 방한은 현재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한·미 관세 협상과도 맞물려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3500억 달러 규모의 전액 현금 투자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수용 가능한 절충안을 마련해야 트럼프의 국빈 방한이 의미 있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APEC 계기 한·미 정상회담 때까지 문제를 풀어가겠다”(조현 외교부 장관, 지난 13일 국회 외통위)며 협상 타결 의지를 밝혔지만, 결과를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모든 대미 협상의 최종 결정권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는 게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시절인 2020년 4월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 당시 한·미 외교·국방장관이 모두 승인했던 ‘13% 인상안’을 타결 직전에 거부했고, 협상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실무진이 여러 차례 사전 협의를 거쳤지만, 현지에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협상을 결렬시켰다.

이번에도 상호 관세 15%와 대미 투자 자금 조달 방식을 둘러싼 명문화된 합의가 나오기 전까지는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한·중 간에도 현안이 있다. ‘한한령’(限韓令) 완전 해제 등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조치 철회, 서해 구조물 문제 등이다. 중국은 최근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에 대한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미·중 정상의 연쇄 국빈 방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APEC 참석이 어려운 상황에서 모멘텀을 살리기 위한 현실적 선택이자, 트럼프 대통령이 다자 외교 대신에 양자 관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를 선호하는 성향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신 전 대사는 "이번 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단순한 거래 상대가 아닌 상호 이익을 주는 동맹 파트너로 인식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중국과는 멈춰 있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복원하되, 한·미 동맹의 틀 속에서 호혜적인 선린관계를 심화시켜 갈 것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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