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장집’팀에 인사팀까지 뒀다, 치밀했던 120억 ‘로맨스 사기’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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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를 거점으로 120억원대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을 벌인 조직은 현지 여러 곳에 본부와 분점을 두고, 관리·콜센터·자금세탁 등 기능별로 세분화한 기업형 ‘사기 공장’인 것으로 파악됐다. 조직은 프놈펜 도심 본부에서 인력을 모집하고, 프놈펜 남쪽 외곽인 보레이에 콜센터를, 서쪽 외곽인 태자단지에 자금 세탁 거점을 두는 등 범행을 분업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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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20일 울산경찰청에 따르면 로맨스 스캠 조직의 운영은 치밀했다. 총책인 한국인 A씨 부부를 정점으로, 수십 명의 조직원이 역할별로 움직이며 ‘공장’을 돌렸다. 조직원들은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건물 여러 채를 빌려 본부를 꾸렸다. 그 아래에 관리팀 등 8개 세부 조직을 뒀다.

관리팀은 범죄 기획과 직원 교육을, 인사팀은 조직원 모집·관리를, 특수팀은 가짜 투자 강의 영상 제작으로 피해금 송금 유도를, 화력팀은 유튜브 댓글과 조회 수 조작 등을 맡았다. 여성이 다수 포함된 TM팀은 딥페이크 영상으로 피해자들과 영상통화를, 채팅 담당으로 ‘키보드’로 불린 채터팀은 ‘연인’ 행세로 피해자를 속였다. 통장을 의미하는 ‘장집’팀은 세탁용 통장을 모집했다. 자금세탁팀은 범죄수익을 대포통장과 가상화폐로 환전했다.

이들은 숙식 가능한 본부 외에도 분점을 운영했다. 자금세탁팀은 태자단지, 콜센터는 보레이, 모집팀은 프놈펜 중심가에 사무실을 뒀다. 경찰은 조직 배후에 중국인 투자자 ‘진’이 있다고 본다. 그는 건물 임차비 등을 대고 수익을 투자금 회수 형식으로 챙기는 것으로 파악 중이다. 국내 조직폭력배도 자금 세탁에 가담해 수수료를 챙겼다고 한다.

조직은 경찰에 검거되면 말할 진술까지 알려줬다고 한다. 울산경찰청 한 간부는 “조직원들이 검거에 대비해 가명을 쓰고 ‘잡히면 강압에 의한 범행, 취업사기였다고 하면 풀려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알려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해 3월부터 채팅앱 등으로 한국인들에게 접근했다. ‘가상의 연인’이 대화를 이어가다 “투자 공부를 하자”며 유튜브 채널과 가짜 투자 앱으로 유도했다. 피해자는 주부·장애인 등 100여 명, 1인당 피해액은 수백만~8억여 원에 달했다.

울산경찰청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초까지 120억원대 로맨스 스캠을 저지른 혐의로 총책 A씨 부부 등 83명을 입건했다. 56명이 검거됐고, 36명이 구속됐다. 27명은 여전히 도주 중이며 14명은 인터폴 적색수배 대상이다. A씨 부부는 캄보디아 수용시설에 구금돼 있으나 국내 송환은 9개월째 지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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